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드라마 현장 노동자들이 위법적인 스탭 계약서에 대한 드라마제작사의 책임을 묻고 나섰다. 법률검토 결과, 제작사들과 현장 스탭들이 맺은 계약서는 불특정 계약기간, 포괄임금, 근로·휴게시간 문제 등 불법투성이었다.

22일 희망연대 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는 KBS, JTBC, tvN에서 방영된 8편 드라마의 ‘스탭 계약서’를 입수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문의한 결과를 공개했다.

희망연대 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가 스탭 계약서를 입수해 법률검토한 드라마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KBS <꽃피면 달 생각하고>(방송예정), <암행어사>, <일의 기쁨과 슬픔>, <좀비탐정>, JTBC <설강화>(방송예정), <보좌관>, <우아한 친구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스태프 계약서를 검토했다. 제작사는 ‘스튜디오 드래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래몽래인’, ‘스튜디오앤뉴’,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아이윌미디어’ 등이다.

법률 의견서에 따르면, 검토 대상인 8편의 드라마 모두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스탭 계약서는 전부 ‘업무위탁계약서’, ‘하도급 계약서’, ‘용역계약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탭들은 법상 근로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

근로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았다. 대신 계약 종료시점을 ‘프로그램 촬영 종료일’, ‘당사자의 의무가 모두 이행된 때’로 정하고 있었다. 계약 시작 시점을 ‘계약 체결일’로 정한 계약서는 4건이었다. ‘프로그램 방송 일시, 편성 일정의 변경 또는 방송 프로그램의 폐지 등의 사유가 발생하였을 경우’와 같이 제작사가 임의로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도록 정한 경우가 다수였다. 윤지영 ‘공감’ 변호사는 “모두 근로계약 기간을 불특정하게 명시했다는 점에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산정 방식을 제대로 적시하지 않았다. 관련 법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는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 방법에 관한 사항을 근로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스탭 계약서는 임금의 산정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을 임금으로 정했다. 윤 변호사는 “드라마제작 스탭들은 촬영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 내에 실근로시간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포괄임금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출장에 따른 교통비 등 업무 수행에 드는 필수 경비는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스탭 계약서는 모든 경비를 일당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4건의 계약서가 유류비를 별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실비 변상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법무법인 ‘공감’은 업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까지 스탭들에게 전가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임금 지급일을 특정하지 않고, 지급에 조건을 붙이거나 지급일을 유예하도록 정한 것도 위법이지만 모든 스탭 계약서는 ‘업무일지 제출, 검수 통과’를 지급의 조건으로 부과했다. 이동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하지 않은 계약서는 모두 문제다. 스탭 계약서 중 소정 근로시간, 업무의 시작과 종료시각을 정한 계약서는 없었다.

윤 변호사는 “근로시간을 ‘현장 집합 시간부터 현장 종료 시간’으로 정한 계약서는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을 정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일 최대 14시간까지 근무 가능, 촬영일 간 휴게시간 8시간 이상 보장’이라고 명시한 계약서도 제작사 측이 근로시간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휴게시간에 관한 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밝혔다.

스탭 계약서 중 촬영 준비 및 정리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계약서가 이동시간을 근로시간에서 배제했고, 이동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계약서조차 전체 이동시간 중 일부만을 인정했다. 유급휴일, 연차 유급휴가를 정한 스탭 계약서는 없었으며 스탭 계약서 모두 ‘해지 통보 즉시’ 혹은 ‘7일 후에 계약이 종료한다’고 정해 “위법하다”고 판단됐다.

근로기준법 제20조에 따라 제작사(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스탭 계약서들은 위약벌, 손해배상액을 예정하고 있었다. 드라마 <꽃피면 달 생각하고>, <보좌관> 스탭 계약서에는 “‘을’의 귀책사유에 의해 본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을’은 본 계약 제2조의 용역료의 2배를 계약 해지일로부터 7일 이내에 갑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드라마 <좀비탐정>, <암행어사>, <일의 기쁨과 슬픔> 스탭 계약서에는 “의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책임과 별도로 본 계약에 정한 업무위탁료의 2배를 부담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일부 스탭 계약서에는 감독급(팀장급) 스탭에게 팀원을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도록 강제하는 경우가 발견됐다. 윤 변호사는 “근로계약서에 4대 보험에 관한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감독급(팀장급) 스탭도 근로자인 이상, 드라마제작사가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감독급(팀장급) 스탭에게 전가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감독급 스탭에게 책임 전가하는 '하도급 계약서'

드라마 제작 현장은 대부분 스탭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다. 특히 제작사가 갑독급 스탭과 계약을 맺을 때 하도급 계약서를 사용한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드라마제작사는 감독급 스탭의 팀원급 스탭 운용에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꽃피는 달 생각하고> 하도급 계약서에는 “회사(감독급 스탭)는 팀원의 변경 시 제작사에 통지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원사업자의 귀책으로 발생한 비용을 수급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약정은 부당한 특약이지만 “을은 본 계약에 명시된 용역료 이외에 일체의 금액 혹은 현물이 급여를 요구할 수 없다”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 <보좌관>, <사이코지만 괜찮아>), “을은 본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여도 갑에게 별도의 비용을 요청하지 않는다”(드라마 <보좌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윤 변호사는 “귀책사유나 사정을 따지지 않고 비용을 스탭들에게 전가하는 취지의 규정들로 모두 위법”이라고 했다. 이밖에 전속성 문제, 손해배상책임 문제, 계약해지 문제, 저작권 문제 등이 존재했다.

22일 상암 CJ ENM 앞에서 열린 'CJ ENM, KBS, JTBC 등 방송사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불법적인 계약행태를 중단하고 근로계약서 도입하라' 기자회견 (사진제공=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대책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22일 상암 CJ ENM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드라마 제작 현장의 불법적인 계약행태를 중단하고 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이미 드라마 제작 스탭들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임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근무시간과 장소, 시작 시간과 종료시간이 확인돼야 하며 4대 보험적용, 초과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등이 책정돼야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제작 현장 어느 한 곳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곳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KBS의 스튜디오K, CJ ENM의 스튜디오 드래곤, JTBC의 JTBC 스튜디오, SBS의 스튜디오S 등은 거대 방송사들이 외주제작사를 자회사로 설립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불법적인 드라마제작을 외주제작사를 통해 활용하고 있는 부도덕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에 근로기준법 준수와 근로계약서 체결,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했으며,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통해 실태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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