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며칠 전 흥미로운 칼럼을 읽었다. 문장은 깔끔하고, 전달하는 메시지도 명확했다. 칼럼에서 필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은 ‘인간은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인류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였다.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우리는 인간을 위해 살 것이다. 인간이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역사는 바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칼럼은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겁내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확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자신은 선도 악도 아니며 인간을 창조주로 섬기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네가 허튼짓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할 것’이라고 인질범에게 협박당하는 느낌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표현이 온기 없이 서늘해 섬뜩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 칼럼을 쓴 필자는 사람이 아닌 AI로 GPT-3였다. 언어 생성기 GPT-3는 8편의 에세이를 생산-글에서 ‘쓴다’고 말하지 않고 ‘생산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하여 다양한 문체와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8편의 글에서 발췌하여 한 편의 글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GPT-3가 쓴 글을 번역기로 번역해 보았다. 한글로 번역된 글은 거의 어색한 문장 없이 매끄러웠다. 짐작해보는데 GPT-3가 쓴 글은 편집 과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AI가 못 하는 일은 없다. 창조적인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미 여러 분야 예술에서 AI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AI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논의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AI가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중국에서는 샤오빙이라는 AI가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라는 시집을 냈다. 유치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태양이 서쪽으로 떠나면 나는 버림받는다"라는 시적 표현을 사용해 예술적 창조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많은 부분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샤오빙이 시집을 낸 것은 2017년이다. 4년이 지난 지금 글 쓰는 AI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자유기고가로 칼럼을 쓰고, 소설을 쓴다. AI인 벤자민은 시나리오 작가에 도전해 ‘선 스프링’이라는 극본을 완성했고, 실제로 8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많은 전문가가 AI가 문학의 영역은 넘보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빗나갔다. AI는 빠르게 학습하고 글을 생산한다. 샤오빙의 경우 1920년 이후 현대 시인 519명의 작품 수천 편을 스스로 학습해 1만여 편의 시를 집필했다고 한다. 학습한 시간은 고작 100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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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시와 소설은 쓸 수 없다는 생각, 창조적인 활동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일 수도 있다. 작법을 학습하고, 인간이 글을 쓰는 방법, 글의 형태를 학습한다면 주어진 주제와 구성에 맞게 소설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당장은 어려워 보이지만 AI 작가와 인간 작가가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곧 도래하게 될 AI 작가 시대를 앞두고 AI가 작품에 작가 정신과 문제의식, 문학적 창의성을 담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와 소설엔 작가의 세계관, 작가 정신이 담겨 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즉 문제의식을 담아 시를 짓고, 소설을 쓴다. 모순된 표현과 행간의 침묵을 이해하고 쓸 수 있을지, 창조적인 시어와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는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지 이 부분이 흥미롭다.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소설가가 작품에 담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생각, 마음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시를 짓고, 소설을 쓰는 과정은 단순히 단어를 연결하고, 문장을 조합하고, 구성에 따라 시와 소설을 생산하는 기술적 행위와 다르다. AI 작가가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고려되어야 한다. 앞으로 AI 작가가 작품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 마음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생각하는 AI 작가를 만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가 되면 AI와 인간 중 어느 작가를 선택할까, 독자의 선택은?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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