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규제를 대폭 완화한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공공성 담보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며 유예를 주장했다. 민언련은 방송광고규제 패러다임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오락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을 높이는 등의 정책이 미디어의 공적 책무 외면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언련은 14일 비대면 긴급간담회를 개최하고 방통위 방송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서중 민언련 상임대표는 "5기 방통위 비전과 정책과제를 보면서 방향설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면서 "방송산업 활성화가 시민들에게 어떤 공공성을 가져다주는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대표는 "비대칭 규제 해소나 협찬제도 개선, 외주제작 시장 공정경쟁 환경 조성, 노동환경 개선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비대칭 규제 해소의 목적이 시민 불편함을 줄이는 방식에 있는지, 사업자의 이익을 강화하는데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방통위가 어떤 미디어상황을 그리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4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에 대한 비대면 긴급간담회를 개최했다.

방통위는 13일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방안을 발표했다. 중간광고 전면 허용, 방송광고 '네거티브 규제' 원칙, 방송광고판매제도(미디어렙 제도) 개선, 협찬규제 강화, 편성규제 최소화 등의 내용으로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비대칭 규제 해소가 방점이다.

방통위 정책방안에 지상파가 회원사로 속해있는 한국방송협회(회장 박성제 MBC 사장)은 낡은 비대칭 규제를 해소해 방송산업 정상화의 첫 단추를 뀄다는 환영입장을 밝힌 반면, 민언련은 시청자 권익과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도가 주변부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장 논란이 집중되는 사안은 중간광고 전면 허용 등 방송광고 규제 완화다. 정연우 민언련 이사(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미디어 환경변화로 일정부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중간광고 허용이나 광고총량을 늘리는 것은 시청권 침해 우려가 있어 유료방송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비대칭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 가장 우려하는 건 방송광고 전반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 분야에 열거된 광고 유형만 허용하는 기존 포지티브 규제 방식 대신 금지되는 광고 유형 외에는 우선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이사는 "그동안 새로운 광고형식을 도입하거나 규제를 완화할 때에는 수많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왔지만 앞으로는 사업자 재량에 맡겨진다"며 "사실상 공적규제를 거의 해체하는 수준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이사는 홈쇼핑 연계판매와 음지화된 방송협찬의 폐해를 지적하며 "사후규제는 편법으로 규제를 빠져나가려는 사업자를 제재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공공성 유지라는 큰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 허용범위를 확대, 프로그램 제목에 광고주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라디오 방송진행자가 방송 중 광고내용을 언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이사는 "프로그램 내용과 포맷이 광고주 영향력 아래 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프로그램을 통째로 광고주에게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유튜브 브랜디드 콘텐츠, 신문의 기사형 광고와 같은 형태로 방송프로그램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미디어렙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예고했다. 미디어렙 제도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사의 광고 직접영업을 금지하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방통위는 직접영업 가능성을 열어둔 제도 개편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정 이사는 방통위가 오히려 방송사가 미디어렙을 소유하도록 한 현행 미디어렙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방송사의 '자사 미디어렙'이 광고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정 이사는 "방송광고판매제도 재검토의 방향이 방송사의 (미디어렙에 대한)영향력이나 소유·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진다면 직접영업 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방송사의 미디어렙 소유를 어떻게 규제하고 공공성을 해치지 않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수경 민언련 정책위원(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는 방통위의 편성규제 완화를 비판했다. 방통위는 편성규제를 최소한도로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 50% 이하를 60% 이하로 변경된다. 정 위원은 "방송법은 제정 당시부터 보도·교양·오락 등 세 영역이 조화를 이루도록 규정했다"며 "58년만에 이를 바꾼다는 것은 공영방송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방송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지금도 하이브리드(장르 간 혼합) 프로그램이 많아 오락프로그램은 50%를 상회한다. 교양물은 10%대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공익적 콘텐츠 보호 빗장을 스스로 여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교양과 오락 프로그램 간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고, 오락 프로그램이 한류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을 규제 완화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정 위원은 한류의 특성상 오락 편성규제 완화가 한류콘텐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위원은 "해외에서 한국콘텐츠의 오리지널리티로 간주하는 건 가족과 이웃관계를 강조한 휴머니즘이다. 그래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에 질려 있는 미국·유럽 시청자들에게 소구하는 것"이라며 "시청률 경쟁과 광고 유치에 매몰돼 공익적 섹터를 잃게 되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편성규제는)방송종사자들이 공익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긴장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중심추"라고 강조했다.

최은경 민언련 정책위원(전남과학대 E스포츠과 교수)은 5기 방통위의 이용자권익 보호 정책이 민원시스템 정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디지털 포용사회 구축'을 위한 정책으로 기존에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기관별로 이송·처리됐던 민원 시스템을 대표전화로 통일하기로 했다. 시청각장애인의 방송시청 등을 지원하기 위한 가칭 '시청각장애인 미디어접근권 보장 지원법' 제정을 내년부터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 위원은 "방통위가 해오던 사업의 연장선일 뿐 이번 방통위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이용자중심 정책을 펴겠다는 것인지 내용이 많이 빠져 있다"며 "민원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했지만 불편을 제기하기도 어려운 소외계층에 대한 개선책은 빠져 있다.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보편적 접근권 이야기로 확대되어야 하지만 지엽적인 정책들 뿐"이라고 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간담회 플로어에서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방통위 '방송시장 활성화 방안'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공·민영 방송사업자의 오래된 규제완화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했다는 사실보다 지상파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을 먼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요컨대 달라진 미디어 환경, 지역 불균형 발전에 걸맞는 지상파 공공성을 구체화한 후 시장개입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라고 총평했다.

김 강사는 "방통위가 생각하는 공공성은 재난방송이나 지역 공동체 미디어 활성화만으로 좁혀져서는 안될 것"이라며 "시민사회로부터 방송 콘텐츠, 플랫폼 정책 등을 포함하여 공적 책무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영길 민언련 정책위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패러다임 전환이 아니라 과거 패러다임의 강화 또는 유지다. 방송시장을 위해 규제가 완화되지 않은 적이 있나"라며 "무엇을 통해서 방송 공공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차후 하겠으니 물적토대 제공해달라는 건 방송사가 해서는 안되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김서중 상임대표는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수렴했는지, 더 나아가 주권자로서의 시민의견을 수렴했는지 의문"이라며 "방통위 정책과제 중 핵심적 사안의 일부는 졸속 정책으로 보여 유예해주길 바란다. 시민의견을 반영한 형태의 정책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13일 정책방안을 발표하면서 "방송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그 속에서 공적가치를 지키고 산업의 활력을 높이는 것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같은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방통위 정책방향은 공적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활력 제고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에 따른 방송의 공적책무 약화 우려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전문가, 관련 업계와 앞으로도 소통하면서 지속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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