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인숙 칼럼] 미국의 보수 우파 라디오방송 진행자이자 정치평론가로서 유명한 러시 림보(Rush Limbaugh)가 있다. 올 2월 사망한 그는 1988년부터 ABC라디오방송의 진행을 맡기 시작했는데 그가 진행하는 <러시 림보 쇼>는 무려 600개 라디오 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되었으며 주당 청취자 수가 평균 2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은 상당한 논란을 가져왔고, 심각한 극우주의자라는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청중들에 의해 그는 항상 정치적 우파 세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단순한 라디오 진행자가 아니었으며 극단적인 당파저널리즘의 개척자였다.

미국에서 이러한 극단적 당파저널리즘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1987년 형평성의 원칙(Fairness Doctring)을 폐기한 이후부터이다. 1949년 제정된 형평성의 원칙은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 방송사가 균형 있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도록 규정했지만, 보수 우파의 여론 확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당시의 레이건 정부와 FCC 위원장이던 마크 파울러의 주도하에 1987년 폐기되었다. 문제는 형평성의 원칙이 폐기되면서 특히 라디오방송국의 토크 프로그램에서 극단적인 편향성이 나타났다고 미국의 언론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 (형평성의 원칙 폐지라는) 정책결정이 어떻게 오늘날의 극단화된 미디어를 낳았는가(워싱턴포스트, 2019.1.18), 형평성의 원칙 폐지 이후 러시 림보의 등장이 어떻게 오늘날의 극단화된 정당 미디어를 가져왔는가(포인터, 2021.2.17)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서울시장 선거가 야권의 승리로 끝나자 최근 수년간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TBS의 대표 프로그램인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진행자가 퇴출 논란에 휩싸였다. <프로보커터>를 저술한 미디어문화연구자 김내운은 김어준을 진중권과 같은 부류의 프로보커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극단적 도발로 이익을 챙기는 ‘나쁜 관종’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어준은 언론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성공한 프로보커터로서 보수성향 진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한겨레, 2021.4.18)

김어준을 프로보커터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 적어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만을 놓고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형평성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극단적인 라디오 토크쇼인 것처럼 비친 측면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에서 지원하는 매체가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을 다룬다고 해서 시장 후보가 아예 출연조차 하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반론권을 행사하라고 방송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청취자들은 여당 후보자나 여당 측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형평성의 원칙이 사라진 미국의 시사토크 라디오처럼 메시지가 보다 편향적으로 전달되었을 개연성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국내의 경우 방송법에서 여러 조항에 걸쳐 형평성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방송법 제6조제4항에서 "방송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신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32조(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 심의)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공적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방송 또는 유통된 후 심의·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제33조(심의규정)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을 심의하기 위하여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제정, 공표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2항 제10호에는 ‘보도·논평의 공정성·공공성에 관한 사항’을 특별히 명시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을 마련하여 공정성(제5조), 형평성(제6조), 객관성(제8조), 균등한 기회부여(제14조)를 담보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26조(반론권)에서는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이 명백한 인신공격 또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방송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방송사는 이를 검토하여 합당한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제10조(시사정보프로그램)에서는 선거법에 의한 선거방송을 제외한 선거 관련 대담·토론, 인터뷰, 다큐멘터리 등 시사정보 프로그램은 선거 쟁점에 관한 논의가 균형을 이루도록 출연자의 선정, 발언 횟수, 발언시간 등에서 형평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방송법에서 이처럼 체계적이고 강력하게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고, 방송사가 그 의무를 다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의 출연 거부로 인해 형평성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면 방송사에게만 그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듣기에 불편하다고 해서 엄연히 청취율 1위인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폐지나 진행자 퇴출을 언급할 일은 더더욱 아닌 듯싶다. 차제에 형평성의 원칙 운영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14조(균등한 기회 부여) ① 방송은 후보자를 초청하는 대담·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여 후보자들이 균등한 참여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에 단서조항이라도 달아야 하지 않을까. “단, 어느 한쪽의 후보자가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02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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