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심영섭 칼럼] 미디어 시장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하여 웨이브,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차고 넘친다. 누구나 케이블방송이나 IPTV에 가입하면 24시간 드라마와 예능, 스포츠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KBS를 시청하지 않는데 왜 꼬박꼬박 수신료를 내야 하는가? 차분히 설명해야만 이해시킬 수 있는 어려운 질문이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혐오와 증오로 조작된 허위정보가 미디어 플랫폼 곳곳에서 길목을 가로막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코로나19가 가져온 ‘비대면 환경’에서 미디어는 학교 교육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상업적 목적에서 예능화된 콘텐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미디어 환경이 규제 밖 영역(OTT)에 있는 플랫폼 중심으로 탈바꿈하든,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6자유도(6DOF)를 통해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든 여전히 적정수준의 공익적 콘텐츠는 필요하다. 공영방송은 지상파뿐만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과 서비스에서 담당할 공적책무를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초재원은 수신료이다.

그러나 수신료의 가치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가족에게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게 현실이다. 수신료 문제는 학계에서도 꺼리는 토론주제다. 정확한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수신료가 군사독재 시절부터 오랜 기간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면서 그 자체로 혐오대상이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수신료 지난 40년간 동결

우리나라에서 수신료는 1961년 12월 31일 개국한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TV)의 재원 마련을 위해 1963년 1월 1일 제정된 ‘국영TV방송사업운영에 관한 임시조치법 시행령’을 근거로 도입됐다. 당시 금액은 월 100원이었다. 이후 ‘시청료’는 1973년 월 500원, 1979년 월 600원, 1980년 월 800원으로 책정됐다. 이러한 인상은 물가상승률과 인건비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정부가 1980년 12월 1일 컬러TV시험방송을 실시하고 1981년 4월 1일부터 컬러TV방송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수신료는 컬러 2500원, 흑백 800원(후에 폐지)으로 책정됐다. 또 공영방송 재원으로 광고와 기타 수입을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새로운 방송기술도입과 시청 가구확충에는 많은 투자를 했지만, 보도와 제작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제정책을 폈다. 그 결과 공영방송의 불공정보도와 정권찬양방송에 반발하는 시청료거부운동이 발생했다. 수신료는 이때부터 공영방송에 대한 미움만큼이나 혐오대상이 되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KBS는 정권교체 때마다 인사파동과 불공정보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내부구성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와 국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비난은 고스란히 KBS의 몫이었다.

최근 KBS가 지난 40년간 동결되었던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수신료 인상추진은 2007년 이후 4번째 시도이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치권은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를 자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상태로는 공영방송이 공적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여 임계점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현행 방송법 제56조와 제64조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재원은 텔레비전방송수신료로 충당하되, 목적 업무의 적정한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방송 광고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방송법 제74조는 협찬고지를 통한 스폰서링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실시간 방송에 집행되는 광고비 총액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업활동에 제약이 적은 민영방송은 실시간과 비실시간 콘텐츠 제작을 연동하여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손쉽게 갈아타고 있다. 제작 스튜디오의 분사와 방송심의에서 자유로운 OTT 동영상을 구분하여 제작한다. 이제는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방송에 공적책무 수행을 강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다르다. 실질적으로 상업방송과는 차별적인 공적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해외 공영방송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수신료는 터무니없이 적다고 얘기한다. 경제력과 소득수준을 비교했을 때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영방송이 먼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불신의 골은 메워지지 않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답은 쉽지 않다.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도 답이다. 수신료는 왜 필요할까?

최소공급이 아닌 적정공급을 위한 수단

우리보다 수신료와 관련해 깊은 고민을 했던 독일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가 두 차례에 걸쳐 <수신료 판결>로 불리는 결정문을 내놨다. 이 판결에서는 수신료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적정선을 찾을지, 그리고 어떻게 수요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해 해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수신료 판결은 1994년 2월 22일에 내려졌다. 서독 11개 주는 1980년대 초반 케이블방송을 도입을 위한 기술설비증설 목적으로 수신료를 월 20그로쉔(0.2마르크)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바이에른주 수신료 납부자들은 수신료 인상 목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방송법령이 정한 공영방송 공적책무에 기술설비증설은 해당하지 않는다며 위헌소송을 냈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영방송의 소요 재원 심사과정은 공영방송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법에 따라 정한 수탁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규모의 재원을 적절하고 경제적이며 절약성의 기본원칙에 맞게 도출되었는지 살피는 과정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수신료 인상이 공영방송에 주어진 공적책무 수행에 필요하다면, 절차적 오류가 없는 한 정당하다는 판결이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미 1991년 서부독일공영방송판결을 통해서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적정수준의 프로그램은 여론형성을 위해 독일 국민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하고, 이때 기본공급은 최소공급이 아닌 적정공급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물론 단서도 달았다. 수신료 산정은 별도의 ‘단계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을 도입해야 하며, 방송재원수요산정위원회(KEF)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절차적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수신료 판결은 2007년 9월 11일에 내려졌다. 이 판결은 KEF가 산정한 수신료 인상안을 주지사 회의에서 28센트 낮게 책정하자, 공영방송사들이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하면서 진행됐다. 주지사 회의는 방송 디지털화로 추가 재정수요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독일경제의 침체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방송수신료를 월 17.31유로가 아닌 17.03유로로 책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서 연방헌법재판소는 수신료 산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행정부와 입법부는 미디어 정책을 추진할 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독립성을 보장받는 전문가위원회의 수신료 인상안을 수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만일 전문가위원회의 인상안을 수정한다면, “수신료 인상으로 수신료 납부자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신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나 높은 수신료로 인해서 수신료 납부자들이 TV시청을 포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게 될 경우”로 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주정부가 입증해야 한다고 보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방송은 다른 미디어와 달리 파급력, 시의성, 소급력이 강하기 때문에 하며 보도의 다양성이 제공돼야 하고, 방송기술혁신으로 인해서 다채널과 다매체 환경으로 방송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늘었고, 차별성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상업방송이 경제적 경쟁을 통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이러한 다수성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여론 다양성을 당연히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또 상업방송은 광고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과 표준화된 포맷에만 더 투자할 뿐 다양한 여론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영방송에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공적 임무를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양한 사업자가 경쟁하는 다수성만으로 내용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새롭게 등장하는 방송기술을 도입하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적정공급 의무라는 판단이다.

