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출산을 한 번 하고 나잖아요, 여자로서의 삶이 다 끝날 때”(공영홈쇼핑), “엄마가 이뻤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늙었으면 좋겠어요?”(NS홈쇼핑)

홈쇼핑 방송에 등장하는 발언이다. 이로 인해 중장년 여성의 외모 변화가 비하되거나 여성은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해야 한다는 등의 외모지상주의와 성별 고정관념이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YWCA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지난해 9월 7일부터 17일까지 7개 홈쇼핑 채널 (GS홈쇼핑,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NS홈쇼핑, 공영홈쇼핑, 홈앤쇼핑) 각각에 대해 10시간 분량의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모니터링한 결과, 성별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사례 10건(58.8%), 외모 평가 7건(41.2%) 등 17건의 성차별적 사례가 집계됐다.

위에 두 화면은 현대홈쇼핑, 공영홈쇼핑의 성 역할 고정관념 강화 사례, 아래 두 화면은 공영홈쇼핑 방송 장면으로 여성의 외모평가에 치중한 사례 (자료제공=서울YWCA)

중년 이상 여성의 외모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관리 부족에서 비롯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발언들이 다수 발견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사한 사례로 2019년 현대홈쇼핑과 홈앤쇼핑에 대해 행정지도 ‘권고’ 처분을 결정한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내가 고생한 티를 내는 것 같고, 관리를 너무 안 하고 산 사람 같고, 나를 갖다가 그냥 ‘아휴 몰라 될 대로 돼라’고 산 느낌이에요”(현대홈쇼핑), “저는요 커버가 아니면 민낯으로 절대 밖을 안 나가는 여자였어요, 칙칙하게 다니지 않았을 거”(홈앤쇼핑) 등의 발언이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고정관념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나이듦을 ‘관리 부족’으로 비하한 사례들이 지적됐다. 공영홈쇼핑은 태반영양 화장품을 판매하며 “여자로서의 삶이 점점 끝나간다고 느껴요”, “내 몸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 늙어가고 있다”, “내가 여자로서의 삶이 끝나 간다고 생각할 때”, “출산을 한 번 하고 나잖아요...확 하고 무너지는 느낌...여자로서의 삶이 다 끝날 때” 등의 표현으로 여성의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다뤘다.

NS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은 석류 콜라겐을 판매하며 “구겨진 종이처럼 내 얼굴이 핼쑥해진 것 같기도 하고...그러려니 하면 늙더라고요. 내려놓지 마세요”, “딸들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이뻤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늙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울YWCA는 “이러한 발언을 통해 나이가 들더라도 여성에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여성의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관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청바지 판매에서도 기능보다 외모가 중시됐다. 공영홈쇼핑 여성 쇼호스트가 “살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날씬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나는 날에는 입으시면 된다”고 말하면, 남성 쇼호스트는 “여성분들은 편하다고만 해서 입는 거 아니라 라인 잡아 줘야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서울YWCA는 “여성들에게 특정한 몸의 기준을 강요하며, 여성들은 옷의 기능과 편함보다는 외양을 중시한다는 편견을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획일적 외모 기준으로 여성을 묘사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여성을 무가치하게 판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NS홈쇼핑의 의료기기 광고 한 장면

성차별적 사례 중에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가사는 여성의 몫으로, 경제 활동 주체는 남성의 몫으로 그려내는 식이다. NS홈쇼핑은 관절 치료기를 판매하며 남성은 골프 등의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고 여성은 가사 일을 하며 관절에 무리가 가는 상황을 묘사했다. 또한 모델 중 육아 및 가사에 종사하거나 다른 사람을 챙기는 사람은 모두 여성(총 13명)인 반면, 돈 버는 역할은 남성 58명(64.4%), 여성 32명(35.6%)이었다. 대부분 요리는 여성 쇼호스트가, 시식은 남성 쇼호트가 담당했다.

서울YWCA는 “성별 고정관념을 반복적으로 미디어가 제시하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에 영향을 받게 되고, 이는 개인이 성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며 “학계에서는 여성이 특정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을 ‘미묘한 성차별’이라고 부른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홈쇼핑 업계 스스로 전통적 성역할을 차별로 인지하는 청년 세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산업의 전략에서 유효할 것인지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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