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0일 정오 광화문 피스몹 "총대신 꽃을" ⓒ서정은
3월 20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5주년이 되는 날이다. 5년전 그날 텔레비전에 나오던 이라크 공격 개시 순간은 마치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기억이 있다.

전세계 수많은 엄마 아빠들과 누이와 오라버니, 딸과 아들들의 피눈물을 쏟게 했던 이라크 침공. 서남아시아 땅에서 일어난 침략전쟁은 딴나라 얘기로 그치지 않았다. 한반도에 사는 형제들의 목숨도 앗아가면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많은 상처와 슬픔을 남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라크 파병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까 매년 이 날에 반전평화 시위를 계속할 수 밖에.

사진은 20일 점심시간 광화문 4거리 한복판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아래 평화활동가들이 모여서 1시간 동안 '피스몹- 총대신 꽃을'을 진행했다.

잠시 인터넷 검색 찬스를 써보니, '피스몹(Peace Mob)은 플레시몹(Flash Mob)의 형태를 차용해서 평화를 위한 메세지를 담은 행동을 지칭하는 말인데, 익명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한가지 정해진 행동을 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플래쉬 몹과 반전를 상징하는 평화(Peace)가 합쳐진 신조어라고 한다.

이날의 행동은 이라크 여성과 아이들 얼굴의 가면을 쓰고, 머플러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사거리 횡단보도 곳곳을 파란불에 맞추어 건너는 것.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 반,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 반. 그 와중에 예고없는 경찰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무사히 끝난 피스몹. 한 활동가의 생생한 증언에 따르면 본인이 쓴 가면의 눈 부분이 너무 작아서 발 딛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경험했다고. 또 다른 사람 말로는 자꾸 경찰이 '당신들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서 이걸 하는 거냐, 아니면 평화롭게 살자는 뜻에서 하는 것이냐'고 캐물어서 골치아팠단다. 무시무시한 집시법 탓이구만.

그건 그렇고 사진을 자세히 살펴 보면 함께 행진하는 행렬 중 본지의 모 기자도 있다. 모 기자는 미디어스 애독자 팬도 빵빵한 분이니 애독자 분들은 눈크게 뜨고 잘 찾아보시라.

출근해 모닝사과를 먹으면서 오늘(21일) 신문을 펴보니, 역시나 미국 전역의 다양한 반전평화 시위 사진과 기사가 실려있다.

▲ 세계일보 3월 21일자 '죄수복 입은 3인방'

어제 미국은 워싱턴·뉴욕·마이애미·시카고·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등 방방 곡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딕 체니 부통령 인형을 뒤집어 쓴 사람들도 보이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는, 이라크 주둔 미국의 철수를 촉구하라는 외침들.

신문을 찬찬히 읽다 보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거센 비난 여론에는 전혀 아랑곳없으신 모양이다. 20일 이라크전 5주년 기념 연설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대테러전쟁에 주요한 전략적 승리의 문을 열었다"면서 "미국과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더 안전해졌다"고 자평했다니 원!

한겨레는 21일자 <부시 "이라크 전쟁은 대태러전쟁 승리의 문"> 기사에서 "유에스에이투데이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지난달 21~24일 미국 성인 남녀 2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조사에선, 응답자의 60%가 철군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국제사회는 물론 국민 다수와 동떨어진 평가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3월 21일자 1면 '백악관 앞 반전시위'
임기말의 부시 대통령이야 머 워낙에 그렇다고 제끼고 대선 후보들은 어떨까?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역시 전쟁의 정당성과 성과를 강조했다고 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이라크전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이라고 맹비난했단다.

그나저나 20일 광화문 피스몹에 다녀온 소감은 좀더 다채롭고 함께 즐거운 시위가 필요하겠다는 것. 당일 가면의 고무줄이 너무 쫄려 괴로웠다는 본지 모 기자의 증언을 참고해 볼 때, 이왕이면 얼굴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으로 궁리해보면 좋겠다.

검색해보니 쿠키뉴스는 20일 '할머니 평화단'소속 할머니 30여명이 타임스스퀘어 모병사무소 앞에서 '뜨개질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들은 작은 의자에 모여 앉아 부상병들의 절단된 팔다리를 감싸줄 양말과 이라크에 보낼 담요와 아이 옷 등을 떴다는 것이다. 오호라. 이거 참 신선하고 마음 속 깊이 뜨끈해지는 아이템 아닌가.

▲ 2004년 출판된 김혜자씨 저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아무튼 요즘 한창 뿔나고 계신 김혜자 여사님은 '존귀한 사람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책을 내면서 강조하기까지 했더랬다.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과 빈곤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절히 적은 책이다.

폭력의 시대에서 살고 계신 여러분들께 한 말씀 드리자면, 모쪼록 아이들에게 총기류 장난감은 쥐어주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저격수 훈련용도로 헛갈리는 각종 컴퓨터 게임CD들도 해당된다. 일상적인 폭력, 그게 더 무섭고 징한 법이다.

톡톡 튀는 반전평화 시위 아이디어를 풀어놓고 싶은 분들은 이번 주말 오후 인사동으로 챙겨 나오시면 되겠다. 오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음악과 꽃이 함께 하는 <평화 행진 '총대신 꽃을'>이 열린다고 한다. (문의: 참여연대 02-723-4250, 011-9395-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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