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 칼럼] 이수(한효주)와 우진(김대명 외 123인)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2015년 개봉작 <뷰티 인사이드> 감상평을 말하기 전에 영화 몇 편을 짚고 가고 싶다.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박찬옥의 <파주>, 장건재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 자크 아노의 <연인>, 짐 쉐리단의 <브라더스>, 제이슨 라이트맨의 <주노>, 아그네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 선명하진 않지만, 이 영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를 마음대로 정하자면 ‘사랑’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그려내는 사랑이란 하나같이 정상(?) 범주와 거리가 멀다. 각각 주인공들은 성도착증 환자, 게이, 형부와 처제, 외국인, 소아성애, 형수와 시동생, 미혼모, 유부남이다. 쉽게 예상하듯 나이와 성별, 두 사람 사이의 관계 혹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로 쉽사리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가 답답하게 진행된다. <뷰티 인사이드>는 앞서 언급한 비정상적인(?) 사랑 영화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

매일 다른 모습, 매일 다른 문제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외모가 변하는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할 수 있는지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로맨틱하게 그려냈다. 화면도 화사하고 음악은 감각적인 고급 로맨스 영화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깔린 문제의식은 마냥 아름답지도, 유머러스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뷰티 인사이드>는 다분히 판타지 장르에 한발을 딛고 있지만 ‘외모의 변화’라는 게 영화 속에서도 그리 가볍게 넘어갈 만한 장애물은 아닌 탓이다.

외모가 변한다고 해도 두 사람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나 연인이라는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진이 결혼적령기의 남성, 혹은 적령기임에도 외모가 훌륭하지 않은 남성.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성별과 연령이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할 때 둘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변한다. 이에 적응하는 건 매일 다른 모습을 한 우진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야 하는 이수는 물론이고 18살 이후부터 매일 모습을 바꾸어온 우진에게도 벅차다. 그래서 둘은 매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매일 다른 형태의 문제와 직면한다.

두 사람이 매일 다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이수는 우진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네가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하겠다고. 사랑스러운 말이지만 이 말은 바꿔 말해 사랑하기 어려운 어떤 모습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때 관객은 ‘정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질문도 시의적절하지만 <뷰티 인사이드>가 뛰어난 점은 이 질문을 던질 때 캐릭터를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진과 이수의 행복한 시간은 대체로 결혼적령기 남녀의 모습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는 이진욱, 박서준, 이현우, 이동욱, 유연석 등 훤칠한 미남 배우들이 우진이 된다. 반면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거나 본인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때는 대체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진이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이수에게 고백할 때는 천우희. 이수가 우진의 변화를 처음 지켜볼 때는 우에노 주리, 이별 후 어머니를 찾아갈 때는 고아성이 우진이 된다.

우진이 여성의 모습을 한 장면들은 영화에서 정체성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거나, 눈물을 동반한 슬픈 장면들이다. 여성으로 변했을 때 유일하게 유머러스한 장면이 딱 한 번 있는데 이 부분이 영화의 주제를 명확하게 한다. 우진이 유일한 친구인 상백(이동휘)에게 본인의 비밀을 고백할 때다. 이때 우진은 50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친구에게 비밀을 고백한다는 것으로 연출되어 있지만, 이를 한 꺼풀 벗겨내고 본다면 커밍아웃하는 상황과 겹쳐진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

충분한 시간 동안 보여주기

그렇다면 <뷰티 인사이드>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가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사랑에 정상성을 부여할까. 영화의 결정적 장면에서 이수는 우진에게 ‘매일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맞다며 암시를 걸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이수가 우진의 변화에 적응하기 버겁듯이 관객 역시 우진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은 우진과 이수의 사랑. 나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사랑의 여러 형태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시간이다.

<뷰티 인사이드>의 러닝타임은 127분이다. 멜로영화치고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영화는 우진의 생존방식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아침 시력 테스트를 하고 팔 치수를 잰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관객은 이를 통해 우진이란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고민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진과 이수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기도하게 만든다. 미디어에서 소수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많이 다뤄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각도의 접근, 그리고 충분한 시간만이 정상적인 사랑이 있다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겉모습보다는 본질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는 많다. 하다못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미녀와 야수>, <왕자와 개구리>도 같은 주제를 말한다. 하지만 <뷰티 인사이드>처럼 겉모습이 어떻더라도 본질은 똑같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업 영화는 드물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리고 자연스럽게 메시지에 동조하고 주인공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도 특출한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뷰티 인사이드>는 쉽지 않은 작업을 가벼운 터치로 잘 풀어낸 특출한 작품 중 한 편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

지난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을 채웠다. 청원이 시작된 지 22일 만이지만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는 14년 만이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해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22명이 법안 발의에 동참하며 절대 철회는 없을 거라고 의지를 밝혔다.

다만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만은 시기상조라며 한발 물러났을 뿐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사회가 어지러워질 거라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스스로 생을 포기한 사람들을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사자성어를 쓰고 싶다면 시기상조가 아니라 만시지탄이 옳다.

차별금지법은 아니지만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은 합법이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말처럼 누구도. 매일 모습이 바뀌는 우진 역시 고독함 속에 남겨질 이유는 없다.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뷰티 인사이드>가 이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고 희망을 남겼으면 한다. 다음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이다.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 이들 사건들의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었듯이, 결혼은 때론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을 상징한다. 이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연방 제6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상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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