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알페스 처벌법'을 9일 대표발의했다. 허구를 전제로 한 개인의 글과 그림을 성착취물로 정의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 의원 법안은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의 범위에 글과 그림을 포함시켜 알페스와 같은 글과 그림을 제작·공유한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이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허위영상물 반포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영상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된 영상편집물을 가공·반포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 의원은 "최근 연예인 등 실제 인물을 소재로 동성 인물 사이의 노골적이고 사실적인 성행위가 묘사된 이른바 알페스의 무분별한 확산·공유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며 "허위영상물의 범위를 명확히 해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취지를 밝혔다. 하 의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함께 알페스를 제작·유포한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경찰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국민의힘 박대수·백종헌·성일종·이명수·이주환·임이자·허영제·허은아·황보승희, 민주당 이병훈,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오른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달 19일 남성 아이돌을 소재로 한 성착취물 알페스·섹테(섹스테이프) 제조자 및 유포자 수사의뢰서를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페스'는 'RPS'(Real Person Slash)를 한국어로 발음한 '알피에스'를 줄인 말이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장르문학('RPF', Real Person Fiction)에서 파생된 말로, 국내에선 팬픽(Fan fiction)의 한 장르로 일컬어진다. 알페스는 수위와 소재 등에 따라 성적대상화·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팬덤 문화 내에서 도 넘은 수위의 알페스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표현물에 대한 '처벌'이다. 상상과 허구를 전제로 한 글과 그림을 성범죄로 처벌하겠다는 하 의원 주장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 칼럼 <알페스를 처벌해야 하는가>에서 "상상력을 처벌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진 전 교수는 "명예훼손이 되려면 사실 혹은 허위여야 한다. 하지만 '허구'는 사실도 허위도 아니다"라며 "아예 처음부터 ‘픽션’임을 밝히고 들어가기 때문에 소재가 된 스타들은 설사 내심으로는 불쾌해도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알페스를 처벌할 수 있지만, 창작물을 '음란물'로 규정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되물었다. 진 전 교수는 "현행법에 따르면 음란물로 판정하는 기준은 창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본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이라며 "이 지점에서 법률과 예술은 서로 충돌한다. 그 충돌이 때로는 불행한 사건을 낳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진 전 교수는 1991년 마광수 작가의 '즐거운 사라', 1996년 장정일 작가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 판정을 받아 구속당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당시에는 사회 평균인의 건전한 사회 통념을 거스르는 음란물이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진 전 교수는 영국에서 걸 그룹을 대상으로 한 RPF가 기소됐으나 무죄가 선고된 사례를 들며 "한국은 이와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 결국 검사나 판사의 주관적 성향에 따라 애먼 창작물이 ‘음란물’ 판정을 받을 위험이 상존한다"고 비판했다.

오랫동안 팬덤 하위문화로 존재해 온 알페스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계기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성착취 논란에 대한 '백래시'(반동·역습)가 거론된다.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인공지능 챗봇에 성희롱 논란이 일자 실존하는 인물을 소재로 삼는 알페스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알페스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분석이다.

진 전 교수는 "사실 그들의 요구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콘텐츠를 즐길 우리의 권리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주문에 가깝다. 그런데 야당 의원이 그 요구를 받아 아예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한다"면서 "여당 의원들이 줄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자유주의적 입법을 하는 판에 야당 의원까지 숟가락을 얹으니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진 전 교수의 비판에 하 의원은 "알페스는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라며 "알페스와 딥페이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진 전 교수는 다시 "알페스가 딥페이크와 동일하다면, 하 의원은 고릴라와 동일하다"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고래는 물고기를 닮았지만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다. 부류가 전혀 다른 것을 억지로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징후적인 것"이라며 "하 의원, 거기 목매지 말라"고 했다.

하 의원과 이 전 최고위원은 직전 20대 국회에서 '워마드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고, 20대가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성 갈등'을 꼽았던 시기였다. 당시 정의당 정혜연 부대표는 이들에 대해 "성별 갈등에 기대어 주목 경쟁을 벌이는 질 나쁜 정치는 당장 그만 두시라"며 "바른미래당은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 불화·반목에 기름을 끼얹고 '세대 내전'으로 내몰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쌓으려 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또한 하 의원은 온라인상 불법정보 유통 사이트를 차단하는 내용의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워마드 폐쇄법'이라며 발의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빚었다. 하 의원은 이 법에서 온라인 불법정보 범위에 ‘성별, 나이, 지역, 피부색, 장애를 이유로 한 비방, 조롱, 욕설’을 포함시키고,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처벌규정을 뒀다.

당시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 법안에 의하면 ‘김치녀’, ‘맘충’, ‘한남’, ‘틀딱’, ‘개저씨’, ‘급식충’, ‘홍어’, ‘개쌍도’, ‘병신’, ‘또라이’ 등과 같이 불쾌하고 저급한 표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대다수를 형사 피의자로 만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하 의원 법안을 '온라인 커뮤니티 폐쇄법'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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