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다수 언론이 피해아동 실명을 밝히며 '정인이 사건'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운동이 크게 일고 있고, 입양 피해아동 사망으로 2차 피해 우려가 적어 실명보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명 등 개인정보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SNS 상에서는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언론이 여론에 편승해 '정인이'라는 실명이나 가해자의 학대행위에 기댄 보도를 하기보다는, 피해아동의 죽음을 막지 못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저널리즘적 접근을 이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피해아동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아동 학대·사망 사건의 전말이 자세히 드러나면서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목은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망사건을 막지못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에 쏠린다. 양부모의 상습적 학대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경찰이 세 차례의 신고에도 사건을 내사종결·혐의없음 처리한 사실이 알려졌다.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운동 확산이 보여주듯 '그것이 알고싶다'가 피해아동의 이름과 얼굴사진을 공개한 것은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 직후 다수 언론은 '정인이', '정인이 사건' 등의 표현을 통해 사건, 시민·연예계·정치권의 추모 물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 등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이전까지 같은 사건을 두고 A양, ㄱ양 등으로 표기해왔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지난해 10월 13일 아이가 숨지고, 입양모 장 모씨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알려진 사건이 3개월여 만에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반면 사건을 '정인이 사건'으로 명명·규정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 이름을 딴 사건 명칭의 규정은 사건의 본질과 가해자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규정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네티즌 반응을 살펴보면 '왜 사건이름은 또 정인이 사건이냐', '캠페인은 캠페인이고 이렇게 피해자 이름만 덩그러니 남을 때마다 바윗돌에 가슴이 깔린 것 같다', '언제쯤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이름을 정할 건가' 등의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아동학대처벌법 35조(비밀엄수 등의 의무)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수사기관, 언론 등에 사건관계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일체의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보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해아동 신원이 특정돼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련 언론보도 가이드라인(보건복지부 아동학대사건 보도 권고 기준 등)에서도 피해아동 신상정보 노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같은 보도양상에 대해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대안제시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지금의 과잉보도는 소비에 그친다"며 "피해아동 실명과 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쓰고 있지만 이 인간이 어떤 나쁜 인간인지, 이 아이가 얼마나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는지를 보도하는 것보다는 아동과 관련한 모든 제도를 짚고, 제도가 있더라도 어떤 점이 부족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지를 짚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소장은 "3번의 신고를 묵살했다는데 당사자 반론이 안 나온다. 제도 때문에, 과잉대응에 따른 사례들에 학습효과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을 커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나하나 제대로 복기해서 우리나라 아동인권 현실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분노만 하고 덮게 되는 보도가 많다"고 했다.

김 소장은 "예전 '나영이 사건'(조두순 사건) 명명 때는 최소한 가명을 쓰는 센스를 보이기라도 했는데, 굳이 실명을 쓰는 건 부적절하다. 망자건 생자건 사람의 인격권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면서 "문제가 처음 드러난 것도 아니다. 이미 몇 달전 보도가 되었는데 이제와서 실명까지 공개하면서 언론이 보도하는 건 속 보인다. 현재 이뤄지는 보도 대부분은 충분히 잘 팔릴만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처벌을 쎄게 해라'는 식의 얘기로 소비되는 패턴을 따라 쓰는 일종의 장사라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정말 아동학대를 근절시키기 위해 보도하는 거라면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이슈이기 때문에 '정인이'라는 이름을 파는 식이 아니라 보도내용에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며 "아동학대 사건은 최근 너무 많았고, 특히 코로나19 이후 더 많아지고 있다. 아동학대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지 완전히 사회적으로 재논의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보도들이 나와야 하는데 별로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사회문제 고발과 해결의 주체로서 언론과 정치권의 진지한 책임의식과 성찰을 요구했다. 전 공동대표는 언론과 정치권의 '정인이' 호명에 대해 "언론과 정치인이 한국사회의 죽음을 대할 때 진지하지 않고 의식하는 척, 빠르고 얕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구조화된 죽음이 미안해하고 법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면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제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공동대표는 "진지하게 논의가 시작되고 모두가 실감할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다가 책임있는 태도가 분명한 상태에서 이런 사례가 계기가 되면 굳이 정인이 이름 안 붙이더라도 이 사안은 중요함으로 다른 이름으로 충분히 명명해 토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토론을 해보지도 않고, 책임을 분명히 하지도 않고 갑자기 '정인이'라는 호명을 되풀이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유효하지 않은 양식"이라고 했다.

