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자신의 SNS에 올린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는 글이 종일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 백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백신을 맞으라는 유승민 전 의원의 제안을 비판한 글이다.

언론은 정 의원의 SNS 글을 토대로 100건이 넘는 기사를 쏟아냈다. 대부분 <정청래 “백신 1호 접종?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 <정청래 “文 백신 1호접종? 실험대상이냐”>등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시각의 보도들이 비슷한 제목을 달고 출고됐다. 안수찬 세명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는 ‘뉴스 동질화’ 현상이며 일종의 ‘복제보도’다.

안수찬 교수는 이달 <저널리즘의 새로운 과거와 오래된 미래, 복제 보도와 원천 보도>란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안 교수는 “뉴스 동질화의 경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규범적 지위와 기자 전문직주의를 흔들고 있다”며 연구 이유를 밝혔다.

사진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블로그 '모두가 함께하는 저널리즘 스쿨'

안 교수는 복제 보도, 원천 보도의 생산 관행을 파악하기 위해 디지털 기자 5명, 일반 기자 5명, 탐사 기자 5명 총 15명을 대상으로 심층 분석했다. 소속에 따라 분류하면 종합일간지 11명, 경제일간지 2명, 통신사 1명, 온라인 미디어 1명이다.

디지털, 일반, 탐사 보도 기자들의 취재일지를 살펴본 결과 취재 방식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디지털 기자와 일반 기자들은 뉴스거리를 찾기 위한 ‘디지털 순회’를 일상적으로 수행했다. 다만 디지털 기자는 유명인들의 SNS, 포털 검색 순위, 연합뉴스, 해외 매체 이슈에 주목했다면 일반 기자는 출입처 관련 타사 보도, 보도자료, 발표자료, 주요 정치인들의 SNS를 확인했다. 탐사보도 기자들은 취재원을 직접 만나거나 논문, 책으로 자료 수집을 했다.

인터뷰에서 15명의 기자는 복제 보도와 원천 보도에 해당하는 관행에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이들은 속보 중심으로 연합뉴스 등을 베껴쓰거나 보도자료나 소셜미디어 발언을 옮겨 쓰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제일간지 디지털 10년 차 기자는 “포털 메인에 우리 기사가 걸리면, 그 기사 밑에 있는 우리 신문의 다른 기사 링크를 타고 신문 웹 사이트에 독자들이 들어온다. 웹 페이지뷰를 위해서는 포털 메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디지털부 인턴 기자는 “이런 기사를 써야 사람들에 포털에서 읽어보고 우리 신문을 익숙하게 여길 것이고 그래야 그 사람들이 우리 웹페이지로 들어와 다른 기사도 볼 것”이라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데 그게 결국은 온라인 기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포털이 기자 업무 패턴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디지털 기자들은 디지털에서 뉴스 소재를 찾는 일명 ‘디지털 마와리’를 수행하고 있었다. 또한 탐사보도 기자의 뉴스 가치 판단 과정에 포털의 알고리듬 및 실시간 검색 순위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종합일간지 기획취재부 5년 차 이상 기자는 “출장도 가고 공들여서 3회짜리 기사를 연재했는데 포털에서 너무 안 읽혔다. 3회 가운데 하나라도 읽히면 좋겠는데 너무 안 읽혀서 속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또다른 종합일간지 탐사기획부 기자는 “포털에는 아나운서가 속옷 걸치지 않고 방송했다는 뉴스가 가장 많이 본 기사에 오른다. 내가 쓴 기사의 페이지뷰를 보면 ‘아, 이게, 이렇게 밖에 소비가 안 되는가’ 싶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안수찬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의 뉴스 소비자들은 포털을 중심으로 기사를 접한다”며 “포털에서 내놓은 기사를 각 언론의 디지털 부서가 주로 담당하는데 거의 전부가 다른 언론의 기사를 베끼거나 소셜미디어와 방송에 나도는 정보를 옮긴 복제 보도”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뉴스 소비자가 접하는 한국 언론은 ‘복제 공장’의 형상을 띠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한국 언론의 특징으로 “‘베껴 쓰기’가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며 “직접 취재하지 않았더라도 연합뉴스를 보고 그대로 옮기는 관행은 특히 출입처를 담당하는 일반 기자들 사이에서는 보편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기자들은 탐사 또는 기획 취재의 영역에서 비교적 탁월한 수준으로 원천 정보를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관행을 적용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한국 언론계 전체로 보자면 베껴 쓰기의 파장력이 더욱 강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원천 보도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와 통신사 기사 내용을 베껴 쓰지 말고 그 내용에 담긴 정보로부터 새로운 문서, 사람, 현장의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제언했다. 불가피하게 보도자료나 소셜미디어 글을 그대로 베껴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짧은 정보나 새로운 의견을 반드시 기사에 덧붙여야 한다고 했다.

뉴스룸 차원에서는 ‘기사 하나의 완성도를 높이는 관행’을 새롭게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안 교수는 최초 속보는 디지털 기자가 쓰더라도 주요 내용을 확인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는 일은 현장 기자가 거들어 공동 바이라인을 내는 방식으로 바꿔볼 것을 제안했다.

근본적인 뉴스룸 개편을 위해서는 “현장 기자들을 출입처로부터 놓아줘야 한다”고 했다. 안 교수는 “출입처는 보도자료 옮겨쓰기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출입처와 관련한 유명인의 말과 글을 실시간으로 탐지하여 받아 쓰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출입처 체제의 시대착오성은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출입처의 전통적 취재원 대다수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채널을 갖게 돼 소셜미디어, 유튜브 채널 등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자 출입처에서 이제는 가치있는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해외 유력 언론의 뉴스룸 사례를 들어 전체 인력의 10~20%에게만 고정 출입처를 부여하고 나머지 기자들은 다양한 이슈를 번갈아 취재하는 ‘일반 취재 기자’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안 교수는 언론계 차원에서 ‘좋은 기사 쿼터제’ 등을 시도해 포털의 변화를 이끌어 내거나 포털 외곽에서 ‘원천 정보’가 풍부한 기사를 따로 모아 제공하는 방안 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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