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관장 사퇴협박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연일 KBS 사장을 비롯한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언론재단 이사장 등 언론 관련 기관장들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좌파적출론’,‘원활한 국정운영론’을 앞세우며, 지난 1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 대표가 포문을 열고 이어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거들고 청와대가 지원하는 형세로 압박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른바 ‘동조중’ 보수신문들이 가세하고 나섰다. 아주 노골적이다. 몇몇 기관장에게는 청와대 업무 보고에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은 해당 기관장들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도대체 지금 청와대 담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좌파세력 적출론’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참여 정부에서 임명받았기 때문에 좌파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이 막연히 거부감을 갖는 좌파라는 용어를 참여 정부 및 이들 단체장들에게 덧씌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좌파라고 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라! 설사 좌파라고 해도 그렇다. 이렇게 민주화가 진전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좌파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 후진국에서나 나올 말이다.

이른바 ‘원활한 국정 운영론’은 어떤가?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 야권이나 시민단체 측, 그리고 일부 언론의 발목잡기 때문이라고 인식하는 듯한데, 한참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덮어씌우기이다. 인수위 활동시절이나 새 정부 출범 후 내각과 청와대 비서관 인선 과정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몰상식과 오만함의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른바 ‘동조중’이 모른척하고 애써 변명해 주고 있지만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참여 정부 때는 코드 인사라며 그렇게도 날을 세워 비난하더니 입장이 바뀌자 자기들도 코드 인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다. 완벽한 자기모순이다. 그들이 과거 코드 인사라고 규탄했던 발언들이 지금 인터넷에 가면 널려 있다. 국민을 뭘로 아는 것인가?

더구나 언론 기관이나 관련 기관의 장을 향해 사퇴 압력을 넣는 것은 권력의 언론탄압에 다름아니다. KBS 사장은 공영방송의 수장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물러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신문발전위원장, 신문유통원장 등의 자리는 모두 언론 관련 기관의 대표들이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언론사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의 장이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이들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해당 기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것은 마치 5공식 언론통제에 다름 아니다. 분명 이는 언론 장악 의도로 받아 들여 질 수 밖에 없다.

법적으로 보장하는 임기제가 아닌가? 임기제 직위는 직무의 독립성·공정성 및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헌법 또는 개별 법률에 의하여 일정기간 동안 임기와 신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임기제는 정착돼 가고 있는 중이다. 집권 초기 임기제 공공기관 임원의 교체율이 53%, 51%, 10%로 낮아져 온 것이다. 법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에서 만든 것이다. 그 법의 취지와 법 자체를 준수하라. 다시 말해 그들의 임기는 국민이 보장해 준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대해 법과 절차를 무시해도 좋다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면 오산이다. 국민은 권력을 5년동안 빌려주기로 했을 뿐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이들에 대한 부당한 사퇴 압력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권력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법과 국민보다 위에 있을 순 없다.

2008년 3월 17일
한국방송인총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한국방송카메라감독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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