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언론의 표정은 복잡해 보인다.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의 ‘전략적 모호성’을 벗고 한미동맹 복원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 것인지 비교적 호의적인 논조이다. 그러나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프레임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우리 정부의 접근법이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국익 우선’이라는 대전제 하에 다른 국가들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전통적 ‘적성국’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였다. 그러다보니 중국 등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대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독재자’에 우호적이었던 아이러니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가 세다지만 나도 그만큼 세니 한 번 붙어보자”는 태도였던 것이다.

한미관계도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단지 미국의 국익에 복속하는 굴욕을 감수하거나 미국의 국익이 아닌 ‘다른 기준’을 요구하거나이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이 양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논리는 이전과는 다르다. ‘국익’이 아니라 ‘가치’를 말하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은 개방과 포용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데, 이들이 중국을 적대하는 이유는 규범을 지키지 않는 국가여서다. ‘동맹’이 중요한 이유는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명분에 기댄 것이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든 정치외교와 경제 영역에서 반중전선의 강화라는 결론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단지 이익 때문에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은 반대쪽이 반발하기에 쉽지 않지만, 명분 있는 가치에 동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명분론은 문재인 정권의 외교적 공간을 넓혀줬고 이런 사정이 반도체 배터리 분야 국내 기업들의 공격적 투자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유리한 고지에 서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를 의도하였겠지만, 그럼에도 미국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라는 떠맡으라는 것과 자유주의적 가치에 동조하는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라는 것은 다른 얘기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미일정상회담의 그것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에는 동조하고 있으나 일본처럼 그러한 가치를 관철할 것을 ‘요구’하거나 ‘촉구’하는 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때문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가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해도 노골적 반발은 어렵다. 이 점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한중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를 충분히 고려한 듯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한 만족감을 표시한 것의 배경엔 이런 맥락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신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 백신의 추가 확보는 쉽지 않았다. 그럴 방법 자체가 마땅치 않은데다 선진국이고 방역에 성공했다는 한국에 백신을 추가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에 미국 내 여론이 의문을 표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과 함께 작전 수행을 해야 하는 한국군에 대한 백신 제공이라는 나름의 ‘묘수’를 찾아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 정도도 성과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애초 ‘백신 스와프’라는 개념을 언급해 기대치를 높인 정치권과 정부의 행위에 대해선 별도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모더나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한 위탁생산 계약에 나서면서 기술이전 수준을 최소화한 것은 예상됐던 결과이다. mRNA 백신은 새로운 기술인 데다 특허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원액 생산이 가능한 기술이전은 쉽지 않으리라는 게 대개의 평가였다. 그렇다고 지금 수준의 위탁생산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게 사실이기에 이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위탁생산 계약 사실이 차후의 백신 추가 공급 계약 등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명분론’이 다소 장애가 될 가능성을 남겼다.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판문점 선언 등 기존 합의의 연장선에서 대북협상을 이어 나간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이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인권문제를 거론한 것이나 비핵화라는 ‘출구’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는 언급 등은 북한으로서는 대화를 거부할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의 북미협상은 남북미 3자가 합의하면 대화가 가능했던 트럼프 시대와는 달리 동아시아 각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형태로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정까지 보면 한미정상회담 결과는 변화된 미국의 리더십에서 생겨난 기회를 나름대로 잘 포착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남은 건 이러한 성과를 무엇으로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국이 미래의 성장동력이란 측면에서 더 많은 국익을 성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이익을 어떤 원칙으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또다른 정치적 쟁점이다. 가령 ‘백신허브’는 돈을 버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세계 백신 공급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국민의 집단면역 형성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지만 동시에 빠른 경기회복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ESG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인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가치’가 ‘이윤’을 뒷받침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착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양자의 충돌이라는 균열이 드러났을 때 결국 택하게 되는 것은 ‘가치’인가 ‘이익’인가? 보통은 후자겠으나 앞으로는 ‘가치’가 우선인 정치가 가능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누구 편에 유리한지를 따지는 이런 저런 헐뜯기와 과대포장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논하는 데까지 언론의 논의를 확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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