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경제에 위기가 없던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널리즘은 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호황은 있어도 저널리즘 호황이라는 말은 없다. 다른 영역이기 때문일 게다. 방금 전까지 저널리즘은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터널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는 질문의 방식을 묻는다. 정해진 결론은 없다. 미디어스는 질문의 방식을 묻고 있다고 판단되는 언론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의 방식은 다양하며 다양함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겨레가 국내 신문사 중 최초로 후원회원제를 시도하고 있다. 광고 중심의 수익 구조를 ‘독자 중심’으로 바꿔보겠다는 시도다.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는 ‘10만 후원-구독 회원 멤버십’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 후원회원제 ‘서포터즈 벗’을 론칭했다. 서포터즈 벗은 금전 후원과 주식 매입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용자는 5천 원 이상 일시 후원이나 월 1만 원 이상 정기후원을 할 수 있다. 주식 구매의 경우, 1주당 5천 원이며 50주 이상 구매할 수 있다.

미디어스는 ‘서포터즈 벗’ 론칭을 주도한 류이근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을 만나 후원회원제가 한겨레에 가져다줄 변화에 대해 물었다. 류 실장은 “후원회원제는 한겨레의 체질을 바꾸는 시도”라고 밝혔다. 아래는 류 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한겨레 사옥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Q. 한겨레는 왜 지금 시점에 후원회원제를 시도하는가

갑자기는 아니다. 한겨레는 2017년 기사 후원제를 실시했으며 한겨레21은 2019년 매체 후원제를 실시했다. 다른 언론사도 오래전부터 후원제를 실험해왔다. 이러한 내적·외적 환경을 따져본다면 ‘갑자기’는 아니다.

후원회원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독자 기반 생존이다. 언론사는 더 이상 광고 중심의 수익모델 방식으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 다만 광고 중심의 수익모델이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회원제를 지연시킨 것일 뿐이다. 한겨레 후원회원은 광의의 독자다. 한겨레 기사를 읽으며 훈훈함, 공감, 감동, 분노, 연민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후원을 받아 한겨레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론 광고주라는 대자본에 의존하기 보다, 후원회원들의 지지만으로 한겨레가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Q. 후원회원 목표를 10만 명으로 설정했다. 왜 10만 명인지, 가능한 숫자인지 궁금하다

우선, 숫자로 후원회원제의 성패를 논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후원회원 10만 명’은 김현대 대표이사가 공약으로 제시한 숫자다. ‘후원회원 10만 명’의 비교준거는 뉴스타파다. 뉴스타파는 현재 후원자 4만 명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후원회원제를 가능성만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후원회원제를 비즈니스 모델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인적 자원을 엉뚱하게 소모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구독자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유료화에 두번 실패한 적 있다. 실패 당시 뉴욕타임즈가 기대한 구독자 수는 600만 명에 한참 못미친다. 가디언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가디언 후원자는 100만 명이 넘지만 초창기에는 1만 명을 겨우 넘었다. 이들 언론사가 유료화·구독제를 시도할 당시에는 불가능한 숫자였지만, 지금은 현실이 됐다.

26일 기준으로 후원자는 600여명이다. 일시 후원자보다 정기 후원자가 3배 가까이 많다. 일시 후원자보다 정기 후원자가 많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또한 후원회원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한겨레 내부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한겨레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한겨레가 정부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여러 반응이 민감하게 들어왔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외부의 목소리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후원회원들이 보내는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가 기자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Q.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수가 줄었으며 뉴스타파 역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후원자 이탈을 경험했다

후원회원은 내적, 외적 요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내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처럼 한겨레의 특종이 빛을 볼 때는 후원회원은 늘어나고, 시대적 오보를 내면 줄어들게 돼 있다. 외적으로는 다이나믹한 정치사회 환경에서 한겨레의 사회적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한겨레가 이러한 요인을 피할 순 없다. 변수는 상수로 봐야 한다.

이러한 변수가 있다고 해서 후원회원제를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후원회원제를 작동시키기 어려울 정도의 변수도 아니다. 한겨레에 대한 등락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후원을 유지하는 회원들이 있다. 최근까지 한겨레가 여러 논란에 시달렸지만 관심을 이어온 독자들이다. 이분들은 한겨레가 자신의 관점과 다른 보도를 했다고 해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후원자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또한 한겨레가 창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가치가 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정치세력과의 거리두기, 끊임없는 비판과 감시가 그것이다. 이런 가치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후원한다. 한겨레가 이들의 기대를 갑작스럽게 배반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스)

Q. 독자들은 ‘한겨레니까’ 더 많은 실망을 하기도 한다. 기성 언론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이 한겨레에서 발생하면 분노가 표출된다

그건 숙명이다. ‘왜 한겨레만 엄격하게 바라보는가’라고 이야기해선 안 된다. 분노한다는 건 한겨레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시민들의 눈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고, 저널리즘을 망가뜨리지 않게 한다.

