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금 한국 사회의 토픽은 ‘학폭’, 그러니까 학교 폭력이다. 얼마 전엔 TV조선 ‘미스 트롯’ 출연자의 ‘학폭’ 가해 사실이 폭로되며 떠들썩했다. 지난주엔 모 배구 선수의 학교 폭력이 폭로되었다. 이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은 한층 커졌다. 그리고 남자 배구계로 불이 번지며 폭로가 잇따랐다. 공분을 타고 청와대 청원이 제기됐고, 대통령이 직접 체육계 폭력 근절을 주문하는 상황이 됐다.

학창 시절은 삶과 인격의 일각이 형성되는 시절이고, 스스로를 지킬 자력이 충분치 않은 시기다. 이런 시기에 겪는 폭력이 가벼울 수 없다. 현재 논란이 된 사건 역시 피해자들의 폭로 내용을 보면 질적으로 흉흉한 폭력이다. 연예인과 운동선수는 미디어를 타고 세상에 제 존재를 전시하는 유명인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배구계라는 조직 내부 환경이 빚은 성격이 있기 때문에 지나간 개인의 과거로 치부할 수 없다.

학교폭력ㆍ학대ㆍ왕따(PG) Ⓒ연합뉴스

다만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할 것 같다. 확실히 ‘학폭’은 유명인들에게 도덕적으로 치명적이고 사회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이슈다. 언젠가부터 유명인이 ‘학폭’을 저질렀다는 폭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높은 확률로 퇴출 사유가 된다. 사람들의 도덕 감정 속에서 학교 폭력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고, 논란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학교 폭력은 보편적인 폭력이다. 대다수 사람이 의무 교육을 받고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들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겪거나 목격하며 자란다. 남을 주도적으로 괴롭힐 만한 완력을 지니거나 그런 학생들이 뭉치는 패거리에 소속된 학생보다 거기에 당한 피해자와 침묵하며 지켜본 방관자가 더 많을 것이다. ‘학폭’은 여론을 구성하는 사람들 다수에게 실감 어린 집단적 기억으로 공유되는 폭력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피해자들에게 해결되지 않은 과거다. 사법기관의 개입이 제한적인 교실과 미성년자들의 특수성, 담임선생이 커버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교정 내 곳곳의 귀퉁이와 모서리… 그 안에서 괴롭힘이 벌어진다. 그건 ‘애들 싸움’이나 ‘성장 의례’의 풍경처럼 치부되며 미봉되기도 한다. 피해자로선 보복당할 두려움에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 경험은 인과응보를 통해 매듭지어지지 않은 기억으로 가슴 한구석에 봉인된 채 삭는다. 미디어를 통해 유명인이 저지른 ‘학폭’이 폭로될 때, 사람들이 공유하는 해소되지 않은 과거가 상기되며 트리거로 작용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알 만한 사람이 저지른 가해 사실에 몰입하며 그를 징벌함으로써 해소감을 얻고 싶은 심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양상으로 논란이 타오르는 것이 꼭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논란은 뒤늦은 인과응보를 내리는 것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로 폭로된 유명인을 성토하는 것에 초점이 쏠리는 경향이 있다. 학교 폭력은 학교 시스템 내부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며, 그것을 막지 못하는 시스템의 결함 속에 빚어지는 성격도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는 보편적 폭력이기에, 시스템에 개입을 해야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되는 걸 막을 수 있다. 학교 폭력이 무수히 논란이 되는 데도 보편적 의제로서의 학교 폭력은 거론되지 않는 경향, 이건 이 이슈가 유명인을 퇴출하는 가십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PG [연합뉴스 자료]

그러므로 가십은 가해자의 악마화로 흐르기 쉽다. 가해자를 향한 비판과 그가 뒤늦게라도 대가를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환경이 개인의 ‘인성’ 결함으로 치환돼 버리는 함정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배구계에서 일어난 학교 폭력은 공교육 제도에서 분립된 엘리트 체육의 폐쇄적 환경, 체육계 내부에서 일찌감치 전승되는 군기 문화 등이 가해자들에게 폭력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어줬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공론에서 소외되는 편향이 존재한다.

최초 폭로가 일어난 배구선수는 이전부터 팀 내 다른 선수와 불화설에 연루돼 가십에 올랐었다. 사실, 그 논란과 이 논란은 인과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학교 폭력 폭로가 터진 뒤 그를 근거로 둘 사이 불화 또한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의 잘못이었을 것이라 여론이 정리돼 버렸다. 폭력과 같은 사회적 개념을 개인의 인성이란 표식 안에서 이해하고 온전히 거기서 원인을 찾는 편향이 있다는 뜻이다. 고로, 논란은 가해자의 됨됨이를 성토하고 퍼블릭한 활동에서 퇴출시키는 단발성 이벤트로 마무리되고 만다.

공적 의제로 승화되지 않고 가해자의 인성이란 사적 영역에서 공회전하는 가십, 사회의 현재를 구성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해자의 과거로만 소환되는 학교 폭력. 이 어긋남을 바로잡으려면 공론을 받아 안을 권한과 책임이 있는 언론과 정치인, 교육 종사자들이 논란의 궤도를 보편적 의제 안 편으로 이끌어야 한다. 예컨대, 일련의 사건을 가해자 개개인을 포함해 체육 분야 내부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물론, 학교 폭력 전반에 관해 경각심을 환기하고 초점을 맞추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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