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2020년 10대 미디어 사건·이슈를 선정했다. 독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미디어스가 올해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을 밝힌다. 올 한해를 전대미문의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을 제외하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코로나로 인해 미디어 이용이 증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을 야기한 보도가 적지 않아 이를 제일 위로 올렸다. 올해처럼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 등 차별, 불평등의 문제가 다뤄진 적도 드물다는 판단이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내년에는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언론 보도와 관련된 이슈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검언유착 의혹, 출입처 시스템,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란 등을 꼽을 수 있다. 언제나 위기라는 미디어산업에서 OTT의 성장세가 가파르며 현재의 미디어 거버넌스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혐오 조장 코로나19 언론 보도

언론은 처음 겪는 코로나 재난에 우왕좌왕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인 1월 ‘중국발·우한발 코로나’로 명명하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보도됐다. 정부의 우한 교민 철수 결정과 관련해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에 이어 ‘대림동 차이나타운’(헤럴드경제) 보도 등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가 나왔다.

5월에 이태원 클럽 집단발병 이후에는 국민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 등에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가 나와 언론사 안팎에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0월에는 독감 백신 사망 보도로 시민 불안을 증폭시켰고, 11월부터는 정부의 코로나 백신 확보량이 부족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언론 보도가 공포감을 조장하고 특정 지역·소수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언론 내부에서는 자성의 움직임이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월 각 언론사에 ‘혐오 및 인종차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긴급 지침을 전달했다. 한국일보, 경남도민일보, 경향신문 등은 ‘코로나19 보도준칙’을 제정해 발표했다. 4월에는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감염병 보도준칙’을 발표해 ‘패닉, 포비아, 대란’ 등 공포 등의 과장된 표현은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 이후 ‘코로나19 보도 관련 제2차 긴급 호소문’ 등 자정 노력이 잇따랐다.

(사진=연합뉴스)

'n번방 방지법' 제정부터 사적보복 논란까지

지난해 11월 한겨레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사당국은 조주빈, 강훈, 문형욱 등 박사방·n번방 핵심 운영자를 구속, 재판에 넘겼으며 디지털 성범죄자 3575명을 검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성범죄 정보 확산 방지 의무를 부과한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방송통신위원회·여성가족부 등의 디지털성범죄 심의 기능이 강화됐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사적 보복 논란을 남겼다. ‘디지털교도소’는 성착취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수사당국은 국제공조를 통해 운영진을 구속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디지털교도소 사이트를 전체 차단하기로 했지만 차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언론계에선 박사방 유료가입 시도를 한 MBC 기자가 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범죄 형태가 음지화되고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실제 텔레그램의 익명성·폐쇄성 때문에 수만에서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성착취 범죄 가담자 전원을 적발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으로 숨어들어 디지털성범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지난 3월 MBC는 채널A 기자가 신라젠 의혹을 취재하면서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제보하지 않으면 형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취지의 협박성 취재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제보자X' 지 모 씨는 채널A 기자가 자신과 만난 자리에서 한동훈 검사와의 통화 녹음을 들려주며 협박성 취재를 했다고 주장, '검언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방통위는 지난 4월 채널A 조건부 재승인 의결 과정에서 '검언유착' 의혹이 중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될 경우 재승인 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재승인 철회권 유보' 조건을 달았다.

이후 권경애 변호사가 '권언유착' 의혹을 제기, 의혹 당사자로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사실상 지목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권 변호사는 MBC 보도 직전 한 위원장으로부터 "한동훈을 반드시 내쫓을 것이고 보도가 곧 나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조선·중앙일보 등이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3월 31일 MBC 보도 1시간 이후인 9시 9분부터 23분간 통화했다는 통신기록이 공개되면서 한 위원장이 MBC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1시간 반 가량 압박성 통화를 했다는 권 변호사 주장의 핵심 내용이 근거를 잃게 됐다.

