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지역’에 살지만 ‘지방’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작 알고 싶은 ‘지역’ 소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굳이 ‘지방’과 ‘지역’이란 단어를 구분해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작금의 서울 외 지역에 있는 방송국은 사실 ‘전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 서울의 변방에 배치해놓은 것과 다름 아니다. 광역시와 광역도의 거점도시에 설치된 대부분의 방송국들은 광역을 커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거점도시 뉴스들을 서울 방송의 테두리에 끼워 넣어 ‘전국’이란 명분과 ‘지역’뉴스도 다루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 이용된다.

대부분 광역 방송국들이 그러하겠지만, 충청북도만 봐도 충북을 커버하는 방송국 기자수가 10여 명 정도이다. 그 기자수로 충북 12개 시 군을 커버한다는 것은 당초부터 무리수다. 기껏해야 청주시, 충북도청과 도 기관들, 나머지는 시군 보도 자료로 ‘땜방’해야 하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지역 밀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건 누구보다 주민들도 안다. 그냥 지역에 주요 사건 있을 때 와서 제대로만 보도해주길 희망하는 수준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게 현실이다. 지역 실정을 잘 모르니 맥락이 상실되고 단발성 보도로 그치는 게 허다하다. 똑같은 수신료를 내는데 왜 지역 뉴스는 홀대받는가. 특히 광역거점도시에서 물리적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이중 소외’를 겪는다. 변방의 농촌지역은 뉴스의 사막지대이거나, 관급 보도자료의 장맛비가 연중 쏟아지는 지역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KBS와 MBC는 광역화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이 마치 ‘혁신’인 것마냥 포장하고 있다. 얼마 전 MBC 박성제 사장이 말했다. ‘지역 콘텐츠를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 세종과 대전, 충남과 충북을 모두 아우르는 뉴스 등 광역 콘텐츠를 강화하는 동시에 비지상파 플랫폼을 충분히 활용해 지역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메가 MBC의 ‘큰 포부’를 밝혔다.

KBS도 마찬가지다. KBS 양승동 사장은 2004년에 이어 또 최근의 7곳의 지역국을 폐쇄하는 것을 공식화했다. 유일하게 거점도시가 아닌 곳에 남아있는 진주, 순천, 안동, 원주, 목포, 포항, 충주 등 그래도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제법 큰 도시들이다. 이 도시에 남아있는 지역국을 폐쇄하고 광역 총국에 역량을 집중해 7시 뉴스의 자체 제작 편성권을 주겠다는 ‘큰 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콘텐츠를 소외시키지 않겠다고 하고, 지역 미디어 교육 활성화로 지역국을 방송문화, 미디어교육 허브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들에게 ‘지역’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뉴스’란 무엇이며 ‘혁신’이란 무엇일까? 방송 재허가를 받을 시에 공공성과 공영성을 강조하며 입버릇처럼 쓰는 문구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지역밀착’ 등 방송의 공공성을 갖추겠다는 말들은 그야말로 ‘립 서비스’인 셈이다. 그들에게 ‘지역밀착’은 광역 거점도시에 한정된다. 그들에게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는 분야별 공공성에만 기인한다. 거점도시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방송의 공공성이란 해당사항이 없다.

‘기본’에 충실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꺼풀 포장을 벗겨내면 돈도 안 되고 쪽수도 적어 표도 안 되는 지역은 떨궈내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공모가 이뤄지고 운동성이 사라진다. 서울의 운동장 안에서는 치고 박고 싸우는 시민사회, 진보정당도 지역으로 내려가면 그 길과 지향을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언론노조도 민언련도, 진보정당도 지역국 폐쇄와 광역방송국을 초광역화하는데 어떤 논평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관망하면서 침묵하고 동조하는 모양새다. 지역에서 더 멀어져 가면서 지역 콘텐츠를 강화한다는 모순적인 말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지금도 안 보는데 더 광역화해 지역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거짓말 같은 마법은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농촌 지역에 살아보면 이 같은 말들은 공치사이고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같은 발언들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서울에서 지역을 바라보고 탁상에서 계획을 짜기 때문이다. 새로운 ‘혁신’ 운운하지 말고, 제발 ‘기본’에만 충실해줬음 좋겠다. 지역국을 폐쇄하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 지역국을 더 촘촘하게 늘여 지역 밀착형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군 단위 지역주간신문에 일하면 밀착형 뉴스의 효능감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보도자료 쓸 공간 없이 제보가 밀려들고, 단독 특종 타이틀을 굳이 달지 않아도 다 단독이고 특종인 기사들이 눈에 주렁주렁 보인다. 왜 그들은 점점 더 지역과 멀어지려 하고 있는 걸까? 정치권에서도 ‘메가시티’란 단어가 줄기차게 회자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큰 이슈가 될 것 같으니 편승해 묻어가는 움직임은 영민하다. 또 세종 국회 이전도 가시화됐겠다 이 참에 헤드쿼터를 세종으로 옮기는 것도 마치 언론사도 분권에 동참하는 것마냥 긍정적인 이미지로 보일 수 있겠다.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메가시티’와 ‘지방방송국 초광역화’에 대해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지역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일극 중심의 나라에서 곳곳에 메가시티라는 유사서울이 생기면 일본의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지역소멸을 막는 중핵도시가 되지 않겠느냐는 납작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대한 유사서울이 곳곳에 생기면 빨대처럼 주변부의 자원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일 것이다. 더 코어가 강해진 자장으로 주변 지역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편승하는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획일화된 서울의 문화가 각 거점별로 규모화 된 방송거점에 둥지를 틀고, 획일화된 문화를 전파하는 산실이 될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은 소멸될 것이며 지역의 토속성은 사라질 것이다.

지역 농촌의 인구는 대부분 고령화인데도 불구하고 지역을 비지상파인 디지털로 커버하겠다는 이런 안일한 발상, 인터넷 접근도 어려운 계층이 지역에 수두룩한데 익숙한 레거시 미디어를 과감히 포기하고 뉴미디어로 지역을 커버하겠다는 이 발상들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 정말 궁금하다. 결국 그들은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다. 그들 안에 갇혔고 그 안에서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한다.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혁신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제안한다. 제발 메가시티에 대해 활발한 논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또한 지역성을 상실한 방송의 초광역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논의되면 좋겠다. 이미 7개 지역국 폐쇄 대상지역의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구성해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알아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을. 누가 보지도 않는 공영방송을 지키려 싸운단 말인가.

누군가 그랬다. ‘존재를 존중하지 않으면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다시 이를 바꿔 말하고 싶다. ‘공영방송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면 외면 받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질 것이다’라고. 서울방송에 들러리 서는 ‘지방방송’이 아니라 지역에 밀착한 ‘지역방송’을 보고 싶다. 서울 방송국과 프로그램의 질을 비교한다는 것은 투여되는 예산과 인력대비 과도한 기대일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지역 밀착’으로 승부를 보지 않으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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