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자 복직, 한국일보 정상화를 위한 시발점이다 -

지난 겨울부터 억지 기운을 내며 피켓을 들고 서있는 우리 앞으로 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혹자는 냉소를 뿌리며 지나갔고, 누구는 애써 외면하는 척 했지만 속내의 관심을 숨길 수 없었다. 이곳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맞으며 하기 알맞은 것 중 하나가 지난 세월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었다. 지난 100일 동안 한국일보 조합원이 경험한 짧게는 지난해의 해고 무효 투쟁부터 길게는 입사 첫 날 기름 냄새에 헛구역질 했던 시기까지 시간 여행은 자유롭기만 했다. 평화로운 여행 한켠으로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 다시 일어나고, 어쩌면 그래서 아직 살아있다는 자존감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기를 100일이 지났다.

기억 속 여행을 통해서 분명해 진 것도 있다. 내가, 우리가 이렇게 가당치 않은 자리에 서서 나지막하지만 강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을 때, 정작 그 소리를 차려 듣고 사무치게 뉘우쳐도 늦었다고 원망 받을 사람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호황은 호황이라고 쓸어 담기에 바빴고, 불황은 불황이라고 빼돌리기 급급했다. 그들이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했던 무언가를 찾아내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은 어떻게 하면 회사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할 것인가에 몰두해 있을 것이 뻔하다. 한쪽에서는 잘라내고 입 막아대기 바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엑소더스 물결을 이루는 기자들 바짓가랑이 잡기 버겁다. 비전(費錢)도 없고 비젼(vision)도 없다.

짧고 가늘지만 이것이 한국일보의 역사를 관통하는 맥(脈)이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지나 미래를 지배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모르는 부류에게 이는 더욱더 명확할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는 단지 하찮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흔들림 없이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국일보사 직원이나 해고자 뿐 아니었다. 언론노조 모든 조합원들이 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아둔함을 힘으로 아는 사람답지 못한 이들이 끝내 뉘우치고 깨닫지 못해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승리할 것에 의심치 않는다. 승리는 숫자놀음이나 기운만으로 잡아챌 수 없다. 끝까지, 아주 지독스럽게 끝까지 남아 싸우는 쪽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난 100일간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이유로 벅차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를 타협의 대상쯤으로 알고 있다면 싸움은 일찍 끝날 수도 있다. 우리의 요구를 힘들어서 애걸하는 생필품 수준으로 알고 있다면 이미 끝난 싸움일 수도 있다. 노동자로 살면서 끝까지 잃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그것을 몇 냥 돈푼에 팔아넘기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신뢰를 통한 승리를 확인시켜 줄 것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보다 힘겨워하는 가족과, 우리를 믿고 싸우는 동지들에게 반드시 안겨줄 것이다.

이제 또 하나의 투쟁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칠 수 없는 기운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을 이어갈 터, 그 끝을 보고자 한다면 장재구 회장과 경영진이 끝내 계란처럼 바위에 부딪쳐 깨질 것을 막지 않겠다. 뻔한 싸움의 결과를 제 손으로 제 눈 가린다고 바뀌진 않을 것이다. 우리도 그 끝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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