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는데 혼란만 가중되는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주장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사면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이게 바람직한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낙연 대표 주장의 배경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다.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재보선을 앞둔 ‘정략’이란 시각이다. 최근 스윙보터들은 고뇌에 빠진 상태이다. 잇따른 정부 여당의 실책으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태지만 대안으로서 국민의힘을 지지할 확신은 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에는 국민의힘 비호감 요소를, 다른 한쪽에는 코로나19 방역이나 부동산,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 등을 올려 놓고 어느 쪽을 더 비난할지 저울질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때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 요소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전 정권 문제이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를 앞세워 당명 등 상징을 교체하고 정책적 전환을 예고하는 ‘중도화’를 추진해왔다. 이것은 앞서 ‘비호감’ 요소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중진들과 지역 정치 기반의 반발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김종인 위원장이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 논의가 정치권 이슈가 되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이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국민의힘 일부 관계자들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판결이 정치보복이라는 등의 무리한 주장을 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나 김경수 경남도지사 관련 재판에서 재판부를 공격한 것을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자기들에 불리한 이슈에선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습은 앞서의 저울에서 국민의힘 ‘비호감’ 쪽의 무게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중도층 지지를 국민의힘이 확고하게 점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선을 긋고 현재와 미래만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사면론이 뜨거워질수록 이런 일은 어려워진다.

이낙연 대표는 대선 출마를 위해 3월에 대표직을 내려놔야 하는 처지다. 대표직을 제대로 수행했느냐에 대한 평가는 재보선 성적표에 달렸다. 결국 이낙연 대표의 갑작스러운 주장은 재보선 성과에 ‘올인’하기 위해 사면론을 활용한 정략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게 호사가들의 해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연합뉴스)

이런 주장의 또다른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대권주자로서 이낙연 대표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것은 사면론을 제기한 두 번째 이유로 꼽히는 것이기도 한데, 신년 여론조사 등을 통해 보면 이낙연 대표의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은 이재명 지사에게 밀리는 등 상당한 위기다. 따라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중도확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면론을 제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게 먹힌다면 결과적으로 앞서의 맥락에서도 재보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사면론으로 ‘중도확장력’이 증명된다는 가정에 얼마나 근거가 있느냐는 거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들의 강력한 지지자가 아니라면 대다수 국민에게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은 아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다. 언론은 그간 중도층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공정’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분석해왔는데, 형 집행에 대하여 누구라도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것 또한 ‘공정’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두 전직 대통령들은 권력을 활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거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국정 시스템을 붕괴시킨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이 자체로 두 전직 대통령들은 ‘공정’하지 않은 인물들의 상징인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행보를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화에 빗대는 시각도 있는데, 그것도 따져볼 일이다. 어찌됐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는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면’의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두 사람을 사면한 것에는 역사적 의미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낙연 대표와 전직 대통령들은 그런 관계도 아니고, 두 전직 대통령들의 범죄에 역사적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특별히 중도층이 사면론에 특별한 감정을 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면론이 ‘포석’의 첫 수라는 해석도 있다. 그간 집권 여당의 당 대표로서 한쪽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낙연 대표가 올해부터는 통치를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며 ‘이낙연 리더십’을 다시 확립해 나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비록 논란으로 시작했으나 전체 그림을 보면 지금까지 일방통행식의 정부 여당의 모습과는 뭔가 다른 색깔이 드러날 거고, 그게 중도층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앞의 사정으로 보면 ‘포석’의 첫 수가 사면론이 된 것은 묘수라기보다는 악수에 가깝고, 이게 오히려 전체 포석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다각도로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보니 세 번째 해석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재상고심이 끝나면 사면 요건이 갖춰진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론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부담을 나눠지려고 한 게 아니냐는 거다. 이낙연 대표의 대권주자 지지율은 정권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 정권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걸 분리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한데, 이낙연 대표가 이재명 지사처럼 현 정권을 들이받는 방식을 쓸 수는 없다. 따라서 현 정권에 필요가 있으나 차마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책임지는 형태로 온건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책임을 나눠지는 것’의 방식이 “사면을 해야 한다”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 걸로 귀결됐다는 거다. 이게 말이 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일 수 있다. 어쨌든 전직 대통령들은 나라의 지도자였고 수사와 징역형 집행 또한 이 정권에서 이뤄졌으니, 현직 대통령이 이걸 외면하기만은 어려울 수 있다. 가능하면 자기 임기 내에 정치적 응징이 반복되는 역사는 마무리하고 차기 정권에는 공정한 경쟁과 승복을 통한 산뜻한 출발의 조건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일부 보도를 보면 청와대의 탈정치와 정책 집중 등 선언이 예정돼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의 여러 비극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법적 처분과는 별개의 맥락에 있다. 오히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면권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은 이런 면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정치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특권층의 과거에 얽매인 자기들끼리의 정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은 이 규정을 뒷받침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낙연 대표 입장에선 시대에 호응하지 못하는 통치 방식을 혼자서 주장하거나 거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면론이 묘수가 아니라 악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