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은 진보진영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다. 그간 진보진영의 화두는 '진보대통합'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였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이 이 문제를 두고 길게 대립하다 진보신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던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이 탈당하고 무당적으로 있는 상황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 이후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으로 인해 열린 정치적 공간에서 진보정당 세력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물론 안철수 원장이다. 안철수 원장은 본인의 의사가 어쨌든 민주당부터 진보신당까지 전체 야권이 기성정당의 당적을 갖지 않고 있는 후보를 지지하며 하나의 선거대응에 나서는 그림을 만들었다.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공동대응했던 사람들에게 이 그림이 실제로 유용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박원순 후보의 선거캠프를 방문, 박 후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 인해 발언력이 강해진 세력은 민주당 밖에서 야권통합을 모색하고 있던 문성근, 이해찬, 문재인 등이 참여하고 있는 '혁신과 통합'이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야권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면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주장은 기성 정치권의 야권 전체를 통합하여 한나라당과 1:1구도를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는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리로 인해 이들의 주장에 약간의 변화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혁신과 통합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식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10월 20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선거연합이나 후보 단일화는 민주당과 민노당의 후보 단일화가 핵심이었는데, 이번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봐라. 이번에 민노당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진보정당이 이 통합의 흐름에 안 들어와도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려버린 거다."

다소 속류적인 방식으로 이 말을 다시 번역하자면 '안철수로 대변되는 무당층을 끌고 올 수 있는 동력이 생겼기 때문에 진보정당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은 절실하지 않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의 야권통합의 공은 이제는 자신들도 진보정당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세력의 손에 있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으로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이제 진보정당세력이 마주해야 하는 물음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가 아니라 '혁신과 통합의 주도로 만들어질 새로운 정당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 물음에 답변하는 것의 다음 순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분 협상을 대비하는 국면으로 진입하는 모양새다. 손학규 대표가 '야권통합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이어 민주당 소속 여러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민주당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권통합을 부정할만한 명분은 없다는 점, 당권의 향방에 따라 그 정도와 속도가 달라질 뿐이라는 점은 결국 민주당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처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일부 정치인들이 민주당에 남고 나머지가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의 창당 수순으로 가는 수도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현재 민주당 세력이 이 기획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부분일 수밖에 없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범야권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이런 기획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진보정당세력의 입장에서는 득실을 따져봐야 하는 수밖에 없다. 통합신당에 참여하면 진보정당세력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일단 유념해야 할 것은 하나의 정당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다른 장치를 마련하더라도 결국은 '공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연합의 형태로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과는 모양이 달리 흘러갈 수밖에 없다. 따로 존재하는 두 당의 협상이 아니라 같은 당 안에서 공천심사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득표력을 근거로 한 경쟁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합신당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이길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이 리스트에 진보정당세력의 정치 지망생들이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겠는가?

물론 통합신당에 참여하지 않고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하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최소한 협상의 여지가 남는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진보정당세력이 충분히 힘을 갖고 있다면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상황이더라도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진보정당세력이 이러한 기획에 참여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명분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세력이 이러한 기획에 참여하면 그간 주요한 지지기반이었던 민주노총 등의 지지를 잃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득실의 계산에 따라 진보정당세력이 혁신과 통합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다음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31일 참여당 최고위원회에서 발언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탈당한 통합연대의 선택을 촉구했다.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조속히 밝히고 함께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면 자신들은 혁신과 통합이 주도하는 통합신당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세력의 남은 선택지들이 명확해진다. 첫째, 혁신과 통합의 통합신당에 모두 참여하거나, 둘째,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하고 진보신당은 남아있는 상황으로 가거나, 셋째, 국민참여당은 통합신당에 참여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새롭게 통합을 모색하거나.

아직 이들이 각각 어떤 길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은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다만 어떤 길을 모색하더라도 진보정당세력이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야권이 어떤 형태로 재편되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민주, 평화, 개혁 세력의 집권 이후를 준비해야 할 진보정당은 반드시 남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정당정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진보정치의 흐름은 곧 다시 오게 되어 있다. 대중을 믿고 미래를 준비하는 인내를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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