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의당 박창진 부대표가 4·7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2030세대 남성 표심을 '안티페미니즘'으로 진단, 문재인 정부의 여성정책이 남성을 배제했기 때문에 이 세대가 국민의힘에 몰표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은 문재인 정부 기간 여당에 대한 20대 지지율 추이에 비춰봤을 때 맞지 않을 뿐더러, 청년세대가 느끼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여성과 소수자 혐오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부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회의에서 이번 보궐선거의 가장 큰 화제는 2030 남성들의 국민의힘 '몰표' 현상이라며 "정부가 여성들을 배려하며 내놓은 각종 정책과 발언들은 보편적 의제로 다가가지 못하고 청년 남성들을 수혜자처럼 취급하고 배제했다. 그들의 합리적 비판을 정의당을 포함하여 진보개혁 진영이 ‘한 줌의 혐오’로 취급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사진=연합뉴스)

박 부대표는 한 30대 남성 라이더 노동자를 언급하며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가부장적 인식이 약하고, 성평등이란 성별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조치를 성평등한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부대표는 "진보정당 정의당의 제대로 된 시대적 통찰이 필요하다"며 "성대결을 조장한 책임이 정치에 있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의 발언과 정책 하나하나가 청년 세대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지 점검하자"고 했다.

박 부대표의 주장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1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들의 선거리뷰 모임에서는 "우리가 20대 남성의 지지를 잃은 건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한 남성 의원의 단정적 발언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이 의원 한 명의 특이한 견해도 아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선거 패배는 페미니즘이 넘친 탓'이라는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민주당 김남국, 전용기 의원 등은 '남성 경찰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겠다', '공기업 승진에 군 경력을 반영하고 군가산점 재도입을 추진하겠다'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내려진 지 20년도 넘게 지난 군가산점제의 부활까지 거론하며 20대 남성 끌어안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적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왜 어제부터 계속 얘기해줘도 다들 그거 빼놓고 다른 이야기 찾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성평등이라고 이름 붙인 왜곡된 남녀갈라치기 중단하지 않으면 민주당에 20대 남성표가 갈 일은 없다"고 썼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안티페미니즘 선동으로 얻을 표 따위로 이길 리도 없겠지만,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그 세상은 아주 볼 만할 것"이라며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20대 남성들이 우 편향, 보수화됐다거나 야당지지 성향이 커졌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분석했다"며 "20대 남성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기보다는 민주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전용기 의원.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주요 정치권의 보궐선거 직후 '안티페미니즘' 서사는 실체가 없는 주장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페미니즘이 넘치게' 여성정책을 추진한 적 없고, 지지율 추이 분석에서도 이런 진단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실천하거나 정책화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에 선거 참패 책임을 돌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보궐선거 기간 내내 성평등 의제에 소극적이었고,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 발언을 쏟아냈으며, 선거 전에는 '슈퍼여당'임에도 불구하고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회피하는 등 '페미니즘 정당'이었던 적 없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체크 프로젝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지난해 5월 3주년 평가에서 성평등 공약 부문 공약 '완료' 비율은 5.71%(2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체공약' 비율은 45.7%(16개), '진행 중'은 42.86%(15개), '공약 변경'은 5.71%(2개)였다.

한겨레21은 16일 기사 <바보야, 문제는 '이남자'가 아니야>를 통해 지난 4년 간 20대 남녀 지지율 추이를 살피고, 선거 패배의 요인을 페미니즘에서 찾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20대 남성은 정책평가 전반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오히려 민주당에서 돌아선 '집토끼'는 20대 여성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21은 "젠더 이슈가 문재인 정부에서 공론장을 활발히 달군 화두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국정 지지율이 꺾인 ‘변곡점’에 젠더 이슈만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20대 남성 지지율이 하락한 변곡점들을 살펴보면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2018년 1월·68%),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2018년 2월·61%), 불법촬영 규탄 시위(2018년 7월·64%), 서울 이수역 폭행사건(2018년 11월·49%),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휴가 특혜 논란(2020년 9월·27%) 등으로 나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은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2020년 7월·51%)을 기점으로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

한겨레21은 20대 남성 지지율이 문재인정부 출범 1년도 되지않아 하락하기 시작, 2018년 11월 50%대 밑으로 추락한 뒤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 처음 사과한 지난 1월 1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20대 여성 지지율은 20대 남성과 비교해 평균 20%p가량 높은 국정 지지율을 보여왔고, 지난해 10월에 들어 처음으로 50%를 밑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20대 남성 지지율이 이미 선거 이전에 빠져 있었다면, 20대 여성 지지율 이탈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해 선거초기 여야 지지율 균형상태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 총선 20대 남녀 지지율을 살펴보더라도 '안티페미니즘' 서사는 실체가 없다. 지상파 출구조사 기준, 지난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20대 남성 47%, 20대 여성 64%가 민주당에 표를 행사했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는 20대 남성 지지율이 22%, 20대 여성 지지율이 44%로 나타났다. 두 선거 사이 페미니즘 이슈에서 가장 파급이 컸던 정치권 사건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으로, 정부여당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여성주의적 사건 해결에 나서지 못한 채 오히려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대표단 회의에서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보궐선거 결과와 페미니즘을 연결짓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향해 "청년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여성과 소수자 탓으로 돌리며 주목받으려는 저급한 정치 행보"라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북한과 빨갱이로 연명해온 과거 보수만큼이나, 여성과 소수자 혐오 선동으로 살아남으려는 소위 '새로운 보수' 역시 촌스럽고 낡았기는 매한가지"라며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를 없애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청년들의 분노가 진짜 기득권을 향할까 두려워 여성과 소수자를 타겟으로 돌리려는 국민의힘의 행보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고 질타했다.

16일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여성정책에만 그리고 페미니즘에만 올인했다? 그래서 졌다? 이토록 게으르고 손쉬운 분석이 어디있는가"라며 "혐오 정서에 대한 동조와 성별 갈라치기에 힘을 싣는 방식으로 정치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전 최고위원은 ▲여성들마저 등을 돌리게 했던 지자체장 성비위 사건에 대한 미흡한 당의 대처 ▲여성안전과 관련된 법안 통과 과정 속 지지부진했던 일련의 과정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통해 드러났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 등이 '민주당이 페미니즘에 올인해 졌다'는 전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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