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시위 한번 하려면 목숨 걸고 해야 할 것 같다.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장관에 기용된 김경한 법무장관이 19일 △시위진압 경찰에 면책권을 보장하고 △형사재판 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함께 판결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된 시위 하다가 ‘개 맞듯 맞아도’ 항의는 물론이고 손해배상 받을 생각은 접어야 하고, 오히려 돈까지 물어내야할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몸 상하고 돈까지 물어내야 할 판이다. 벌건 대낮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발언들이 법무부 장관의 입을 통해서 나오다니 … 정말 기가 막힌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닌가

▲ 한겨레 3월20일자 4면.
법무부가 이토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뭘까. 오늘자(20일) 한겨레를 보면 법 개정 취지가 나와 있는데 이게 참 말이 안되는 ‘거시기’다. 다음과 같다.

“그동안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공무원의 신분을 이유로 책임을 철저히 물어왔다. 시민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는데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면 안되고, 불법 필벌이라는 원칙은 고수하겠다는 취지다.”

웃긴다. 아니 솔직히 좀 살벌하다. 법무부의 이 같은 방침에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시민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시위대를 ‘작살’내고, 시위대 ‘작살낸’ 경찰에게는 면책권을 주겠다고 한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시민 테두리에 포함되기 위해선 집회나 시위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공무원의 신분을 이유로 책임을 철저히 물어왔다”는 법무부의 설명은 ‘뻥’이다. 오늘자(20일) 한겨레도 지적했듯이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는 별로 없다. 지난 2005년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에서 농민 2명이 숨졌을 때도 당시 경찰관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책임을 철저히 물어왔다’고 법무부는 강조한다. 법무부가 ‘거짓’을 고할 땐 어떤 처벌을 내릴 수 있을까.

불법 폭력시위는 갈수록 감소 추세 … 결국 노리는 건 집회원천 봉쇄?

▲ 경향신문 3월20일자 사설.
불법 폭력시위 안하면 되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안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른바 든든한 배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약자가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자(20일)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불법 폭력시위를 합리화 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법무부가 정한 불법이라는 기준이 대단히 ‘자의적’으로 적용돼 왔던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모른 척’으로 일관한 채 파업 또는 시위참가자에 대해서만 ‘때려잡자’는 식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법무부가 대기업을 비롯한 사용자 쪽의 ‘불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 척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경찰청 자료를 보면 최근 불법 폭력시위는 지난 2001년 215건(1.64%)에서 2007년 64건(0.54%)으로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때려잡자 시위대’를 기치로 내걸었다. 시위에 나설 일이 거의 0%에 가까운 ‘고소영’ ‘강부자’들은 상관 없을지 몰라도 나 같은 서민들은 정말 ‘살 떨리는’ 일이다.

▲ 중앙일보 3월20일자 4면.
이명박 대통령. 법무부 장관 업무보고 받고 나서 “국민 대부분이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대부분이라면 적어도 4천만은 넘는다는 말인데, 이 말 달리 해석하면 자신은 거기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 아닌가.

이거 정말 시민 노릇하기 힘들다. 4천만에 포함되지 않고 나머지 1-2%에 속하는 대통령 모시자니. 조선일보는 이 발언의 위험성을 아는지 오늘자(20일) 신문에 시위진압과 관련한 부분은 살짝 '뒤로' 뺐다. 역시 동물적이다. 그런데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난리 부르스'를 떤다. 역시 한 수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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