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밝혔다. 불과 3일 전 "대부분의 사안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던 이준석 대표의 입장이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17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과의 통화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지금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다만 여러 차별에 대해 보수진영 내에서도 확장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준석 대표는 "지금 당장 보수진영 내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진 분도 있고, 이게 혼재돼 있다"며 "제가 미국에서 교육할 때 보면 동성애와 동성혼 같은 것도 상당히 구분돼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혼재돼 있다보니 아직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준석 대표는 지난 14일 KBS라디오 '열린토론'에서 "정당 대표로서 개인 입장을 표명하기 굉장히 두렵다"면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이미 상당히 숙성된 논의가 있었다. 차별금지법의 범위가 포괄적인데 대부분의 사안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이준석 대표는 "개인의 특성에 대해 절대 차별해선 안 된다"며 성적 자기정체성에 대해 차별이 없어야 하고, 동성애는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준석 대표의 말처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사안일까.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입법과제'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87.7%가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21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81%)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 조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사항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최근 10만 동의를 얻은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게재한 동아제약 성차별 피해자는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틀렸다. 국민이 국회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중에' 차별금지법을 "지금 당장"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조합,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등은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을 선포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동의를 달성하기 전까지 21대 국회 논의는 거대양당이 외면해 중단됐다.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은 지난 1년 간 법안심사 테이블에 단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상민 의원을 비롯한 24명의 의원이 16일 모든 영역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평등법을 발의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5일 "6월 중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준석 대표의 발언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의원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등법을 대표발의한 이상민 의원은 KBS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통화에서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생물학적 나이만 젊지 실제는 구태 정치하고 다를 바 없다"고 질타했다. 이상민 의원은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불명확하고 비겁한 태도를 갖지 말고, 공감을 하면 추진해야 한다"며 "대표가 됐으면 당내 반대를 설득해 적극 속도를 내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선배들의 구태, 구습을 답습하지 않고 진전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추진하길 강력히 권한다"고 촉구했다.

장혜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성숙된 논의가 단 3일 만에 갑자기 '미성숙 단계'로 돌변하다니 평소 자나깨나 논리를 강조하던 이준석 대표답지 않다"면서 "소신을 말씀하시라. 남성이 차별받으면 안 되듯 동성애자도, 양성애자도, 트랜스젠더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공정의 원칙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젊은 당 대표로서 변화한 시대정신을 대변할 것이라 믿었는데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라는 실망으로 바뀌었다"며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정이 '차별금지'라는 아주 상식적인 요구조차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공정은 빈껍데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법 바로 지금'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후 이준석 대표가 내방한 자리에서 "집권여당과 제1야당 대표연설에서 당면한 시대적 과제인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는 점이 일치했다"며 "이런 김기현 원내대표의 생각과 이준석 대표의 생각이 당론으로 일치하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희 당론이 매번 확정되지 않았던 것은 이 논의 자체를 저희가 진행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차별금지법 그 자체가 논의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의 입장을 말씀드린다. 개인입장을 전화로 물어보면 언제든지 답변 드리겠고, 실제 저희 논의가 미성숙 단계이기 때문에 진행시키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양해 부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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