검찰 기자실 전경 (사진=연합뉴스)

받아쓰기 출입처시스템

“기자 인력의 50%를 출입처와 무관한 독립적인 심층 취재 공간으로 열어보겠다”는 엄경철 KBS 보도국장의 포부와 함께 ‘출입처 제도 폐지’는 일 년 내내 화두로 자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병폐의 고리, 검찰 기자단을 해체시켜주십시오’라는 청원이 34만 명을 넘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 기자단은 엠바고 파기를 이유로 출입 기자에게 출입정지 1년 징계를 결정하기도 했다. 11월 27일 대검 기자단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상대로 징계투표를 진행, 이같이 결정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변호인이 ‘판사 불법사찰 의혹’ 문건을 자료 원본 그대로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오마이뉴스 기자가 자료를 그대로 보도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조 기자단 카르텔을 깨기 위해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이 나섰다. 법원과 검찰에 청사 출입증과 기자실 사용을 신청하고 반려될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기자단 폐지’ 목소리가 나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무제한 토론 도중 법조 기자단 해체를 주장했다. 기사 받아쓰기 관행은 출입처 기자단의 폐해라며 한겨레, 경향신문, KBS, MBC가 앞장서 법조 기자단에서 자사 기자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란

지난 4월 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허위사실·악의적 보도를 통해 막대한 손해를 끼친 언론사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악의적 언론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한 언론중재법을 발의하고 정부는 9월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구체화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국신문협회·한국기자협회를 필두로 “언론 자유 위축 우려가 있고 진실은 누가 판별할 것인가”라고, 언론인권센터 등은 “언론 자유에도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요구가 나올 만큼 언론 신뢰도가 낮아졌다. 다수 시민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조사 결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성 응답은 52%에 달했다. ‘보안 입법’ 응답은 23%, ‘반대’는 18%였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오죽하면 언론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나왔겠는가”라며 “신뢰 회복을 위한 뼈저린 각성과 비상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명예훼손 법리가 엄격한 한국 상황을 고려해 신중한 법 도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뉴스)

'불법 자본금 충당' MBN 영업정지 6개월·재승인

출범 당시 자본금 불법 충당, 분식회계 등 위법행위가 드러난 MBN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승인취소가 아닌 영업정지 6개월 행정처분과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MBN은 2011년 최소 납입 자본금 3000억원을 맞추기 위해 임직원 명의로 550억여원을 빌려 회사 지분을 매입했다. MBN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은 방송사상 '초유의 중징계'에 해당하지만, MBN의 중대한 불법행위에 승인취소를 촉구해 온 시민사회에서는 '솜방망이 징계'라고 비판했다. 방통위가 방송법상 감경사유가 없는 MBN에 감경을 결정해 직무를 유기했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는 MBN에 대한 최초 승인부터 2014년·2017년 두 번의 재승인, 이번 행정처분에 이르기까지 방통위의 책임은 없었는지, 결정은 적법했는지 등을 따져보겠다며 국민감사청구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종편·보도채널 (재)승인 제도의 '등록제 전환'을 검토할 시기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계 일각에서는 조건부 재승인을 받아 온 종편에서 공적책무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 여론 다양성 보장을 위해 등록제 전환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등록제 전환 시 방송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공적책무 감시가 약화되고, 방송시장 경쟁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내년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는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연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경기방송 자진폐업, 폐업 9개월·해고 7개월째

지상파 라디오 경기방송(FM 99.9MHz)이 지난 2월 자진 폐업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폐업을 결정한 것은 방송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기방송 폐업 사태는 주무부처인 방통위가 방송법상 소유·경영 분리원칙에 따라 방송 소유자를 경영에서 분리시키자 이에 반발한 소유자가 '자진 폐업'을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경기방송은 각종 경영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로부터 조건부 재허가를 받았지만, 자진폐업 사유로 '언론탄압'을 들었다. 경기방송은 부동산임대사업만 남기고 방송업 등 사업 일체를 정리, 80여명의 프리랜서와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방송사상 초유의 지상파방송 '자진 폐업'은 방통위 차원의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방송법상 허점을 드러냈다. 방송법에 폐업 시 신고의무만이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신속한 신규사업자 선정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공모가 시작되지 않아 해직노동자들은 7개월째 반발하고 있다. 경기방송 노동자들과 경기지역 시민사회는 경기방송의 '지역 공영방송' 모델 설립을 촉구하고 있다. 경기도는 경기도의회 제안에 따라 '경기교통방송 설립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해결 요원한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3월 MBC가 계약직 아나운서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신호탄을 올렸다. 하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2018년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14년 일한 CJB청주방송에서 하차 통보를 받은 고 이재학 PD가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대책위원회가 출범, 7월 유족·대책위·전국언론노조·청주방송은 27개 과제가 담긴 합의서에 서명하고, 사측은 사과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청주방송은 태도를 바꿨다. ‘사측의 이 PD 사망 책임’을 규정한 청주지법 강제조정결정문이 나오자 9월 이의신청을 한 것이다.

