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채윤 칼럼] 기자는 어떻게 사건을 선택할까.

“○○○에 올라온 글 보셨죠?”

일을 하다 보면 기자들로부터 종종 연락을 받는다. 최근 발생한 이슈와 관련하여 의견을 구하는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이게 정말 취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실제 다수의 인터뷰 요청은 ‘인터넷에 ○○이란 글이 올라왔는데 해명하라’라는 요구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기자 스스로 그 글의 문제 제기의 타당성, 발언의 맥락과 배경 등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기도 전에 기자들은 오로지 ‘그 의견에 대한 답변’을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형식에 그치고 만다. 이것이 진짜 취재인가? 왜 언론은 스스로 사유하며 취재하기보다 대중의 욕구에만 집착할까?

18일 오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 고 손정민 씨의 추모공간이 마련돼있다. Ⓒ연합뉴스

최근 까계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까계정이란 주로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익명으로 나타나 소위 정의구현이란 명목하에 관련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사건의 내용이 사라지지 않도록 온라인상에 박제한다. 그리하여 까계정은 처벌되기 어려운 비도덕적 행위를 한 ‘나쁜 사람’에게 신상공개를 통한 수치심 주기 처벌을 내림으로써 대중에게 청량감을 선사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정의구현이라는 이름으로 까계정이 운영되는 형태이다. 사건 당사자의 신상 공개는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의 개인적인 삶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심지어 인터넷에 무심코 남긴 흔적들(대형 포털 질문 내용, 음식점 후기 등)까지 모두 찾아내 공개한다.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음증은 폭로된 그들의 사생활을 쫓아가며 환호한다. 언론은 자연스럽게 이것을 쫓아가며 자극적인 타이틀과 이슈 몰이에 올라타 기사를 찍어낸다.

까계정과 까판, 즉 망신 주기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언론 보도로 이어진다. 왜 언론은 정의구현이란 목적하에 자행되는 온라인상의 폭력을 지적하거나 원인을 분석하기보단(물론 소수의 언론에서 이런 기사를 내기도 한다) 이를 중계하고, 퍼트리는 방식으로 폭력에 편승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까계정에 소개된 이슈는 이미 대중의 인기와 몰입이 입증된 양질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유하지 않고 오로지 이슈만을 그대로 옮겨 답변을 강요하거나, 혹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함에도 까계정을 실시간 중계하듯 쫓는 것은 오로지 기사의 대중 선호도를 올리기 위한 전략이자 선택이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얼마 전 있었던 안타까운 두 사망 사건을 기억해보자.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인재가 또다시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갔지만, 인기가 없는 소재인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언론도, 소셜 네트워크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인이 불분명하여 의심을 자아내는 한 죽음은 자극적인 보도와 자칭 ‘탐정’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콘텐츠가 생성되어 퍼져나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안타까운 두 죽음에 대해 어떠한 적절한 애도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언론이 폭력을 전시하는 방법으로 인해 우리가 문제 발생의 구조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실패한다. 더불어, 그들이 그러한 자극적인 방법으로 폭력을 전시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사건에 대한 본질보다 감정적 해소와 정의구현이라는 쾌감만을 쫓는 우리라는 대중의 책임도 크다.

언론이 폭력을 전시하며 자극적으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러한 사건만을 요구하고 소비하는 대중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인권교육부 전문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06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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