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모든 게 순탄치 않았던 몇 년 전. 친구와 대화 중 했던 말이 가끔 기억난다. “이경규 씨 이제 그만 나와주세요.” 현실 세계의 이경규 씨는 집밥 한 끼 얻어먹거나 낚시 다니기 바빠서 나 따위에게 몰래카메라를 들이밀 일이 없음을 알지만, 지금의 이 현실이 다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간절함은 진짜였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이하 <찬실이>)의 주인공 찬실이(강말금)도 아마 이경규 씨를 간절히 찾고 싶었을 거다.

영화는 쇼팽의 장중한 ‘장송 행진곡’을 배경으로 어느 영화인들의 술자리를 그리며 시작된다. 다양한 술 게임이 오가고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감독으로 불리는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 감독의 제작 PD로 오랫동안 일하며 이제 막 40세가 된 찬실이(강말금)는 이 황당한 사건 탓에 실직자가 된다. 모아둔 돈도, 편안한 집 한 채도, 의지할 애인도 없는 찬실이는 결국 산동네에 있는 하숙방을 하나 겨우 얻고 친한 배우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완전 망했다”는 찬실이의 대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인데 복이 많다니. 「운수 좋은 날」처럼 역설적인 제목으로 사람을 놀리나 싶지만 찬실이와 천천히 동행하다 보면 제작자의 탁월한 작명 실력에 박수를 치게 된다. 일단 돌연사로 시작하는 오프닝이 중요하다. 죽음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바닥 밑에는 지하실에 있어도 사람은 두 번 죽지 않으니 차차 나아질 일만 남은 희망적인 출발(?)인 셈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박복(薄福) 찬실에서 다복(多福) 찬실로

서사적으로도 죽음의 표면적 당사자는 지 감독이지만 사실은 찬실이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다. 지 감독의 부재는 찬실이 쌓아온 커리어의 붕괴로 나타난다.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지 감독의 작품만 제작해 온 찬실을 받아줄 제작사가 없던 것이다. 커리어의 단절은 실직이라는 곧바로 경제적 죽음으로 이어진다. 찬실의 하숙방은 이삿짐 용달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산동네에 있는데 심지어 하얀 ‘난닝구’ 차림의 장국영 유령(김영민)도 출몰한다.

경제적 죽음은 자연스레 사회적 죽음을 불러온다.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의 제안으로 그녀의 가사도우미로 취업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게 된 찬실. 하지만 소피의 집에는 영화인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입방아에 오를까봐 동종업계 사람들이 갑자기 쳐 들온다면 끓이던 찌개 불을 끄고 급하게 앞치마를 벗어 마치 놀러 온 척 연기를 하거나, 하던 청소를 멈추고 서재에 숨는 게 가사도우미 찬실의 또 다른 일과다. 결국 호감을 느껴왔던 소피의 프랑스어 과외선생님인 연하남 김영(배유람)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밖에 모르는 외길인생을 살았지만 남은 건 박살 난 경력과 방 한 칸, 그리고 거절의 쓰라림. 돈을 빌려줄까 묻던 소피의 호의에 ‘일해서 벌어야 한다’며 강단을 보이는 찬실이지만 현실은 이렇게 버겁다. 참담한 상황에 내몰린 찬실은 결국 모아뒀던 영화잡지, 책, 비디오테이프를 모두 버리려고 내놓는다. 이도 저도 아닌 심란한 찬실의 마음은 하숙방을 통해 선명하고 다양한 결을 더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 묵고 있는 방의 구조는 독특하다. 방은 한 칸인데 마당에서 들어오는 문, 복도를 통해 들어오는 문. 두 개의 문이 있어 안락하다기보다 언제 어떤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 방 안에는 계단이 있어서 1층이라기에는 부족하고 반지하로 깎아내리기는 모호한 형태. 혼자 사는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는 한글을 배우는 중인데 읽는 것도 못 읽는 것도 아닌 아주 애매한 단계를 거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방에는 유령인지 헛것인지 모를 장국영이 산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동행을 거쳐 모두 예상하고 바랬듯 박복(薄福) 찬실에서 다복(多福) 찬실로의 반전도 절망의 단칸방에서 시작된다.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한 김영은 찬실에게 ‘영화를 사랑하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며 ‘사람들과 함께 우정을 주고받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어느덧 친해진 집주인 할머니는 작시 숙제를 받았다며 찬실에게 조언을 구한다. 대단한 걸 쓰지 말고 중요한 걸 쓰라는 찬실의 말에 할머니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문장으로 된 시 한 편을 보여준다.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사실은 삶의 한 부분이며, 지 감독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게 꿈이라던 찬실. 시를 읽은 찬실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며,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다는 찬실은 내놨던 책들을 다시 방안에 들여놓고 조그마한 노트북 앞에 앉아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사실 <찬실이>의 김초희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제작 PD였다. 10여 년간 일했다가 실직한 뒤 잠시 영화계를 떠났던 본인의 경험을 반영해 주인공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빛날 찬, 열매 실. 이제 막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찬실이 결국 빛나는 열매를 맺어 영화계로 돌아갔는지는 현시점의 우리는 알 수 없다.(시나리오를 읽은 소피는 지루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러나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관계 아래 새롭게 돋은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닐까.

살뜰하게 찬실의 곁을 지키던 장국영은 먼 우주에서 바라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늦은 저녁, 찬실의 하숙방에 동료들 너덧 명이 갑자기 놀러 온다. 둘러앉기도 좁은 집인데 전등이 나갔다. 집에 여분의 전구도 없는 상황. 전구를 사러 다 함께 집을 나선다. 노란 가로등이 드문드문 길을 비추는 호젓한 산동네 골목. 보름달을 보며 소피가 찬실에게 말을 꺼낸다.

소피: 언니 오늘은 정말 달에게 맹세하고픈 깊고 깊은 겨울밤이야.
찬실: 맹세는 하지 마라. 달도 변하는데 뭔들 안 변한다고.

소피는 어떤 맹세를 하고 싶었고, 찬실은 왜 이유를 묻지도 않고 맹세하지 말라고 했을까. 다음 장면에서 깊은 겨울밤. 영화 속 찬실이는 동료들의 맨 뒤에서 서두르는 행색 없이 조그마한 손전등으로 어두운 길을 밝힌다. 박상영 작가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찬실이>의 수많은 제목 후보 가운데 하나는 <기다리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김초희 감독은 평소 김수영 시인의 시를 기도문처럼 본다며 시구를 낭송했다.

사람은 꽃처럼 돌아오지 않지만 꽃을 바라본 마음은 남고, 달은 매일 모습을 바꾸지만 결국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어떤 맹세와 기다리는 마음. 겨울밤을 지나 봄밤으로 이어지는 찬실과 우리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김수영, ‘봄밤’ (195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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