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재보궐선거 관련 후보들 간의 TV토론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선거 분위기가 잡혀가는 모양새다. 다만 아직은 어디에서든 희망을 논할 대목을 찾기 쉽지 않다.

15일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자 경선에 출마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 간 토론이 진행됐다. 지지율에 있어 다소 밀리는 우상호 의원이 적극적으로 논쟁에 나서겠다는 예고를 한 터라 기대를 가졌는데,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좀 김이 샌다는 느낌이다.

우상호 의원은 박영선 전 장관이 내놓은 ‘21분 컴팩트 도시’를 주로 비판했다. 대전환이 아닌 대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박영선 전 장관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수직정원이 흉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현실성 등 한계를 드러내는 보다 정교한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박영선 전 장관은 우상호 의원의 강변도로 공공주택 건설 공약을 비판했다. 한강 조망권을 해쳐 ‘질식할 것 같은 서울’이 될 거라는 얘기다. 경제 유관부처 장관 출신다운 구체적 지적과 반론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우상호 의원에 대한 공격에만 치중하기보다 본인의 수직정원 공약을 부각키시는 데 주력하는 노련한 모습도 보였다.

다만 박영선 전 장관의 주장과 발언에서 “민주당답지 않다”는 우상호 의원의 지적이 일리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우상호 의원은 자신이 보다 진보적인 지향의 후보라는 점을 어필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상호 의원도 학생운동 이력 이상의 어떤 진보적 지향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두 후보 간 토론은 이 시기에 어떤 서울시장이 필요한지를 논하는 것보다는 유권자들에게 보여줄만한 ‘개발 정책 상품’을 홍보하는 자리에 그쳤다는 느낌이다. 두 후보의 토론에서 실제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를 발견한 지지자도 많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오른쪽), 우상호 서울시장 경선후보 (연합뉴스)

좀 흥이 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은 야권도 마찬가지다. TV토론과 관련해 같은 날 나온 뉴스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 간의 TV토론 성사 여부였다. 애초 두 사람은 두 차례 공개토론 일정에 합의했지만 실무 협상에서 진도를 내지 못해 하루를 남겨 놓고 1차 토론 일정이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책임공방으로 이어졌다. 안철수 대표 측은 금태섭 전 의원이 특정 방송사와의 토론 일정을 고집한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단일화 관련 TV토론은 기회가 1번뿐이라 국민의힘과의 협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반면 금태섭 전 의원은 토론 하루 전날까지 세부 내용에 합의하지 않는 안철수 대표 측 태도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TV토론 기회가 1번이라는 것도 근거가 없다는 반론도 폈다.

결론적으로 보면 1차 토론 무산의 책임은 안철수 대표 쪽에 있다고 생각된다. 안철수-금태섭 단일화 TV토론을 진행하면 국민의힘 후보와는 TV토론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먼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자신에게 불리한 토론을 피하기 위한 어떤 꼼수였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금태섭 전 의원과의 단일화도 제대로 합의하지 못하면서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에 어떻게 합의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18일에 토론을 진행하기로 다시 합의가 되었지만 이 문제를 수습해가는 과정은 양쪽 모두에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결국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국민이 물어보는 사안에 대해 자유자재로 답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정치인”이라면서 “한 명이 나 혼자 살겠다고 고집하면 모두 죽는 공존 공멸의 상황”이라고 발언하고 나서야 상황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즉 금태섭 전 의원으로서는 ‘원군’을 부른 셈인데, 이런 식이라면 과연 ‘제3지대 단일화’가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힘과 안철수 대표 양쪽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는 2단계 단일화는 중도 확장이 어려운 국민의힘과 중도에 대한 호소력을 갖춘 안철수 대표 간 시너지가 핵심이다.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유권자를 설득한 후 대의명분 아래 서로 손을 잡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제3지대 단일화’는 이런 점에서 중도적 유권자 층에 대한 호소력 제고의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러나 TV토론 무산과 책임 공방은 ‘제3지대 단일화’ 자체가 이미 국민의힘 경선의 마이너리그처럼 돼버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야권의 또 한 가지 쟁점은 공동정부에 대한 것이다. 애초 이 제안은 안철수 대표의 출마선언으로부터 나왔는데 최근 오세훈 전 시장이 다시 재론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안철수 대표와 자신이 중도층 호소력이라는 강점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는데,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보다 본선경쟁력이 앞선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꺼낸 카드로 해석된다.

나경원 전 의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긍정적 메시지를 냈는데, ‘자유주의 상식연합’을 함께 언급한 것의 뉘앙스 차이는 있다. 야권단일화를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의 계기로까지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틀로 김종인 비대위가 활동을 종료할 선거 이후 정계개편을 추진한다면 현실적으로 그 폭은 ‘안철수부터 홍준표까지’가 될 것이다. 국민의힘 내외에선 벌써부터 포스트-김종인 체제의 당권을 둘러싼 이런저런 설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최근 ‘클릭 실수’를 한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정권심판’을 위해 각자의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힘을 합친다는 정치적 맥락과는 또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야권단일화의 명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짚어보면 여야 모두 유권자에 호소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쟁점화 하는 것에 실패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상호 의원의 박원순 전 시장 사건 피해자 2차가해 논란까지 더하면 과연 어디에 무슨 기준으로 지지를 보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재보궐선거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라도 이러한 의미에 부응하는 방식의 활동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여야 후보들 모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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