전 공동대표는 "정인이 문제는 정인이 1인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돼 온 사회구조적 문제인데, 대중의 선의에 갑자기 자신들도 부합하는 것처럼 동조하는 이상한 포퓰리즘이 문제해결에 진정 도움이 되는가"라며 "대중적 관심이 이니까 그전에는 안 그러다 이번 기회에 나도 목소리 내고 울음 터뜨리는 행위가 무언가를 바꿔낸 케이스가 있었나"라고 언론과 정치권에 물었다.

전 공동대표는 "사건발생 이후 데이터를 내고, 탐사취재 하고, 왜 해결이 안 되는지 집요하게 따라가는 저널리즘이 있었나. 정치권의 논의나, 책임지는 정치인이 있었나"라면서 "지금부터 한다면 정인이 실명은 생략하고 그리 해서 잘 보이지 않는 가정 내 아동폭력과 위계적 권력, 아이들이 죽어가는 문제를 다른 이름으로 실증할 수 있는 책임있는 노력들을 보여야 한다. 고인은 물론 책임감을 느끼는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제언했다.

대다수의 언론이 '정인이'라는 실명을 기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SBS와 동아일보는 실명공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8뉴스'는 방송에서 아이의 이름과 얼굴사진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피해사실을 정확히 알려 경각심을 높이고, 유사범죄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깊게 또 길게 고민했다. 하지만 학대의 흔적이 유독 얼굴에 집중돼 있었고 아이의 표정에 그늘이 져 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는 없었기에 공개하기로 어렵게 결정했다"며 "아이의 얼굴을 가려 피해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이는 오직 가해자뿐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아동학대의 실상을 전하는 보도에는 늘 이어지는 질타가 있다. 사건의 잔혹함을 전하는데 급급하고 대안에 대한 고민은 짧다는 것"이라며 "우리 역시 그 지점에서 고민을 했다. 정인이가 입은 피해를 입증하는 것과 아동학대에 대한 예방책을 고민하는 것 그 둘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은 정인이 쪽이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5일 기사를 통해 '정인이' 실명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우려가 적고, 아동학대의 실태를 정확히 알려 유사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일깨우는 등 보도의 공익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점에서 공익성이 높고, 2차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실명보도가 현행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형량강화와 정부관리·감독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춘 아동학대 대응책과 법안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3일과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제도방향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형량이 세지면, 재판에서 그 형량을 인정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책임을 사실상 피해자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입증 자신이 없는 사건, 피해자의 진술이 주된 증거인 사건은 죄다 불기소 된다"며 "장애인 성폭력도 형량만 높여놨더니 대부분 불기소되고 있다. 여론에 밀려 법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가해자들는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다. 가해자 악마화하면서 법을 손대면 현장의 혼란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나"라며 "왜 3번이나 신고가 들어갔는데도 그렇게 처리되었는지 그 부분을 제도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또 김 변호사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제도, 24시간 아동보호기관 전산시스템 운영과 피해아동 즉시분리 등의 방안에 대해 ▲과도한 업무가 소수 공무원에 쏠리는 점 ▲공무원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 ▲현장에서의 학대 입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피해아동 분리 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기존 아동청소년 시설에 입소시키는 현실 등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권한강화가 답이 아니다. 현장 뛰는 사람이 일을 잘 할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건만 터지면 숙고도 없이 언론을 잠재우는 식으로 대책을 발표하면 현장은 더 힘들다. 아이들 살릴 수 없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수사역량을 키우고, 사건방지를 위한 예산 확보와 인력 충원·운용이 아동학대 현장에서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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