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11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임원 선거가 14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진다. 오정훈 현 언론노조 위원장과 윤창현 언론노조SBS본부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공식 선거운동은 18일 시작됐다.

윤창현 후보자는 세 차례 언론노조 SBS본부장을 역임했다. 그가 이끄는 동안 SBS본부는 방송사 처음으로 ‘사장임명동의제’를 관철했으며 민영방송 내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세우기 위한 ‘RESET SBS 투쟁’을 전개했다.

여러 차례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왜 경선을 무릅쓰고 언론노조 차기 위원장에 도전하는지 물었다. 윤창현 후보자는 “촛불 혁명 이후 언론노조에 기억 남는 성명이 있었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언론노조에 답답함을 느낀다”며 “목소리 낼 때 내고 뭐라도 해내는 조직력이 강한 언론노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윤 후보자를 만나 도전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사진=윤창현 후보자 제공)

Q. 2016년부터 SBS 노조 위원장을 3번 연임했다

SBS 노조 투쟁에 일정한 연속성이 필요했다. 2016년 4월 위원장이 됐을 때 SBS는 보도의 공공성, 공정성, 신뢰가 무너져 있었다. 보도국에 앉아 하루하루 뉴스를 보는 게 괴로웠다. 노조에 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위원장 자리에 올라왔는데 예상치 못한 변화로 촛불 혁명이 번졌고 시민들은 방송노동자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줬다. SBS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양대 공영방송이 5년짜리 정치권력에 휘둘렸다면 SBS는 임기의 끝을 알 수 없는 자본권력에 휘둘려왔다. 이를 차단하는 게 시민들이 SBS에 준 숙제라고 생각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말로만 외치는 대주주 전횡을 제도적으로 끊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5년간 SBS 노조 위원장으로서 이뤄낸 성과와 아쉬운 점은 없는지

'RESET SBS' 투쟁을 벌이며 소유-경영 분리를 이뤄냈고, 방송사 처음으로 ‘사장임명동의제’를 얻어냈다. 1년여의 수익구조 정상화 투쟁을 통해 SBS 외부로 유출되는 방송수익을 콘텐츠에 집중하게 했다. 신뢰 위기와 구조의 위기, 두 축을 해소했다. 지난해 방통위가 SBS에 부여한 재허가 조건들은 노조가 끊임없이 싸워 얻어낸 것이다. 대주주에게 콘텐츠 투자를 의무화하고, 대주주에게 유리한 보도행위를 금지한 건 대단한 성과다. 노조의 목소리가 이토록 크게 반영된 적이 있나 싶다.

윤석민 회장 취임 이후 무력화된 노조추천 사외이사 역할을 회복시키는 게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조합원들이 긴 싸움에 지친 것 같다. 죄송스럽지만 필연적으로 해야 할 싸움이었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Q. 언론노조 11대 위원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가 궁금하다

극에 달한 ‘언론 불신’, ‘언론 혐오’ 속에서 언론노조가 제 역할을 못 했다. 언론이 문제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는 많지만, 언론 전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지 정교하게 드러내서 멀쩡한 언론인들을 폄훼하고 공격하는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언론노조의 역할이 대단히 미약했다고 본다.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는 알지만, 우리에겐 이를 넘어 지켜야 할 저널리즘 원칙이 있고 역사가 있다. 이에 입각해 엄정하게 평가할 부분은 평가하고, 아니다 싶은 건 가려내며 가르마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언론노조가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각종 언론현안에 대해 얼마나 목소리를 냈나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성명이 없다. 언론노조가 좌고우면하고 발언권이 약해지다 보니 사회적 설득력도 잃어가고 있다. 목소리를 낼 때 내지 않아서다.

Q. 언론노조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 때는 언제였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 찬성 혹은 반대할 수 있다. 제 기억에는 작년 상반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의된 이후 언론노조 내부에서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집행할 내용이 없고 대응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기대했던 언론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 혁명 이후 다수의 언론노조 구성원들은 우리의 주요 과제가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언론노조가 명확한 원칙을 갖고 말해야 하는데 움츠리고 말을 안 하니 메시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언론노조의 목소리가 없으니 언론개혁 이슈와 관련해 본말이 전도된 논의만 이뤄지고 있다. 답답함을 느낀다.

Q. 차기 집행부가 출범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문재인 정부 말기 차기 언론노조 집행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상유지 정책으로는 안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시급하게 전개할 것이다. 우선 대선 국면에서 언론노조의 진보개혁노선을 확실히 되찾아야 한다. 언론노조는 언론인들의 노동조합인 동시에 지난 30년간 진보개혁노선을 선명히 유지해왔다. 초심으로 돌아가 노선을 확실히 정하고, 언론노조의 입장을 알려야 한다.

