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21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유인촌 장관이 일부 기관장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퇴 압박을 가한 것은 법이 정한 공공기관장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라는 것이 민노당의 주장이다.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색깔론'을 들먹이며 협박을 서슴지 않는 것은 부당한 행동을 넘어 명백히 법률을 위반한 범죄 행위"라는 것이다.

▲ 경향신문 3월 20일자
민노당은 또한, "근래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아 죄송하다"는 유 장관의 '사과' 발언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 코드 인사의 첨병으로 나섰다는 비난 여론을 피해보자는 속셈"이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라"고 꼬집기도 했다.

유 장관은 그동안 참여정부 시기에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발언을 일삼아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실제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유 장관의 퇴진 압박이 연일 계속되자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신현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스스로 사표를 던지는 등 사회적 논란과 파문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여권이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일부 기관장들이 압력에 굴복해 물러나면서 "공공기관의 업무가 정치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지난 17일 성명에서 "유인촌 장관은 오랜 세월 현장에서 헌신해온 예술계 원로들을 자리에 연연하는 치졸한 인사들로 모독하지 말고 문화행정 수장으로서 본분에 충실하라"고 촉구했다.

언론연대도 같은날 성명을 통해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새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스스로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이 비난해온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며 "공공기관이 정치 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이 땅의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명 배우이자 공연 제작자의 길을 걸어온 '문화예술인' 유 장관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물불 안가리며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더니 급기야 검찰 고발까지 당하는 사태에 처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 장관은 잘 알려졌다시피 이명박 대통령과 오랜 지인으로 통한다. 각종 선거 때마다 이 대통령을 돕기 위해 발벗고 뛰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문화부 장관은 유인촌씨 몫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대로 실현됐다. 따라서 '좌파인사 척결'에 앞장선 그의 행보는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충성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의 측근은 달라도 이렇게 다른 모양이다.

▲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신적 멘토, 전천후 요격기를 자임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를 우리 사회와 미디어 진영이 곱게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방송통신 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막강한 통합 기구의 수장을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게 되면 필요에 따라 정권의 입맛대로 언론이 좌지우지 될 것이라는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신문법 폐지와 그에 따른 신문방송 겸영 허용, 공영방송 민영화 등 '규제 완화'와 '시장 중심' 위주로 방송통신 정책이 재편될 경우 우리사회의 공공성과 여론다양성 침해는 불보듯 뻔하다.

실제로 유인촌 장관은 지난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문방송 겸영 허용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신문법은 대체입법을 준비 중이고, 신문방송 겸영 문제는 일부 허용하는 쪽으로 청문회 때 찬성 의견을 밝힌 바 있다"며 "독과점적 폐해를 지적하는 쪽이 있기 때문에 보완하는 선에서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밝혔던 언론 정책 방향과 동일한 내용이다.

최시중 방통위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극적으로 '대통령의 의지'를 실현할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방통융합 정책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1월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 정책에 비판적인 단체와 인사들을 배제해 '밀실공청회'라는 비난을 받았던 영어교육 공청회 사건만 떠올려도 "시청자를 고려해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최 후보자의 답변에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시중씨 임명을 반대하는 여론에는 귀를 닫고 있다. 언론현업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연일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묵묵부답이다. 지난 9일 MBC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가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다음주 최씨의 임명 강행은 정해진 수순으로 점쳐지고 있다.

말로만 국민과 시청자를 위한다며 들먹이는 것이 '섬기는' 것인가. 민주적인 원칙과 시스템은 흔들리고 당리당략에 따라 춤추는 미디어 인사와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방통 융합 시대를 맞아 굵직한 미디어 정책 수립을 앞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공언을 하고는 있지만 우려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들이 법에 따라 소신껏 독립적으로 업무를 해내고, 정치적 독립성·전문성·대표성·도덕성이 요구되는 방송통신위원들은 그 자격과 자질에 합당한 인물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 민주적으로 선임돼야 한다.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들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과 제도를 한순간에 무위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측근 관계'로 똘똘 뭉친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후보자, 그리고 유인촌 장관의 '개인' 의지를 믿고 맡기기에는 국민의 눈과 귀인 '언론'의 미래가 너무나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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