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는 금권정치의 전형이다. 그 큰 뿌리는 군벌독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칼로 정권을 찬탈했지만 국민적 지지가 취약했다. 관권선거만으로는 표를 끌어 모으기 힘들었다. 청와대가 앞장서고 집권당이 나서 재벌한테서 돈을 뜯어서 뿌려 의석을 사들였다. 그래서 다수당이 되어 정권을 유지했다. 야당도 욕하며 그 수법을 배워 재벌한테 돈을 걷고 공천장사를 해서 떼돈을 주물렀다. 더러는 주머니도 두둑하게 챙겼을 것이다. 이것은 도둑의 무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도당정치(盜黨政治-kleptocracy)다.

지역연고에 기반을 둔 3김정치는 계파정치의 전형이었다. 기업한테 뜯은 돈으로 졸개를 거느리고 치부도 했을 터이다. 가신이니 실세니 하는 따위들이 돈의 향연을 벌이느라 영일이 없었다. 3김이 무대 뒤로 퇴장했지만 그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다. 가방떼기, 상자떼기도 모자라 차떼기까지 등장했다. 뒤탈이 나서 숱하게 쇠고랑을 찼지만 잠깐이었다. 대통령이 같은 통속인지 사면권을 동원해 죄값도 벗겨준다. 국회를 교도소 친목회처럼 만들면서 말이다.

▲ 한국일보 3월14일자 4면.
노무현 심판론이 한나라당에 압승을 내렸다. 그의 잣은 실언, 설화가 묻지마 표를 무더기로 안겨준 것이다. 10년 집권세력을 자멸의 길로 몰아쳤다. 4월 총선에서는 개헌선인 2/3 의석을 장담할 기세였다. 벼락 승리에 도취하여 권력중독에 빠졌나보다. 보수=부자, 보수=수구를 연출하자 국민의 눈빛이 싸늘해 졌다. 의석 빠지는 소리가 갈수록 커지나 헛생각 탓인지 헛발질이 이어진다. 총선참패라는 어두운 절망감에 휩싸인 통합민주당에 서광이 비치려나 하는 참에 변호사 박재승이 나타났다.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그는 그의 말마따나 정치에 문외한인가보다. 무턱대고 형사처벌을 받은 인사들을 도려냈으니 말이다. 공천심사마저 아예 배제된 인사들이야 말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위세를 떨치던 실세였다. DJ의 아들, 바른팔을 자르겠다니 당지도부가 화들짝할 수 밖에…. 처음에는 설마하다 정치란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도 하고 설득, 회유도 했던 모양이다. 무언의 위협도 압박도 있었을 터이나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놀랄 거리가 없다. 그런데 국민들은 정치성향을 떠나서 열광하고 환호한다. 그는 다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할 뿐이다. 국민들이 오랫동안 정치행태를 지켜보며 하고 싶었던 말을 그가 하는 셈이다. 어제까지도 교도소를 들락거리더니 그들이 부끄럼도 모르고 다시 의사당에 서겠노라니 분노가 치밀려 올랐을 것이다. 범법자 추방….지난 세월 무수하게 떠들었지만 메아리 없는 허언이 되고 말았다.

박 변호사의 흔들림 없는 원칙이 그것을 일구내고 있다. 한나라당에도 맞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피 묻은 칼날에 영광이 있기를…. 이것은 국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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