2009년 미디어법 파동 당시 민주당은 80석이 채 안 됐다. 당시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한 싸움에 이길 거로 생각한 이가 몇이나 있었나. 하지만 언론노조는 이길 뻔했다. 언론노조의 정치력과 정무적 판단, 돌파력이 극대화됐기에 가능했다. 같은 세력이 180석을 장악했는데 언론개혁이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 민주당만 탓할 수 있는가. 언론노조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현업 언론인 생활을 오래 하고 지난 5년간 SBS본부에서 여러 국면을 돌파해본 경험이 언론노조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출마사에서 ‘변화’를 강조했다

코로나 위기, 미디어 격변의 시대에 조합원들이 겁에 질려있는 게 느껴진다. 업종을 불문하고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언론노조 내부에서 신문·방송 경계를 그어 반쪽짜리 이익을 취해보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언론노조가 살길은 언론노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이다. 현재 언론노조의 메시지 관리 능력은 언론노조 출범 이후 가장 좋지 않다. 이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언론노조가 주장해온 개혁의 구호가 지금도 유효한지, 어떤 것들을 지키고 말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Q. 출마사에서 ‘닥치고 언론개혁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언론개혁을 외칠 때는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선 흐트러진 논의들을 재정비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언론개혁의 핵심은 권력이 언론에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도적 진전이 없다. 정필모 의원이 발의한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이 뽑게 하자’는 법안은 언론개혁 투쟁 중에 목숨을 잃은 이용마 동지의 유지다. 왜 언론노조는 이 이야기를 더 강하게 하지 않는가. 왜 민주당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나. 즉시 할 수 있는 싸움이라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 더는 늦출 수 없다. 속도를 올리려면 리더십의 교체가 필요하다. 현상유지가 아닌 강력한 엔진을 갈아끼워야 한다. 리더십마다 각자에게 맞는 시기와 역할이 있다고 본다.

Q.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반년 가까이 차기 노조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 중요한 건 무엇인가

최근 조합별로 각자도생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언론개혁의 거대한 이슈가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다 보니 각자 먹고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거다. 언론노조가 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언론노조의 조직력이 굉장히 강해져야 하고, 이는 정책 논의를 통해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할 저널리즘 정책이 무엇인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논쟁 없는 정책이 있을 수 없고 정책 기반 없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현장에 상당수 조합원이 코로나 위기로 무급휴직을 포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손 놓고 바라만 보진 않을 거다. 뭐라도 하겠다.

Q. 지상파의 위기 속에서 언론노조의 역할은

지금까지는 줄어드는 정부 기금을 어떻게 지켜낼지, 비대칭 규제는 어떻게 해소할지를 논의해왔다.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공약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점 재조정이 필요하다. 전체 파이를 키워 미디어 산업 시장에 자본의 활력을 제공할 방안들을 모색하고자 한다.

Q. 언론사 비정규직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지상파 재허가 조건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명시됐다.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언론노조는 인식 재고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개혁 이슈를 중심으로 잡아가야 한다. 방송사들이 방통위에 내놓을 대안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강제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관련 이슈들이 전향적으로 풀리도록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 노동의 가치를 보장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처우개선’은 ‘차별은 당연하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하는 게 왜 처우 개선이냐. 목표는 ‘비정규직 철폐’여야 한다. 방송사에 직접고용에 대한 페이백을 준다든가,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의무를 완화해주는 등 여러 가지 발칙한 대안을 제안할 수 있다. SBS본부는 임금 차별을 받아온 ‘능력급 제도’를 사실상 호봉제로 전환하는 등 성과를 이룬 바 있다.

Q. 지역 언론사들은 소멸 위기다

언론노조의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고민해왔고 러닝메이트로 부산일보 전 지부장이자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의장을 지낸 전대식 동지를 설득했다. 추후 공약 사항으로 자세히 제시하겠지만,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갈 거다. 정부에서 나눠주는 발전기금을 가지고 나눠 갖는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겠다.

Q. 14년 만에 경선이다. 부담은 없는지

부담이 왜 없겠나. 다만 언론이 처한 현실이 너무 무겁고 그 길을 위태롭게 가는 현실이 경선보다 더 무겁다. 고민의 지평을 넓히고 같이 고민해나가는 언론노조가 되면 좋겠다. 언론노조는 조합원들의 피 같은 조합비로 운영되는 조직이니 만큼, 의미 있는 변화를 언론노조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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