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승부가 끝났다. 최종스코어 53대 46, 박원순 후보의 승리다. 선출직으로서는 최초의 무소속 서울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득표의 차이도 의미 있으며 민주당이 다수당인 서울시의회의 상황을 고려하면 서울은 사실상 야권 품에 떨어졌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고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겠는가?

일단 잠시 이야기의 무대를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시기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다. 이때 한나라당은 지지층을 최대로 동원했고 야권은 투표거부운동으로 맞섰다. 최종 투표율은 25.7%.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고정 지지층을 23%로 잡는 관례와 비교하면 한나라당 지지층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를 투표율의 추이에 대입하여 역산하고 박근혜 효과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45~48% 정도의 선에서 승부가 갈리게 될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전망이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비교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표준적인 선거 결과를 꼽으라고 하면 손학규 대표가 출마했던 분당 을 보궐선거가 될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최종적인 투표율은 48.6%로 49.1%의 분당 을 보궐선거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나라당의 고정적 지지표와 전체 투표율이 예상된 상황에서 박원순 후보의 득표를 추측하는 것은 간단한 산수다. 이렇게 역산한 결과 양쪽 후보의 득표는 대략 박원순 후보 51%, 나경원 후보 48% 정도 수준으로 예측됐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예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보다 격차가 큰 53%대 46% 정도의 수준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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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0에 가까웠던 박근혜 효과

첫 번째, 이 차이는 '박근혜 효과'가 사실상 0에 가까웠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경원 후보 득표는 어디까지나 나 후보가 한나라당의 고정적 지지층을 가까스로 끌고 온 수치라는 얘기다. 무상급식 투표 국면에서 알려진 대로 박근혜 전 대표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고 이에 대한 반발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사실상 전면에 나서서 나경원 후보를 지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 국면보다 확장된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박근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나경원 후보에 대한 자질론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경원 후보는 원래 자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중구에서조차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했다. 중구의 선거에서 거의 항상 보수적인 성향의 후보가 유리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는 일종의 '이변'이다. 어떤 지역적 변수가 있었는지는 더 판단해 보아야 하겠지만 사실상 정치인 나경원은 당분간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이 박근혜 효과가 미진한 것에 대한 핑계는 되지 못한다.

선거의 최대 승자가 된 안철수 원장

개표 결과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안철수 효과'다. 박원순 후보의 경우 안철수 원장의 막판 편지 낭독 사건 때문에 2~3% 정도의 지지율을 추가로 획득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용산, 서초, 강남, 송파 이외의 모든 지역구에서 유의미한 차이로 나경원 후보를 따돌릴 수 있었던 힘 또한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박원순 후보는 50%가 양보한 5%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므로 이 선거의 최대 승자는 안철수 원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이러한 특징들은 이후 정국의 흐름을 예측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일단 서울에서 박근혜 효과가 전혀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구 친이계와 소장파들이 어떤 다른 행보를 모색할 지의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른다. 친이계가 사실상 해체되고 소장파가 비박계, 또는 친박계와 행보를 같이 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총선을 진두지휘 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이 최소한 수도권에서는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눈앞에 제시됐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 홍준표 대표의 사퇴를 포함한 강력한 수준의 당 개혁을 요구하거나, 둘째, 대선주자의 실질적인 교체를 모색하거나, 셋째, 당적을 세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선택지 중 현실적으로 어떤 선택이 가능하겠는가? 서울에선 졌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승리했기 때문에 홍준표 대표의 사퇴를 당위로 말하기도 어렵다. 당 내에 박근혜 전 대표를 대체할만한 인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무작정 대선주자의 교체를 모색하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일부가 탈당해서 당 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당 창당 프로젝트 등에 힘을 싣는 행보를 할 수는 있겠으나 이것도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당분간 책임소재를 가리는 지리멸렬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년 총선의 시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빅뱅'이 일어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지게 됐는데, 이쪽은 예비대선주자들의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추이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부산 동구의 패배, 내년 총선 PK의 선전은 가능한가?

일단 문재인 이사장의 경우부터 챙겨보자. 가장 큰 전선이었기 때문에 서울에 많이 집중을 한 것 같지만 부산 동구 보궐선거 결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민주당 내 외의 친노세력이 그간 주장한 로드맵은 PK지역을 수복해서 호남고립을 뚫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 동구에서의 패배로 이러한 로드맵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PK지역에서 크게 선전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예측은 시기상조이고 아직은 지켜볼 일이나 당장 대권주자 입장에서는 이번 판에서 점수를 잃었다고 볼 수도 있다.

손학규 대표의 경우는 어떤가? 손학규 대표의 경우는 본전 장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점수를 크게 내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잘 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 애초에 대표로서 민주당이 주도하지 못하는 선거판이 형성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고, 박원순 후보로의 단일화 이후에는 사퇴 의사까지 밝혔기 때문에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에게는 외면을 받는 입장에 처할 수 있다. 특히 대표직 사퇴는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는데, 관점에 따라서는 당 외에서 불어 닥칠 통합의 바람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관철시켜야 할 당 대표가 그 책임을 개인의 정치행보 때문에 내던져 버린 모양새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보궐선거 국면에서 일단 후퇴해 한미FTA 전선에 올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니 결국 야권의 대권주자 중 명백한 승자는 사실상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을 좌지우지한 안철수 원장 한 명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철수 원장을 중심으로 한 20대 부터 40대에 이르는 젊은 무당층들의 여론과 이것을 적절히 통제해 정치적 성과를 획득하려고 하는 민주당 외부의 친노그룹인 '혁신과 통합'의 주도로 새로운 통합신당에 대한 여론이 떠오를 것이다. 정작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안철수 원장은 일정 기간 정치권에 또 얼굴을 내비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분간은 야권에서도 여권과 마찬가지로 혼란상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플레이어들이 속속 야권에 출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무쪼록 이런 흐름이 한국 정치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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