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동걸 KDB산업은행장이 키코 사태와 관련해 자신에 대한 칼럼을 쓴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조붕구) 등 금융피해자연대는 "국가자본의 언론탄압 행위"라며 소송 철회를 촉구했다.

이 행장은 지난 11월 스포츠서울 권 모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0월 18일 권 모 기자가 작성한 칼럼 <[취재석] 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가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동걸 한국산업은행장이 지난 10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신용보증기금·한국산업은행 등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키코(Knock-In, Knock-Out)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입는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이다. 미리 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환율이 상한(Knock-In) 이상으로 오르거나 하한(Knock-Out)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각각 환율보다 낮은 가격에 2배의 외화를 팔아야 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상품이다.

2008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키코에 가입했던 중소기업 피해가 속출, 줄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723개 기업이 3조 3000억원 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 금융감독원은 2018년부터 2년 간 키코사태를 조사, 키코를 '불완전판매'로 결론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한·하나·대구·우리·씨티·산업은행에 키코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피해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시중 은행들이 피해기업 보상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배상이 아닌 '보상'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키코는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행장이 권 기자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이유다. 권 기자는 기사 제목에 큰 따옴표를 붙여 이 행장이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라고 보도했는데, 이 행장은 "키코는 불완전 판매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증언했을 뿐 "키코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한 적이 없어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게 이 행장측 주장이다.

이 행장측은 소장에서 "이(기사)로 인해 산업은행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다가 국정감사 과정에서 잘못을 시인한 듯한 인상을 주어 공적기관으로서 산업은행의 신뢰도에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됐다"며 "산업은행이 키코 상품 판매와 관련된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여 불완전판매를 인정한 것처럼 비추어짐으로써 키코 상품 판매와 관련된 손해배상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될 수 있는 등 산업은행이 입게 되는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소송 취지를 설명했다.

권 기자가 이 같은 기사제목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칼럼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 행장 발언을 지적했다. 이 행장이 "키코는 불완전 판매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행장은 기업들에게 키코를 판매하면서 "가격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용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격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은행업 감독세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권 기자는 이 같은 국정감사 발언을 칼럼에 적시하면서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도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이 회장(행장)의 논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 회장은 진실에 의해 코너에 밀렸고 그곳에서 무의식 중에 진실을 내뱉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키코 공대위 등이 속한 금융피해자연대는 28일 보도자료를 내어 "국가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장이 기자를 상대로 무리한 주장을 펴면서 대형로펌을 고용해 억대 소송을 벌이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하기 어렵다"며 "국가자본이 언론을 탄압하는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피해자연대는 "기사는 국감에서 '가격정보 미제공'을 시인하며 사실상 키코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면서도 '키코는 불완전판매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동걸 회장의 논리를 평가한 것"이라며 "또 기자는 기사 본문에서 이동걸 회장이 '불완전판매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작성함으로써 이 회장의 일관된 주장을 틀림없이 썼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당 기사의 제목은 이 행장의 발언 내용을 직접 인용하는 형식의 큰 따옴표에서 간접인용 방식의 작은 따옴표([취재석] 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로 수정된 상태다.

이에 대해 금융피해자연대는 "산업은행측은 기사가 인터넷에 공개된 다음 날인 10월 19일 동일한 문제를 제기해 왔고, 기자는 같은 날 데스크와 협의를 통해 제목의 쌍따옴표("…")를 홑따옴표('…')로 수정했다"며 "쌍따옴표가 주로 화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데 쓰이는 것을 감안했으며 수정을 통해 오해의 여지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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