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종반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선거 과정을 보면,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맥락은 간단치 않다.

일단 박원순 후보 측부터. 박원순 후보는 범야권단일후보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기들끼리는 아름다운 그림이라고들 한다. 모처럼 야권이 힘을 하나로 모았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가 나섰다가 패배했던 경기도지사 선거와는 달리 야권단일후보를 정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큰 잡음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기대가 남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들이 박원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냐의 여부다. 사실 그동안 협상을 통한 선거연합을 하는 경우 민주당 이외의 당적을 가진 후보가 출마하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지지를 보낼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가 돼 왔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범야권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여기저기서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현장 분위기가 만만찮다', '선거운동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와 같은 평가는 이런 걱정거리들의 존재를 반영하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의 당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이 자기 일처럼 이번 선거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고 민주당 일각에서 박원순 후보의 입당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도 바로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의 상징 칼라를 주로 사용하고 다른 야권의 정당들보다 민주당에 우선한 선거전략을 펼치는 것 역시 이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 때문에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박원순 후보로서의 두 번째 장애물은 변동이 큰 무당층의 지지다. 이는 소위 '안철수 효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이후 박원순 후보가 획득하는 지지는 '기존 야권 지지층 + 무당층'이라는 형태로 평가돼왔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열풍은 기존 정치권을 혐오하는 무당층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경원 후보에 대한 유의미한 우위를 기록한 박원순 후보의 선거 초반 지지율은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후 여론조사의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여론조사마다 상이한 다른 방법론과 보수신문의 '꼼수'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아무래도 무당층의 이탈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소위 네거티브 공세는 바로 여기를 노린 선거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 정서를 자극, '박원순도 똑같은 놈'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모처럼 일어난 무당층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투표 전에 안철수 원장이 나서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이 몇 차례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당층의 지지는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안철수 원장이 등장하지 않으면 박원순 후보는 질 수도 있다. 안철수로 시작해서 안철수로 끝나는 선거라고 할 만하다.

나경원 후보측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 네거티브 공세를 적절히 이용해 박원순 후보에 대한 무당층의 지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세운 듯 보이는데 이것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의 등장과 이전에 벌어졌던 시민단체 등과의 혼란한 관계도 상당 부분 정리돼 비교적으로 단일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후보가 1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이번 선거를 이기기만 하면 그동안 불거졌던 여러 가지 의문을 일소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특히 단단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고 세종시 수정안 반대로 충청권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수도권에서의 경쟁력이 의문시됐고 부산경남권이 불안한 지경이었는데, 마침 이번 보궐선거 국면으로 합법적인 사전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이지만 선거 지원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수 후보의 일원으로 무소속 배일도 후보가 출마하기도 했지만 대세엔 큰 지장이 없을 예정이다. 선거구도가 혼탁양상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기존의 전면적 무상급식 대 단계적 무상급식, MB 대 반MB의 구도도 희석된 점도 나경원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가장 큰 문제는 초반에 탄약 소비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네거티브 전술은 적절히 치고 빠지면 선거전에서 큰 역할을 발휘하지만 심하면 역풍을 불러일으킨다. 벌써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박원순 후보 측에서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네거티브 맞불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표일 직전까지 방어에 급급한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더욱 암울한 것은 한나라당에게 선거 이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선거 전 범보수단일후보에 관한 논란과 내년 3월에 신당창당을 하겠다고 공언하는 윤여준 전 장관, 그리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배일도 후보의 존재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보수신당의 창당과 이로 인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부담으로 안고 있어야 한다.

최근 이재오 전 장관은 청와대의 내곡동 사저 문제 등에 대해 청와대 전면 개편론을 들고 나왔는데, 이 발언은 이재오 전 장관이 매우 오랫만에 중앙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을 던진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전면 개편'이라는 것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거취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해묵은 파워게임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나라당 내부의 혼란상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가 패배하고, 이로 인해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이 꺾이고, 수도권 친이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합집산이 시작되면 엄청난 태풍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면 야권의 미래는 어떤가?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야권 전체를 통합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밖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는 '혁신과 통합' 등의 세력이 이런 주장을 펴기 시작할 텐데 이런 기획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노동당의 행보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 중심의 선대위 구성에 반발하며 박원순 후보 캠프에서 이탈한 바 있다. 이는 물론 말 그대로 선대위 구성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큰 그림의 차원에서 야권 전체를 통합하는 기획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또 하나의 단서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남겼다. 유시민 대표는 선거 초반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후 통합신당 창당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합신당 창당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망 자체가 시기상조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고 가정하고, 또한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총선 전에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 합류하는 형태의 대통합신당은 창당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총선에서는 선거연합을 통해 소위 진보세력의 파이를 충분히 보장하고 반대급부로 대선에서 단일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인데, 또 이렇게 되면 진보신당을 탈당한 상태인 노회찬, 심상정 등의 통합연대 그룹은 스텝이 꼬이게 된다.

풀기 어려운 매듭은 그냥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이 해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칼을 누가 쥐느냐를 놓고 또 왈가왈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여권이나 야권이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후에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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