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재보선 패배에 대한 쇄신안을 제출했지만, 최고위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지금 쇄신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당 내의 모든 계파가 쇄신을 부르짖고 있다. 지난 6일 홍준표 대표의 '쇄신안'구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이러한 논쟁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쇄신안 구상을 살펴보자. 공식 단위에서 결정하거나, 홍준표 대표 본인이 구상을 밝혔거나, 언론에 모든 내용이 공개되거나 한 것이 아닌, 몇몇 아이디어에 불과한 내용들이 보도된 것이긴 하지만 잘 살펴보면 어떤 것을 겨냥하고 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유승민, 원희룡 의원 등의 비판에 따르면 홍준표 대표의 쇄신안 구상은 아마도 이런 것이다. 첫째, 중앙당사를 없앤다. 둘째, 비례대표 50%를 국민참여경선 및 공개오디션을 통한 정치신인 영입, 셋째, 정책협의에 외부인 참여 방식 마련 등이다. 이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이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쇄신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당사를 왜 없애는가? 이런 아이디어는 박근혜 전 대표 시절의 천막당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천막당사는 '차떼기'라는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에 패배하고 낡은 정치세력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문제인데 중앙당사를 없앤다고 하면 누구라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다른 쇄신 아이디어들도 마찬가지의 수준이다. 한나라당에 무엇 때문에 위기가 왔고 무엇을 해서 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논리적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아이디어들은 '쇄신'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당내 문제'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준표 대표의 인생사를 잠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거의 평생을 비주류로 살았다. 검사 시절에도 그랬고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많은 역할을 했지만 그만큼 당내 지분을 챙기지도 못했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누구라도 맨 처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바로 '어떻게 하면 내 주변을 만들 것인가'이다. 기회를 잡았을 때 빨리 다음 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홍준표 대표에게 그런 기반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따르는 다수의 정치인들이다. 당 대표를 한 번 더 하든, 차차기 대권을 노리든 자기 세력이 있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당 대표로서 이 세력을 구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천을 매개로 의원들을 자기 밑으로 줄 세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대표의 공천 개입이 쉬운 방식으로 공천 원칙을 세우고 공천에 영향을 끼치는 요직에 자신의 사람을 앉혀 놓아야 한다.

홍준표 대표의 쇄신안은 혹시 이런 부분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원희룡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쇄신안은 자기변화 프로그램부터 제시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천, 정책, 당 운영 등 모든 것에서 당 대표부터 모든 기득권과 부당한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 없이는 또다시 되풀이되는 한나라당표 도돌이표 쇄신 아이디어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원희룡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언급한 맥락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다. 아마 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의원 ⓒ연합뉴스

그러면 당내 다른 계파들의 쇄신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쇄신을 이야기해서 화제가 된 또 한 사람의 정치인은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7일 한 보수단체가 연 강연회에서 '서울 강남, 영남 지역에서의 50% 공천 물갈이와 외부인사 50% 참여하는 비상국민회의를 새로운 지도부로 꾸릴 것'을 한나라당에 주문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수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수는 쇄신을 이야기 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작동된다. 김문수 지사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박근혜 전 대표를 대체할 수 있는 여권 잠룡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내상을 입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김문수 지사도 움직여야 확실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수는 공천 물갈이론이다. 서울 강남과 영남이라는 지역을 특정해서 말했다는 것은 대단히 미묘한 지점이다. '강남'이라는 말에는 한강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서울시의 특정한 자치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김문수 지사가 '한나라당의 안전지대'라는 수식을 붙였기 때문에 이는 후자의 의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높다. 그러나 서울시 강남구에 도대체 의석이 몇 개나 있는가? 강남 갑·을 두 개다. 때문에 김문수 지사가 가리키는 실질적인 포인트는 역시 '영남 물갈이에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영남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적 기반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공천 물갈이를 하자는 것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역 기반이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박근혜의 깃발을 들고 대권주자로 나설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친박계 이종구 의원의 언급을 보자.

"하여튼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천을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지역마다 아마 국민이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마 친박계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이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고 국민이 선호하는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일 것이다. 친박계는 쇄신론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친박계의 가려운 곳을 소장파가 긁어주고 있는 모양새가 보이기도 한다. 소장파 의원들이 연서명을 받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요구하며 쇄신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상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한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할 일이야 많겠지만 타이밍과 메시지라는 측면에 있어서 지금 무슨 사과를 하라는 것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단계를 추측해보아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다음 요구는 무엇인가? 소장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말하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이러한 수준의 정치적 압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탈당'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직접 언급하기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수 있다. 따라서 소장파는 사실상 대통령이 '알아서' 탈당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탈당해야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덜 부담스럽고,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수도권 소장파들의 공천 취득과 당선이 수월해진다. 이렇게 넘겨짚는 것은 언제나 시기상조이지만, 하여튼 이런 모양이라면 최근 한나라당의 쇄신파동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 이 모든 소동은 공천과 대권을 둘러싼 계파 간의 힘겨루기에 불과 할 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