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 1년이 넘도록 국회 논의가 답보 상태에 머물자 시민사회가 직접 입법 행동에 나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통해 10만 국민동의를 얻어 올해 안으로 입법을 성사시키겠다는 취지다.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조합, 참여연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등 시민사회는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을 선포했다.

이날 오후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피해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글을 게재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은 올해 1월부터 도입된 제도로 30일 이내에 10만명 동의를 얻을 시 청원은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차별금지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심사를 맡는다.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조합,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등은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을 선포했다. (사진=미디어스)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두나 변호사는 국민동의청원 취지를 대독했다. 피해자는 "25년 인생의 대부분을 기득권으로 살았지만 6개월 전 모든 권력이 단지 저의 성별을 이유로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며 "제게, 그리고 우리에게 '평범'을 앗아간 국회는 직무유기를 멈추고 이제 답하라"고 촉구했다.

피해자는 "모든 권력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 또한 언제든 약자,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며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틀렸다. 국민이 국회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입법과제'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87.7%가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21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81%)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 조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사항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24일 오후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피해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글을 게재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침묵을 질타하며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차별금지법의 여정, 이제는 평등을 향해 한 발 내디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혐오와 차별이 민주주의를 해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자임한 문재인 정부, 21대 국회에서 책임 있는 논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민주당 대표 경선 국면에서 후보 전원에게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나 현재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희망법' 대표 박한희 변호사는 법과 제도가 차별피해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가리켰다. 박 변호사는 2017년 열릴 예정이었던 여성성소수자 생활체육대회의 대관을 민원이 제기되자 취소한 동대문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 변호사는 "차별 가해자가 으레 그러하듯 동대문구는 절대 자신들이 성소수자 행사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판사는 저희에게 동대문구가 성소수자를 차별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며 "상대방의 차별의도를 어디까지 입증 가능할까. 하물며 충분한 자료를 갖지 못한, 법률적 지식이 없는 차별 피해자들은 어떠할까"라고 물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차별이 해소되고 예방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겪는 무수한 차별경험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고, 사회가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며 "때문에 포괄인 차별금지사유를 규정하고 입증책임의 전환 등의 규정을 갖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절실한 것이다. 차별을 차별로 인정받게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선 '나중에'라고 발언한 지 4년이 지났다"며 "2021년 대한민국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센 역풍, 온갖 혐오와 차별이 판치며 4년 전보다 거꾸로 가는 듯 한데 차별금지법의 국회 문턱은 너무나 높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공동대표는 "최소한의 차별을 하지 말자는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의 상태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재"라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은 오히려 차별을 하던 이들이 차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과연 차별은 끝났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공동대표는 ▲OECD 성별임금격차 1위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이어진 '심기보좌노동' ▲성매매·디지털성착취 ▲'비동의 강간죄' 입법논의 부재 등을 지적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우리사회 차별은 단선적 차별이 아닌 복합적·중층적 차별이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비정규직 성소수자에게 벌어지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라며 "이주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은 결국 임금·노동조건·조직문화 등 현장에서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동자들의 안전한 일터와 기본적 권리 보장을 위한 싸움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200만 이주노동자들은 국적, 언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보장 제도와 노동권·인권 보장에서 차별받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차별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한국 경제가 나빠지면, 정부 정책이 실패하면 이주노동자를 공격한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 찍는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주민을 비롯한 이 사회의 모든 이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측은 이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의견서 형태로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저는 저를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안녕하세요, 저희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신데 말씀하시면 통역할게요'라고 부모와 나를 소개했을 때 쏟아지던 동정과 멸시의 눈빛을 더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사회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평화의 에코-100'이 99명의 사람들로 채워졌다면서 남은 한 자리에 대해 "남들과 같지 않아서,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부합하지 않아서, 조금 달라서, 누군가가 요구하는 모습이 되지 못해서 차별 받았던 당신의 자리"라고 설명했다.

★ 바로가기 =>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