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장애인 딸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비판여론에 대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비장애인 자녀가 언론에 노출될 때는 긍정적인 주목을 받지만, 장애인 자녀가 노출되면 비판이 제기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력 후보자가 선거를 앞두고 예능에 출연한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나 전 의원은 21일 한국일보 논설위원 인터뷰 '논담'에서 TV조선 '아내의 맛' 출연으로 '예능 정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 "저도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다. 그동안 여러 번 섭외가 있었는데 안 했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앞서 예능출연 이유에 대해 "딸이 한 번 해보자 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1월 21일 한국일보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인터뷰 영상 갈무리

나 전 의원은 장애인 딸을 노출시키는 데 대한 비판과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안 된 것"이라며 "유승민 전 의원의 딸은 나오니까 굉장히 반응이 좋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그런 것 아닌가. 장애인 딸이라고 응원 안 하고 싶은 건 아니다"라며 "그런데 비장애인 자녀가 나왔을 때는 '예쁘다', '어떤 딸이다' 엄청 뉴스가 된다. (장애인 딸을)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내의 맛' 출연으로 호감도가 높아진 것 같다는 질문엔 "본모습이 호감도가 높으니 다행이다. 본모습이 비호감도가 높으면 그건 방법이 없지 않나"라고 했다.

TV조선 '아내의 맛'에는 지난 5일과 12일, 각각 나 전 의원과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출연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방송 이후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예능출연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예능 정치', '정치의 예능화'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한국일보는 14일 기자칼럼 <관찰예능의 위험한 행보>에서 "사실상의 사전선거운동, 홍보 방송이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며 "선거를 앞둔 한창 민감한 시기 빚어진 이번 잡음은 방송의 중립성에 대한 중요성도 다시 환기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물론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선거를 앞둔 미묘한 방송 시점"이라며 "또 유력 정치인과 관찰예능의 만남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 출연자의 인간적 매력을 어필하는 리얼리티 특성상 이미지 미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방송에서 노출된 남편과 아들, 딸과 화목하게 보내는 일상의 모습은 그간 가족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됐던 문제들을 희석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따뜻함’으로 포장된 방송에서 그 저의가 읽혀질 정도"라고 혹평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16일 한겨레 <'세수 오프닝' 나경원, 딸과 탬버린 장단… 정치의 예능화 '쓴맛'>에서 "나경원 편은 모든 논란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하나하나 격파하도록 정교하게 구성된 극영화적 텍스트로 보인다"고 했다.

황 평론가는 정치인의 관찰예능 출연으로 인해 '정치의 예능화'가 가속화된다고 우려했다. 황 평론가는 "리얼리티 관찰 예능은 시사토크쇼보다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하나는 의제나 정책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오직 정치인 개인의 매력에 치중하게 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영상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편집된 화면을 ‘있는 그대로’인 양 믿어버리기 쉽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에 대한 호불호만 남아 팬클럽 정치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문화일보 김인구 문화부 차장은 11일 칼럼 <TV예능과 정치인 들러리>에서 "이런 인간적인 모습 뒤에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관찰 예능에도 작가가 쓴 대본은 있고, 프로그램의 성격상 출연자의 이미지는 결국 긍정적으로 포장되기 마련"이라며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행여 실수하더라도 얼마든지 추후 편집이 가능하다.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때만 되면 불쑥 예능에 얼굴을 내미는 정치인은 이제 사절한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예능 스케줄 잡을 시간에 나라를 위해 뭘 해야 할지 더 깊이 연구하길…. 그게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국민 앞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꼬집었다.

(사진=TV조선 '아내의 맛')

조수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9일 YTN '열린라디오'에서 "남성정치인은 교양프로그램에 여성정치인은 예능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은 것으로 나온다"며 "가볍고 편한 내용을 제공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남성정치인보다 여성정치인의 부드러움이 시청자 태도에 높은 전이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여성정치인의 조합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KCI에 등재된 'TV방송을 통한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인의 성별과 출연방송프로그램에 따른 시청자 반응'(진용주 외, 2013)이라는 논문은 "일반시청자들이 음악,예술, 오락, 재미 요소로서 문화적 소양과 즐거움을 주는 예능방송프로에서 여성정치인의 메시지를 남성정치인보다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진지함보다 가볍고 편한 내용을 제공하는 오락성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남성정치인의 딱딱함보다는 여성정치인의 부드러움이 시청자태도에 높은 전이효과를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에서는 남성·여성정치인 모두 뉴스보다 교양·예능 출연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긍정적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일 전 90일부터 후보자는 출판기념회 개최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집회 참석 등이 금지된다. 방송·신문·광고에 출연할 수도 없다. 다만 재·보궐선거는 예외규정이 적용돼 '60일 전' 기준이 적용된다. 두 인물의 이번 '아내의 맛' 출연이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에 따르면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방송 및 보도, 토론 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 출연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보궐선거는 선거일 60일 전에 방송심의위원회를 구성하게 돼 있어 심의 대상을 교묘하게 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대변인은 "신인 정치인도 아니고 알만한 것은 다 아는 정치인들이 법의 허술한 틈을 타 예능 방송 출연을 빙자한 사전 선거운동은 꼼수"라며 "법의 허점을 이용해 종편 예능 프로그램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사전 선거운동의 장으로 악용하고 있는 편법 방송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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