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드라마시티>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오는 29일 방영을 끝으로 종영된다고 한다. 이에 한국방송작가협회와 KBS PD협회, 드라마 작가들의 폐지 철회 촉구 성명이 잇따르는 등 반대 목소리가 높다. 단막극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드라마시티>의 폐지는 제작자와 시청자 그리고 KBS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현업인 특히 신인 작가․PD들은 실험적 드라마 제작의 유일한 장을 잃게 되고, 시청자들은 참신한 작품을 접할 기회를 빼앗기게 생겼다.

KBS가 비난이 거셀 것을 예상하면서도 <드라마시티>를 끝내 폐지하기로 한 것은 금전적 손익만을 따져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드라마시티>의 존재는 단순히 시청률이나 수익성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신인 작가, 연출자, 연기자의 등용문으로서 이들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유일한 장인 단막극은 장편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신선하고 의미 있는 시도들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시청률과 상업성에 맞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과 탄탄한 구성과 연출로 많은 시청자와 시민단체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유일한 단막극 <드라마시티>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격려 속에 좋은 작품으로 고군분투하며 그 존재의미를 충실히 지켜온 것이다.

<드라마시티> 폐지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종영이 아니라 ‘단막극’이라는 하나의 드라마 형식 자체가 사라질 위기를 안고 있다. 각계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KBS 관계자는 "<드라마시티>의 폐지가 곧 단막극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향후 경쟁력 있는 단막극을 만들자는 뜻에서 내려진 고육책"이라고 말했다. 또 "저비용으로 독창성과 실험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막극 기획안이 올라온다면 언제든 편성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 좋은 단막극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토양을 없애버리는 게 말이 되는가. 한 마디로 시장가치가 없어 폐지해놓고 명분이 없으니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KBS는 공영성 강화를 내세우며 수신료 인상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드라마시티> 폐지를 비롯해 <대왕 세종>의 2TV 이전, <뉴스타임>폐지, 시트콤 신설 등 이번 봄 개편 내용을 보면 KBS가 공영성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경영상 어려움은 광고수익이 적은 프로그램을 없애서 해결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재정운용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프로그램으로 방송문화를 발전시키고 공영성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KBS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안전경영을 도모하는 길이다.

“KBS는 공영방송이기 전에 하나의 기업이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공영성을 강조할 수 없지 않은가” 이번 봄 개편 비판에 대한 KBS 관계자의 항변이다.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방송발전을 위해 꼭 있어야 할 프로그램의 토양을 육성하는 것이 KBS가 지켜야 할 공익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전제이다. 단막극은 드라마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한 실험장이자 청정지역이다. KBS가 경영 개선을 핑계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프로그램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2008년 3월 26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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