[미디어스=이종임 칼럼] 최근 인터넷 포털 뉴스의 자극적 기사 타이틀,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는 허위정보는 스마트 미디어로 정보를 검색하는 이용자들에게 기자의 역할이나 언론사의 보도 책임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런 사유의 시간을 오래가질 여유를 주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결해 줄 정보를 이용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지금 내가 실시간 정보 생산에 참여하고, 주목하고 있다’는 정보생산 시스템의 ‘지금, 여기’라는 특징은 정보의 사실보다 정보의 실시간성을 더 주목하게 만들었다.

기술의 빠른 확산에 이용자들은 빠르게 적응했지만, 적응의 과정에서 선택되는 정보의 생산 주체, 정보의 성격, 정보의 영향력 등을 판단하는 데에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 뉴스는 더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기 시작했고, 방송 뉴스도 그러한 속도성을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국내 방송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고, 방송 편성시간대의 라이브 방송을 유튜브로도 동시에 중계하는 방식도 특별한 선택이 아닌 보편적 방식이 되었다.

이렇게 빠른 미디어 기술의 변화에 적응하고 이용자의 정보 소비 방식에 부응하기 위해 방송사들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콘텐츠 생산자(발화자로서의 진행자, 정보 생산자로서의 제작진)들은 ‘정확한 정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정보를 생산하는 속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방송 진행자들의 품격보다 진행자들의 인지도, 인기 등을 고려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던 ‘미투운동’이나 튀니지의 민주화 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재스민 혁명’처럼,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SNS가 우리 사회에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정보를 생산하는 방송사, 특히 지상파 방송사가 수행해야 하는 방송의 공적 책무,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여전히 크고, 중요하다.

KBS 쿨FM <황정민의 뮤직쇼>

하지만 최근 KBS 진행자들의 ‘말’이 문제가 되면서,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한 제작진의 가치나 정보 생산 방식에 대한 지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의 영향력, ‘말’의 중요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월 22일 KBS라디오 쿨FM의 <황정민의 뮤직쇼>에서는 진행자 황정민 아나운서가 최근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 즉 쿠팡 잇츠를 통해 음식을 주문한 고객의 과도한 컴플레인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점주의 사건을 퀴즈로 낸 것을 두고 청취자들의 큰 비판을 받았다. 한 청취자는 KBS 시청자 청원을 통해 “유가족에게 두 번 대못을 박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황정민 아나운서는 다음날 곧 사과했다.

KBS도 공식 입장을 냈다. 이러한 발 빠른 사과도 지상파 방송사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일 것이다. 하지만 공식 입장에서는 그러한 긍정적 신호를 읽기 어려웠다.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그 때문에 불편을 느낀 분들이 계시면 당연히 사죄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사과인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선한의도’와 방송에서 낸 문제는 맥락적으로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방송에서 퀴즈로 청취자들에게 선물을 걸고 냈다는 것은 ‘선한의도’가 아닌 잘못된 판단이다. 이 외에도 KBS 강승화 아나운서가 6월 8일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방송에서 남편의 거짓말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다는 사연에 대해 “원치 않는 임신도 축복이다”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역시 다음 날인 6월 9일 방송에서 사과했다.

두 번의 사례 모두 사과를 했지만, 발언 주체가 KBS 아나운서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생방송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에게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해,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이해 등이 요구된다. 앞서 소개한 퀴즈 문제의 경우는 제작진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므로, 제작진 역시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방송에서 강승화 아나운서(왼쪽)가 사과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말과 행위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물리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의 ‘고유한’ 양식”이라 설명한다. 인간은 말을 하고 행위를 통해 타자에게 자기 자신을 전달하고 타자와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말과 행위로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존재이며, 그럼으로써 ‘타인 곁에 존재’함으로써 ‘정치적 존재’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말하는 것, 즉 발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물며, 아나운서의 역할과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몇 년 전, 지상파와 종합편성 뉴스 채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진행자나 게스트 모두 자극적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에 신물을 느낀 시청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했고, 관련 심의기관의 지적을 받게 되면서 최근에는 주제나 진행자의 성품, 역량, 게스트의 전문성 등을 찾는 성향이 커지고 있다. 어찌 보면, 유튜브 등의 정보나 채널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소비하고 선택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잣대는 더 엄격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 특히 공영방송사가 SNS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전문 진행자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방송사의 구성원이 방송에서 어떤 말을 하는가, 어떤 내용의 발언을 하는가는 다른 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방송사 내부 가이드라인 점검과 방송사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방송사 구성원들이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는지 끊임없는 점검과 재확인만이 방송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대중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 이종임 경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1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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