Q. 언론노조 한겨레지부가 후원회원제에 대한 여러 비판을 내놨다. 대표적으로 ‘후원회원제와 함께할 콘텐츠 전략이 부재하다’, ‘내부설득이 부족했다’ 등이 있다

노동조합의 지적은 애정과 지지가 전제되어 있다고 본다. 노조는 꼼꼼하게 문제점을 지적해줬고, 귀담아 듣고 있다. 후원회원제의 성패는 콘텐츠에 담겨있다. 다만 콘텐츠는 후원회원제보다 상위에 있는 전략이다. ‘콘텐츠 전략은 어떻게 할래’라는 질문은 과거의 연장이고 현재의 연속이다. 하루아침에 완성될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한겨레의 콘텐츠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후원회원제를 계기로 해 콘텐츠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야기하는 게 시작점이다. 한겨레가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한겨레가 어젠다를 주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겨레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고, 후원회원제는 한겨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분명한 건, 한겨레가 강화할 콘텐츠는 선정적인 편들기 기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차별화된 분석 기사라는 점이다. 후원회원제를 통해 뉴스룸을 자극할 것이며, 뉴스룸 역시 한겨레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접근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내부설득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선 조직의 특수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겨레는 주인 없는 회사로 다양한 거버넌스가 있다. 일반적인 회사와 달리 일사분란하지 않고 파편화된 측면이 있다. 회사 차원에서 전략을 실행할 때 내부 설득과 동의가 어떠한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모든 구성원을 다 설득하고 동의받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긴 쉽지 않다. 후원회원제 론칭 전 수십 번 설명했지만 그것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원회원제를 실시한 후 다양한 변화가 찾아왔다. 반대하던 구성원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Q. 후원회원은 한겨레에게 어떤 의미인가. 후원회원과의 소통 역시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한국 언론은 독자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독자가 내는 구독료와 시청료로 언론사가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광고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구독료와 시청료를 내는 독자들의 중요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충성독자 확보를 위한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독자를 쉽게 잃어버렸다. 포털 탓만 할 순 없다. 한겨레 역시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른 언론사보단 디지털 충성독자가 많은 편이지만, 한겨레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소비하고 주변에 권유하는 독자는 적다. 디지털 독자를 확보하지 않으면 후원회원제를 성공할 수 없다.

후원회원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통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정책이 개인화된 마이페이지 제공이다. 그동안 언론사들은 독자들에게 마이페이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는 독자들은 충분한 서비스를 누리지 못했다. 단순히 ‘마이페이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넘어, 한국 언론 환경에서 어려운 시도를 한 것이라고 봐달라.

또한 후원회원과 직접 소통을 강화하려 한다. 페이스북에 ‘서포터즈 벗’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었으며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후원회원에게 여러 리워드도 제공한다. 향후 정기 후원자, 장기간 후원자를 모시고 여러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 북콘서트 초대, 기자와의 대담 등이다. 후원회원들이 전해준 응원의 메시지는 조직 내부에 공유할 예정이다.

Q. 후원회원제와 콘텐츠 유료화를 결합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원회원제는 오픈 저널리즘인데, 콘텐츠 유료화를 결합시킬 수 있을까

한겨레가 콘텐츠 유료화로 나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콘텐츠 유료화는 아직 먼 이야기다. 후원회원제와 콘텐츠 유료화를 병행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돌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결합할 수 있다. 가디언 역시 후원제를 실시하면서 ‘광고 없는 페이지’ 형태의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거쳐야 한다. 아직 확답을 할 순 없지만 하드 페이월(기사 전면 유료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류이근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 (사진=미디어스)

Q. 끝으로 한겨레의 후원회원제를 지켜보고 있는 언론사에 한마디 해달라

후원회원제를 실시할 수 있는 언론사는 많지 않다. 독자 자산, 저널리즘 지향성이 없는데 후원회원제를 실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사가 후원회원제를 실험해보면 좋겠다. 한겨레는 후원회원제를 론칭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가장 큰 자극은 ‘독자 없는 언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털 중심의 공짜뉴스 생태계에서 독자와의 관계가 단단해질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후원회원제를 실시하면 독자의 중요성을 재발견할 수밖에 없다. 후원회원제와 맞물려 자체 플랫폼 개발, 디지털 전환, 콘텐츠 혁신을 고민하게 된다. 후원회원제가 가져다 준 자극이자 자산이다.

다수 신문사가 ‘디지털 퍼스트’를 이야기하지만 정책 방향은 PV를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돼 있다. 어떤 방식의 디지털 플랫폼을 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후원회원제를 실시한다면 이런 부분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또한 독자 중심의 생존 모델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광고가 아닌 독자가 지불하는 구독료·시청료로 운영돼야 ‘건강한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후원회원제는 언론사의 체질을 바꾸는 시도다. 한겨레 역시 체질을 바꿔나가고 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은 건 분명하니 다른 언론사도 대열에 동참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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