10년간 MBC 뉴스프로그램에서 일하다 지난 6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MBC 뉴스투데이 소속 두 명의 작가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10월, 11월 연달아 이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보도국 데스크 등의 업무지시를 받았다’는 작가의 주장을 기각하고 ‘업무 자율권이 보장돼 있다’고 판단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최근 발표한 ‘보도국 작가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도국 작가 90%가 주된 업무지시자로 ‘회사 정규직’을 꼽았다. 지시자의 지시 내용을 변경할 수 있냐는 질문에 72.4%가 ‘없다’고 답했다.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KBS 1TV<저널리즘 토크쇼J> 시즌2는 지난 13일 비정규직 계약해지 논란 속에 종영했다. J<저널리즘 토크쇼J> 제작진 31명 가운데 21명은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였다. 프로그램 종영 소식과 함께 프리랜서 PD가 프로그램 공식 카페 등에 부당해고 논란을 제기했다. KBS는 부당해고가 아니라며 즉각 반박했지만, 출연자들까지 나서 KBS의 태도를 비판했다. 프리랜서 제작진들은 KBS 측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의 요구서를 KBS에 전달했고, KBS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OTT 정책 주도권 쟁탈전

미디어업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성장세는 뚜렷하다. 올해 '2019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간 OTT 전체 이용률은 36.1%, 42.7%, 52%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OTT가 방송통신융합시대 대표 미디어로 꼽히는 상황에서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정부부처 간 물밑 경쟁이 가시화됐다.

중장기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연구를 진행 중인 방송통신위원회는 'OTT 활성화 협의체'과 'OTT 정책협력팀'을 구성, 사업자 의견수렴과 정책지원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OTT 법제도 연구회'를 발족해 미디어 법제도 정비방향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런 가운데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OTT 정책 컨트롤타워를 문체부에 두는 법안을 발의했다. OTT에 대한 법적 정의도 부처별로 제각각이다. 과기정통부는 OTT를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으로, 문체부는 온라인영상콘텐츠제공업으로 규정했다. 각 부처 수장들은 '쟁탈전이 아니다'라며 협의 과정 중 논의일 뿐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여기는 이 관점, 저기는 저 관점 얘기를 하면 사업자들이 가장 혼란스럽다"는 우려가 나왔다.

공감대만 있는 '미디어혁신위원회'

지난해부터 언론시민사회 중심으로 촉발된 '미디어혁신위원회'(가칭) 설치 논의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공약으로 발표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정치권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으면서 결국 올해를 넘기게 됐다. 미디어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법체계와 정책 거버넌스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데에 정부, 국회, 업계, 시민사회 등 모두가 반복적인 공감을 표했지만 논의를 주도해야 할 국회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미디어혁신위 주요 의제인 관련 부처의 권한 분산·중첩 해소와 통합법체계 마련은 정부조직 간 권한갈등 조정 작업이 필수적인데다 여론수렴이 중요해 여당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 논의과정을 보면, 1998년 당시 케이블, 위성 등이 등장하면서 달라진 방송환경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졌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논의기구인 방개위 설치 제안이 나왔다. 그해 12월 사회 각계 인사들과 정부, 국회가 참여한 방개위가 구성됐고 2000년 방송법이 제정됐다.

언론시민사회에서는 미디어 정책 새판짜기에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작 시민들로부터 관련 논의를 의제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대통령 선거 등 대형 정치적 스케줄이 예정됐다. 미디어혁신위에 힘이 실릴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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