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미FTA정국의 끝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본회의에서 직권상정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한미FTA는 참여정부가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국정의 키를 쥐고 있었던 사람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는 민주당은 오늘날 한미FTA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민주당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와 참여정부의 한미FTA는 다르다." 라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한국과 미국간의 이익균형이 붕괴되었고 독소조항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정부 측 입장은 자동차 산업에서 일부 협상 내용이 조정된 것 빼고는 큰 틀에서 변화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민주당에서 문제삼고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소송제의 경우 이미 참여정부 시절 체결했던 한미FTA에도 포함되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사실 한미FTA 체결 추진의 본질적 목표는 국가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거시적 로드맵에 있다. 참여정부 시기 제출됐던 국가발전전략인 '동북아균형자론'이나 '금융허브론' 등을 보면 이 점이 매우 명확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낀 상태에서 제조업 중심의 현재 산업구조로는 국가경제 발전이 정체되는 상황이므로 미국과 일단 FTA를 체결하여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FTA를 가장 먼저 체결한 국가가 된 후 중국, 일본과도 FTA를 체결, 동북아시아 무역의 중심지가 된 후 서비스산업과 금융산업을 육성하여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 요지다.

만일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가 참여정부의 것에 비교하여 근본적인 변동이 있는 것이라고 하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서 이러한 큰 그림이 달라졌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논리적으로 깔끔한 반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의 한미FTA 강행처리 방침을 비판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연 이러한 '큰 그림'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는가? 참여정부 시절의 이 그림은 대외무역을 강화하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역시 구체적인 처방에 있어서는 다른 방법을 썼지만 대외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전체 틀은 전혀 바꾸지 않았다. 거센 비난에 직면했던 '고환율 정책' 등이 이러한 측면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산업에 있어서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도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등을 통해 서비스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육성, 이를 위한 제도정비 등을 시도했다. 한동안 문제가 된 교육, 의료 등에 대한 시장화 방안들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금융산업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중 가장 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 '메가뱅크론'이다. 메가뱅크론의 핵심은 대형투자은행을 육성하여 한국의 월스트리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한 투자은행 육성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이명박 정부의 큰 그림 역시 참여정부가 그렸던 국가발전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때문에 참여정부의 큰 그림에 대한 입장을 변경한 사람이 아니라면 참여정부 시절의 한미FTA에 대해서는 찬성했으면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에 대한 반대를 표명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정치인들 중에 이 큰 그림에 대한 입장 변화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정동영 의원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한미FTA 정국에서 반대 입장에 서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미FTA야말로 진보정당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하는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보정당들과의 연대가 깨지면 2012년의 집권 가능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호주도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거부했다는 ISD라는 독소조항을 이유로 하여 참여정부의 큰 그림에 반대하지 않는 민주당 내 일부 인사들까지 포괄하는 한미FTA 반대전선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 정국은 더욱 꼬여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벌써 김진표, 김동철, 강봉균 의원을 중심으로 하여 ISD에 대한 최소한의 '레토릭'을 표시해주기만 하면 한미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절충안'의 가능성이 보도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시도에 찬성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관료출신이거나 관련한 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참여정부 로드맵에 대한 '확신범'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들의 시도가 관철되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것이고 국민참여당과의 소통합을 추진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며 이후 선거연대와 후보단일화 등에 대한 협상은 더욱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진보정당들이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내게 되는 상황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냥 진보정당을 버리고도 정권을 잡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구상도 산 넘어 산이라는 장애물을 피해갈 수 없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 역시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당의 차기 당권 주자 중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지원 의원과 손학규 대표의 불화설이 보도되는 이유이다. 실제 통합신당을 창당하는 국면으로 넘어가게 되면 이들과의 갈등이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

게다가, 손학규, 정동영 의원은 차기 대권주자로서 혁신과 통합을 대표하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과도 주도권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이렇든 저렇든 최대한 아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여러 장 확보해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단언하기에 시기상조일 모든 정치적 시나리오들이 한미FTA 정국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은 보다 신중한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지금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