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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해석의 새 지평 연 ‘뤼팽’, 흑인이민자 소년은 어떻게 뤼팽으로 거듭났나[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1.12 16:31

[미디어스=이정희]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은 탐정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계의 '반전'이다. 범인이 주인공이 되어 그를 잡으려는 경찰을 희롱하며, 권력자들과 부호들을 농락하는 이야기는 <셜록 홈즈>로 대변되는 정의의 서사의 ‘맞은편’에서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며 추리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는 시즌을 거듭해 인기를 끌며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베치에게 명성을 선사해 왔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며 <기암성>에서 셜록 홈즈와 비극적 대결 구도를 그렸던 <괴도 뤼팽>의 현대적 해석이 기대되는 상황, 넷플릭스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 절묘한 서사를 통해 5부작으로 재해석해낸다. 

<괴도 뤼팽>의 첫 작품은 <왕비의 목걸이>이다. 1874년 태어난 뤼팽은 부모가 헤어진 바람에 어머니 앙리에트와 함께 드뢰-수비즈 백작 부부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백작 부부로 인해 갖은 수모를 겪게 되는데, 뤼팽은 이런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백작 부부의 가장 아끼는 보물인 마리 앙트와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며 '괴도'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 프랑스의 사회적 모순 담은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은 바로 이 <왕비의 목걸이>를 모티브로 오늘날 프랑스, 아니 유럽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갈등의 고리로 엮는다. 세네갈에서 유럽으로 온 아산 부자, 아산의 아버지는 재벌 펠레그레니 집에서 운전사로 일하게 된다. 

비 오는 날 차 시동이 꺼져 고충을 겪던 펠레그레니의 아내, 그 차에 다가가 도움을 주겠다는 아산의 아버지. 하지만 펠레그레니의 아내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협을 느끼며 차문을 잠근다. 이 장면은 이민자인 아산 부자를 대하는 당시 프랑스의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난한 이민자지만 아산의 아버지는 성실했고 어린 아산에게 학구열을 독려한다. 하지만 운전사로 일하며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려 했던 아산 부자의 열망은, 펠레그레니 집안에서 사라진 왕비의 목걸이를 훔친 범인으로 아산의 아버지가 지목됨으로써 무너진다. 증거가 불충분했지만 가진 것 없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죄를 추궁당한다. 결국 펠레그레니에게 농락당한 것을 알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홀로 남은 아산은 복지원으로 가야만 했다. 

25년의 시간이 흘러, 아산의 아버지가 훔쳤다던 그 목걸이가 다시 펠레그레니 집안에서 등장하고 펠레그레니 재단 창립기금 마련 목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경매에 붙여진다. 그리고 25년 만에 나타난 아산(오마르 사이 분)은 유유히 그 목걸이를 훔친 채 사라진다. 자기 어머니가 당한 수모를 되갚기 위해 목걸이를 훔친 <괴도 뤼팽> 첫 번째 작품의 오마주이다. 

​​​​​​​아버지의 유지,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 [넷플릭스 제공]

5개 이야기로 이어진 <뤼팽>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한 아산의 신출귀몰 모험담이다. 세네갈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아산은 흑인 이민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뤼팽 속 스토리를 활용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뤼팽>인 이유는 그저 <괴도 뤼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서사 때문만이 아니다. 세네갈에서 온, 이제는 고아가 된 소년 아산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책이 바로 <괴도 뤼팽>이었다. 그리고 <괴도 뤼팽>은 감옥에서 죽어간 아버지가 아산에게 남긴 메시지북이기도 하다. 

복지원에서 사립학교로 이어진 학창시절 성경 사이에 아버지가 남긴 <괴도 뤼팽>을 끼워 아산은 읽고 또 읽으며 '뤼팽'으로서 거듭났다. 그렇다면 뤼팽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뒷골목 건달들과 한탕을 위해 루브르 경매에 나온 목걸이를 훔치는 것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그 모든 계획은 경매장에 신흥 갑부로 등장한 아산이 여유롭게 목걸이를 훔쳐내기 위한 페이크 작전이었다. 

도둑이지만 때로는 홈즈보다도 더 정의로워 보였던 ‘의적’인 <괴도 뤼팽>의 설정처럼 <뤼팽>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기본 설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거기에 한 편의 마술처럼 알고 보니 뤼팽의 ‘큰 그림’이었다는 식의 서사가 <뤼팽>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괴도 뤼팽> 속 뤼팽처럼 분장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극단의 상황에서도 위험을 돌파해내는 기지로 아산은 뤼팽이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 [넷플릭스 제공]

루브르 박물관에서 훔친 목걸이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펠레그레니에게 통쾌한 복수를 선사한 아산은 이어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쫓는다. 남의 주머니를 슬쩍 터는 건 기본, 말 몇 마디로 경찰을 따돌리고, 자산가의 보물을 한 손에 쥐는가 하면, 진실을 찾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가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또한 무기거래로 부를 축적한 펠레그레니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전직 기자와 손을 잡고 SNS를 비롯한 방송 출연이라는 첨단의 '폭로' 전술을 쓰는가 하면, 펠레그레니와 손잡고 그의 아버지를 잡아간 당시 형사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인공지능 홈 IOT는 물론 드론을 활용하는 등 ‘아산 버전’ 뤼팽은 현대문물 사용의 귀재가 되어 법망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 <인크레더블 헐크>의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이 연출을 맡은 <뤼팽>은 이미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고전해석의 새 지평을 열며 시즌2를 기약한다.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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