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벌써 문재인 대통령 취임 4주년이라니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4주년 특별연설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질 예정이지만 큰 기대는 없다. 이제와서 대통령이 직접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남은 1년간 무엇을 할 것인지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계획을 잘 세우려면 지난 시간 동안 잘한 건 뭐고 잘못한 게 뭔지부터 잘 정리해야 한다.

다른 정권도 비슷했지만 문재인 정권도 취임 4주년이라는 이 시점에 꼽을 만한 성과가 사실상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 이 정권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매달렸던 과제는 ‘검찰개혁’이 유일하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조정은 여러모로 미흡한 부분이 많고 납득이 안 되는 점도 있으나 어찌됐건 ‘개혁’이란 주장의 연장선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성과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윤석열 내쫓기’와 정권에 불리한 수사 지연에 방점이 찍힌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두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한 개혁이 된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외의 영역에선 ‘개혁’의 성과 자체가 별로 없다.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은 2년도 안 돼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애초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주도성장’의 변형으로 도입되었다. 임금주도성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부 학자들이 주장한 것인데, 신자유주의라는 주류 경제학의 해법에도 왜 ‘낙수효과’는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이들 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경제 체제가 이윤주도적이라면 친자본적 분배를 통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주도적 체제라면 수출 등 외부요인과 금융에 기대는 불안정한 성장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경기 침체를 초래한다. 따라서 임금주도적 체제에서는 친노동적 분배를 결합해야 한다. 이들이 실증한 바, 대다수의 선진국가는 임금주도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의 친자본적 분배가 아닌 친노동적 분배를 우선시 해야 한다. 복지를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권력을 강화하며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임금주도성장론이다.

애초 ‘임금주도성장’이 한국에 와서 ‘소득주도성장’이 된 것은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이 자영업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통설이다. 한국의 경우 임금을 중심에 놓는 분배전략만으로는 임금주도성장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요진작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규정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노동자의 권리 일반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 생색내기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저소득 노동자가 충돌하는 상황이 초래되자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자영업자의 소득 보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러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혼란이 가중되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해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중립화 하고는 소득주도성장으로부터 철수해버렸다.

여기서 의문인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패러다임일 수 있냐는 것이다. 한국은 임금주도적 체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누군가 내린 것인가,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패러다임 자체를 폐기한 것인가? 새로운 이론체계를 도입한 것인가? 처음부터 ‘낙수효과’의 안티테제라는 정치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인가? 처음부터 설명도 없었고 해명도 없는 상태로 개혁은 실종되었다. 그렇기에 평가할 근거도 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최근 정부 여당을 정치적으로 가장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그렇다. 이 정권의 정책 실패는 임대사업자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게 대다수의 진단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왜 일어났는가? 정책담당자들이 다주택자라거나 하는 이유를 쉽게 거론하지만, 이것 역시 뭔가 ‘청사진’이 있었기에 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1년에 출간한 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책에서 관련 대목의 핵심 논지를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사회학자 존 케메니의 분류법을 빌려와 적용하면 한국의 주택시장은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시장이 분리된 이원구조이다. 따라서 공공임대주택만으로 저소득층 임대수요를 해결할 수 없다. 또, 민간주택시장을 ‘정글’의 상태로 놔둬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간주택시장을 공식화, 투명화하고 공적 개입루트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등록된 임대주택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면서 저소득층 세입자의 임대료 부담 일부는 국가가 지원하는 해결책 등도 모색할 수 있다. 민간주택시장의 공식화는 또 하나의 이점이 있는데 임대소득세를 걷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보유세, 거래세, 금융만으로는 다주택자 문제를 관리하고 해결하기 어렵다. 고소득층 다주택자와 개혁적 중산층의 이해관계가 겹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대소득세라는 또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아마도, 정권 초기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는 이런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으로 판단됐을 것이다. 사실 유사한 이유로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는 역대 정권도 해오던 정책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은 여러 인센티브에도 불구 이에 비협조적이었다. 임대사업자 등록보다는 보유세와 거래세 인하에 대한 정치적 요구의 관철을 기대하는 게 기대이익이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금 인하에 대한 명확한 반대와 보다 많은 인센티브의 제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은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 문제로 판단된다.

그러나 누구나 알듯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은 갭투기로 이어져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핵심 요인으로 귀결됐다. 정부는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는데, 이는 말하자면 무능의 영역이다. 하지만 놓친 부분을 보완해서 애초의 그림을 다시 추진해보자는 것과 아예 기존의 해법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정책의 실패보다 놀라운 것은 김수현식 모델이 순식간에 설 자리를 잃었고 공급만능론이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최근에는 결국 세금 인하와 ‘빚 내서 집 사라’라는 과거의 해법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정권의 누구도 성의 있는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애초 부동산 문제에 대한 개혁적 접근이란 게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개혁 과제라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법 개정은 어땠는가? 뭔가 하는 듯했지만 불리할 듯하니 위성정당 전술로 애초의 개혁 취지를 퇴색시켰다. 정권이 ‘피플파워’를 자처할 때만 해도 무수히 많은 ‘개혁’ 담론이 있었지만, 그 ‘개혁’들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개혁’이란 기성의 정치를 반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고 단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목에 있어서만 비타협적 태도를 보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제 임기가 1년 남은 상태에서 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무너진 민생을 돌보는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백신 허브국가’를 꿈꾸는 것에 앞서 탈진 상태에 이른 의료진에 대한 지원과 그중에서도 여러 차원의 곤란을 겪고 있는 간호사 등의 근무환경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 저소득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적기에 파악하고 보상할 수 있는 체계의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팬데믹을 핑계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갑질에 시달리며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해고되거나 심지어 산재를 당해 사망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의제들에 이 정권의 탄생을 만든 촛불이라도 옮겨 주면 고맙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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