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이명박 대통령이 기어코 최시중 씨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민심을 돌아서게 만든 이명박 정부의 파행인사에 최 씨의 임명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우리는 도덕성, 전문성은 물론 방송 공공성에 대한 인식도 부재한 최시중 씨를 방통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최 씨가 방통위원장으로 부적격 인사라는 사실은 그의 취임사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 씨는 “방송통신은 국가 경제의 새로운 활력”이라며 “디지털 융합에 따라 향후 5년 동안 생산 효과가 160조 원이 넘고, 새로운 일자리도 100만 개 이상이 생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이든 돈으로 따지고 들면서 장밋빛 수치를 제시하는 이명박 정부와 그야말로 코드가 잘 맞는다. 또 “국민 편익과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 나가겠다”며 방송을 적자생존의 경쟁으로 내몰고, 공공성을 지키는 토대가 되었던 제도를 없애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반면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은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할 가치”라는 대목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민사회의 우려대로 최 씨에게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마인드’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거듭 확인되었다.

한편 시민사회와 언론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이명박 대통령이 밀어붙인 ‘고집인사’, ‘독단인사’의 문제를 언론들은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특히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최 씨 임명을 계기로 자신들이 방송에 진출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며 단 한 줄로 언급했다.

동아일보는 27일 <방송통신위 공식 출범… 앞으로 과제는>이라는 기사에서 최 씨의 취임사를 인용해 ‘경제성’과 ‘경쟁’을 강조했다. 또 ‘방통위 업무현황 보고’ 자료를 인용하면서 ‘공영 방송에 대한 개혁 예고’, ‘겸영 막는 규제 타당성 검토키로’ 등을 소제목으로 뽑아 ‘공영방송 민영화’가 ‘공영방송 개혁’인 것처럼 주장했고, ‘소유 겸영 규제 완화’를 기정사실화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시동 걸린 ‘방통융합 엔진’>에서 방송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한 최 씨 취임사에 대해 “미디어 융합 산업이 국가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며 우호적으로 보도하고, “이명박 대통령도 융합 산업의 부가가치를 강조했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중앙일보는 또 “최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민의 이익’이란 키워드를 거듭 강조했다”며 “향후 ‘지상파 독과점이 심각한 방송 분야에도 이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원칙이 적용될 전망”이라고 보도해 ‘방송진출’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최 씨 임명을 둘러싼 각계의 거센 비판과 논란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시민사회와 언론현업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소개했다. 특히 한겨레는 ‘공영방송 민영화’와 ‘신문방송겸영’ 허용에 대한 언론·시민단체의 우려와 거대족벌신문들의 방송진출 움직을 전했다.

방송의 경우 MBC가 2건의 보도를 내보냈다. 첫 보도 <임명강행‥비난>에서 MBC는 최시중 씨 임명과 관련해 “부적격 논란이 제기됐던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에 이어 네명째”라며 “야당들은 대통령의 코드인사에 고집인사라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어진 <산적한 현안>에서 “최시중 초대방송통신위원장은 먼저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강조했다”며 최 씨가 취임사에 밝힌 내용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비록 “공익성에 대한 배려와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한국언론학회장의 인터뷰를 싣기는 했으나 전체 리포트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형식적인 인용에 그쳤다.

SBS는 <임명‥반발>에서 최 씨 임명과 관련해 “야당은 현 정부의 오만을 드러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는 특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에 대해 국민을 안중에 두지않겠다는 발상이라며, 총파업도 불사하는 강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며 야당과 언론현업단체의 비판을 전했다. 그러나 최 씨 체제의 방통위 아래 벌어질 방송계의 변화와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못했다.

KBS는 단신에 그쳤다. 그 동안 최 씨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탐사보도’를 통해 발굴해, 최 씨가 방통위원장에 부적절한 이유를 알렸던 KBS가 정작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자 단신 정도에 그친 것은 대단히 아쉽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론을 무시한 채 최시중 씨 임명을 강행했지만, ‘최시중 체제의 방통위원회’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위원장의 도덕성․전문성 부재와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 공공성 보장에 대한 확고한 인식 부재와 그에 따른 방송정책의 파행적 수립은 방송계에 파국을 몰고 올 것이다.

최시중 씨는 하루라도 빨리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면 방통위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민사회단체, 언론현업단체들과 함께 최시중 씨의 퇴진과 방송 공공성 사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끝>

2008년 3월 2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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