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우선 감격스럽다. 1999년에 <쉬리>가 개봉했을 때 충무로 영화인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주선 안에서 검빨 트럼프 카드가 아니라 오색찬란한 화투패를 돌리는 주인공. 적어도 ‘우뢰매’ 소리는 듣지 않은 새로운 세계로 도약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을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주 개척에는 뒤처졌을지 모르나 우주 영화 개척에서는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음을 알리는 선포식이다.

그런데 칭찬받아야 마땅할 선포식에 쓴소리들이 들린다. 지나치면 안 될 애정 어린 비평 중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역시 '독창성'의 실종이란 지적이다. 장르물의 성공은 두 가지 경로를 따른다. 장르의 클리셰를 비틀어 색다른 장르로 나아가거나, 클리셰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스스로 장르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우뚝 서거나. <승리호>는 애초에 전자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고, 후자가 될 만큼 깊고 거대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SF에 관심 좀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에서 재생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호>가 참고한 작품들을 헤아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해야 하는데 손바닥만 한 배경에서 찾아야 할 그림이 100개쯤 되는 상황이라고 할까. 이럴 때는 오히려 ‘틀리지 않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게 자신의 SF 내공을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생산적인 놀이방식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성희 유니버스’의 독특한 존재감 덕분이다.

영화 '승리호'

탈시대와 아이들이 만드는 ‘조성희 유니버스’

<승리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스타와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세 배우, 할리우드 뺨치는 CG를 홍보 전면에 내세웠다. 볼 것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제일 높은 허들은 레트로라기보다 아재 감성에 가까운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망작의 기운이었다. <승리호>는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스스로 내세운 장점이 허언은 아님을 증명했다.

배우들은 황량한 그린 스크린 앞에서도 제 몫을 하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비슷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비와 비교해 1/10도 들이지 않았지만 경이로운 가성비로 놀라운 시각적 체험을 선사했다. 허나 영화에서 연기와 CG만 따로 떼어 놓는다면 역시 하나의 볼거리에 불과하다. 작품을 지탱하는 뼈대가 약하면 화려한 볼거리도 빛을 잃는다. 이때 창작자 ‘조성희’의 뚝심이 차분하게 영화의 골격을 다졌다.

조성희 감독은 한국 상업영화계에서도 독창적인 세계관을 통해 차근차근 ‘조성희 유니버스’를 확장해왔다. 그를 대표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무국적성과 탈현실주의다. 전작인 판타지 멜로 <늑대소년>, 누아르 시대극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한국 사회가 배경이지만 리얼한 재현에는 관심이 없다. 하기야 생체개조를 당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늑대인간이 대낮에 활보하고, 권총을 든 홍길동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활빈당이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1980년대 한국에 무슨 리얼리즘을 논하겠는가.

동시대의 다른 감독들이 한국의 시대 맥락을 설명하려 기를 쓰고, 현실감을 부여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조 감독은 과감하게 배경설명을 건너뛰고 우직하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관객들은 배경으로 제시한 시대에서 떠올리기 어려운 황당한 설정에 괴리감을 느끼지만, 곧 이야기에 몰입한다. 황당무계한 설정을 힘이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밀어붙이고, 유려한 완급 조절로 부드럽게 장면과 장면을 이어가는 게 조 감독의 주특기다. 현실을 뛰어넘은 미래사회는 조 감독이 뛰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언젠가 마주쳐야 할 운명론적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승리호'

조성희 유니버스의 두 번째 키워드는 아이들, 정확히는 ‘미아’다. 조 감독이 연출한 장편영화 세 편 모두 미아가 등장한다. 미아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처음부터 버려졌거나(늑대소년), 어쩔 수 없이 도망치거나(탐정 홍길동), 뜻하지 않게 납치되거나(승리호). 미아들은 보호 의무가 있는 어른들에게서 방치된 상태다. 그리고 전혀 관계없는 어른이 등장해 미아들을 거둔다. 이때 미아들이 어떻게 자라느냐가 아니라 미아들을 통해 어른들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중심을 두고 조성희 유니버스가 작동한다.

승리호의 승무원인 태호(송중기), 장 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는 쉽사리 선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각자의 이유로 돈에 환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우주미아 꽃님이(박예린)를 만나며 과거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정의로운 길을 택한다. 승리호의 각성은 악인의 개과천선이 아니다. 현실에 치이는 바람에 구석에서 먼지 쌓이고 때 묻어가던 선한 본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죄책감을 안고 살던 어른이 어떤 계기로 다음 세대를 위해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영화의 외적 요소를 끌어와 작품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게 온당치는 않지만, 정확히 선을 긋고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승리호>에서 환경문제로 비롯된 계층갈등과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한 명의 소녀라는 사실도 무척 상징적이다. 그녀의 행동을 응원해야 마땅한 막대한 자산을 가진 거대기업이나 강대국의 유력한 정치인이 오히려 해코지하지 못해 안달인 현실도 외신을 통해 이미 지겹도록 봐왔잖은가. 다행히 지구 최고의 권좌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202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악인의 개과천선은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SF영화보다 더 허무맹랑한 일이다. 선인이라고 믿었던 인간들의 표리부동은 연일 뉴스를 달구며 무력함과 실망감만 덧대고 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승리호>의 통쾌한 여정에 2시간쯤 함께 하는 게 시간 낭비만은 아닌 듯하다.

영화 '승리호'

<승리호>가 마련한 상상력의 캔버스

순서가 바뀐듯하지만 <승리호>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가난과 내전으로 참혹한 어린 시절을 보낸 우주개발기업 UST의 회장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환경파괴로 참혹해진 지구를 떠나 화성을 개발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우수한 인물만 주민으로 받아들인 뒤 남은 지구인을 몰살시켜 ‘좋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맞서는 건 우주 쓰레기를 수거해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며, 위아래 없이 서로 치고받는 데 바쁜 승리호의 승무원이다. 그리고 우연히 승리호에 탑승한 꽃님이는 우주의 원리를 통해 대결의 승자를 일찌감치 예언한다.

“우주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대요. 우주의 마음으로 보면 버릴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고요”

설리반의 야망이 애초에 틀려먹은 까닭은 따져보면 좋은 사람 없는 좋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좋게 보면 낙관적이고, 냉정하게 본다면 대책 없이 명랑한 <승리호>. 비공식기록이지만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에 오른 이유도 아마 좋은 세계보다 좋은 사람을 꿈꾸는 관객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SF의 붐을 이끈 또 다른 작품인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해설을 쓴 인아영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과학기술이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중요한 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복잡하게 연루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과정’이라고.

좋은 SF는 상상력을 구체화하지만 훌륭한 SF는 상상력을 전파한다. 한국 SF영화든, 미래의 한국 사회든 함께 꿈을 그려나갈 첫 번째 캔버스로는 <승리호>의 채우지 못한 여백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까. 상상력을 전파할 <승리호> 이후의 한국 SF영화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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