한국의 방송법 제44조는 한국방송공사의 역할을 방송의 공정하고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할 의무가 있고, 국민에게 지역과 주변 여건과 관계없이 양질의 방송서비스 제공하며 시청자의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송프로그램·방송서비스 및 방송기술을 연구하고 개발, 국내외에서 민족문화 창달과 민족의 동질성 확보를 위한 방송프로그램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 물론 공익적 서비스 제공의무는 민영방송에도 있다. 민영방송에 주어진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 준수는 내용의 다양성 보장을 위한 권고사항에 가깝지만, 공영방송에는 의무사항에 해당한다. 특히 방송기술과 서비스의 유형이 다양화되는 환경일수록 사회적 소외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서비스와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신료 인상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그때마다 공영방송이 불공정하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상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주로 야당이 주장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옛 여당도 같은 논리를 편다. 수신료가 공영방송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이다. 결국, 정치가 공영방송의 기능을 보장할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재원과 관련해 이미 제기된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신료 징수와 산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공영방송에 내는 수신료를 KBS가 아닌 EBS에 지불하고 싶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시청자가 납부하는 수신료 2500원 가운데 EBS가 배당받는 수신료는 2.8%에 해당하는 70원이다.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가 현행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될 때 EBS에 배당되는 수신료는 3.1%에 해당하는 120원으로 산정되어 있다. KBS와 EBS가 수행하는 공적 업무와 프로그램 유형, 제작 규모, 공사 인력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배분 비율인지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용성이 있다. 그러나 시청자가 수신료를 임의로 특정 방송사에 납부할 수는 없다. 공영방송 운영을 위해 조성되는 공적 재원으로서 수신료는 수요에 맞게 책정되고, 집행되는 게 설치목적에 맞다. 만일 그때그때 정세와 국민감정에 따라서 수신료가 책정되고 배분된다면, 독립적이고 공공적인 공영방송 운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수신료 산정에 대한 객관성 확보를 위해 수신료산정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독일의 방송재원수요산정위원회(KEF)를 모형으로 하는 주장이다. 검토할 만한 사안이기는 하다. 수신료산정위원회가 설치된다면, 공영방송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원인 수신료를 물가상승률과 방송제작비 인상요인, 인건비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3~5년 주기로 수신료 액수를 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영방송의 재정운영에 대한 억측이나 불필요한 논쟁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신료산정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독일의 KEF처럼 주정부로부터 추천받은 전문가가 10년 이상 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의회와 행정기관, 공영방송의 이익에 맞서 독립적인 의견을 제출했을 때, 이를 공영방송과 의회가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수신료산정위원회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의견을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정세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처럼 수신료산정위원회가 제시한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나 행정부에서 부결시킬 경우에 수신료산정위원회가 제안한 인상안에 기초가 되는 공영방송재원산정에 대한 보고서를 상쇄할만한 전문가 보고서를 제시할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오히려 수신료산정위원회 운영에 대한 법률이나 시행령을 개정해서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현행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요식행위만 늘어날 것이다.

한국전력에서 대행하는 수신료 징수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전력은 방송법 시행령 제48조에 따라서 수신료 징수수수료로 6.15%를 받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에는 수수료를 징수액의 15%를 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적절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1994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전력이 받아간 수수료는 총 8,565억 원으로 수신료 징수액이 늘어나면서 2020년 수수료가 414억 원에 달한다. 수신료 징수를 별도의 징수회사를 설립하여 위탁하는 독일에서도 징수수수료는 2% 내외다. 한국전력은 독일공영수신료징수센터와 달리 수신료 징수를 위해 독립법인을 운영하지 않고 전기료 고지서에 수신료를 합산하여 징수하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48조를 개정하여 징수수수료를 최대 3%로 낮출 필요가 있다. 한국전력 수수료의 적정성을 제외한다면, 현행 수신료 징수대행방식은 별도 법인을 통해 수신료를 징수하는 다른 국가보다 더 효율적이고 절약적일 수 있다.

회계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 필요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국회에서 종종 공적재원과 상업재원에 대한 회계분리요구가 나온다. 그러나 공적재원을 지출하여 조성된 인프라와 교육된 전문인력, 행정지원을 상업재원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과 완벽하게 분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계분리를 하려면, 상업재원을 진행하는 초기과정에서부터 분식회계와 이중장부기재를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요구할 내용은 회계분리가 아닌 회계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일 것이다. 회계집행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필요한 수요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논의의 출발이 정쟁을 위한 수단으로 수신료를 이용하는 관행의 답습이라면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정치에 포획된 수신료를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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