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성노동자와 같이 사이버불링(온라인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에 취약한 소수자를 위한 혐오 표현 규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수자는 자신의 신분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가해자를 모욕죄로 고소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이 때문에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표현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성노동자 시민단체 ‘주홍빛연대 차차’는 25일 <성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한 표현의 자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성노동자 활동가 왹비(활동명) 씨는 자신이 겪은 사이버불링 사례를 소개하며 “소수자 혐오 표현 규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왹비 씨는 지난해 5월 트위터에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 피해를 털어놨다. 일부 이용자들은 왹비 씨의 게시글을 캡쳐해 “성매매는 인간을 갉아먹는다”, “지속가능한 삶과 행복을 원한다면 저쪽엔 절대 발 들이지 말라”고 비난했다. 왹비 씨가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하자 이용자들은 “성노동 운동가로서 활동을 지속하면 불행 서사를 더 읊어주겠다”고 협박했다.

왹비 씨는 “사람들은 고소하라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고소하려면 경찰에 성노동자임을 자백해야 하고, 이는 스스로 처벌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성노동자는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도 신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왹비 씨는 “현재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이 부재한 상태”라며 “혐오 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고, 혐오 표현에 취약한 성노동자를 보호하는 플랫폼 안전장치가 고안돼야 한다. 또한 성노동자의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노동 활동가인 롤라 헌트는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소수자를 향한 공격도 심해지고 있다”며 “성노동자의 권리는 단순히 수호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성노동자도 소수집단의 일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자칫 표현의 자유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롤라 헌트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과 표현의 자유는 다른 문제”라며 “혐오 표현은 물리적 폭력과도 연결돼 있다. 혐오 표현 제재 뿐 아니라 SNS 플랫폼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왹비 씨는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며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지만, 소수자를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안은 성별·장애·종교·사상·성 정체성·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을 당할 경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노동을 비범죄화해야 성노동자의 권리가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성노동자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라며 “성노동이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물론 일반인들도 온라인에서 성노동자를 탄압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UN 여성차별 철폐위원회는 성노동을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성노동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차단하는 것은 성노동자의 생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독일·프랑스 등 국가의 행정기관도 일부 표현물을 삭제·차단하지만 테러·폭력 관련 내용에 한정된다”며 “성노동 광고 표현물을 삭제·차단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예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 성매매금지법이 있다고 해서 관련 정보를 없애는 건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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