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태영그룹이 SBS 보도국 기자들을 사적으로 동원한 정황이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17일 ‘태영그룹, SBS 기자들 동원해 정부 예산 확보 로비 의혹’ 보도를 통해 2015년 당시 태영그룹(현 TY홀딩스)이 인제스피디움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실행한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2015년 7월 9일 인제스피디움이 작성한 '인제 고성능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추진 일정안' 문건. SBS 보도본부가 산자부, 미래창조부, 기획재정부 등을 미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뉴스타파 보도 화면)

뉴스타파가 폭로한 문건은 2015년 7월 9일 작성된 것으로 명칭은 ‘인제 고성능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추진 일정’이다. 태영그룹이 SBS <런닝맨> 등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인제스피디움을 홍보하던 시기다. 인제스피디움은 경주용 자동차 트랙에 숙발시설까지 갖춘 종합 리조트로, 태영건설이 시공에 참여했다. 태영건설은 2015년부터 인제스피디움을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고, 태영건설과 SBS 창업주인 윤세영 회장의 차녀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부, 기획재정부, 국회가 차례로 나와있고 312억 원이라는 액수가 표시됐다. 뉴스타파는 이를 정부 부처를 거쳐 국회에서 312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려는 일종의 ‘로비 마스터 플랜’이라고 보도했다.

문건에는 6월 3일 SBS보도본부와 산자부 차관의 미팅, 6월 29일 보도본부와 미래창조부 차관과의 미팅, 7월 1일 보도본부와 기획재정부 기획예산실장과의 미팅 등이 표기됐다. 뉴스타파는 6월 3일 미팅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SBS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지만, 이관섭 전 산자부 차관, 홍지만 전 국회의원 등은 기억이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동석한 것으로 지목된 SBS 당시 경제부장과 평기자 모두 취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인제스피디움 관련 예산이 급하게 편성된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2015년 6월 7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그룹 빅뱅이 출연했는데, 촬영지는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인제스피디움이었다. (출처 : SBS)

또 하나의 물증은 당시 인제스피디움 지원 업무를 하던 SBS 직원이 SBS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2015년 5월 6일 발신된 메일에는 SBS보도본부 경제부장의 도움으로 우원길 전 SBS 사장(2009년 12월~2013년)이 이관섭 전 산자부 차관과 우호적인 오찬 회동을 가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산자부의 실무자급과의 미팅을 추가로 주선해달라는 요청이 담겼다. 우 전 사장은 뉴스타파에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윤세영 명예회장은 “무슨 늙은이가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하나요”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했지만 문건에 담긴 ‘고성능 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예산’은 실제 산업자원통상부 R&D 예산으로 책정됐으며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94억 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뉴스타파는 “SBS 창업주이자 태영건설의 사주 윤세영은 SBS 개국 방송(1991년)에서 대주주로서 SBS를 소유하되 경영이나 방송 편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했지만 여전히 SBS는 윤세영 일가와 태영그룹에 의한 사유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SBS가 ‘물은 생명이다’ 캠페인을 통해 태영건설의 하수처리 사업장 건설 수주를 도왔다는 의혹, 2014년 태영건설이 추진하던 경기도 광명시 KTX역 인근의 역세권 개발 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SBS가 광명동굴 홍보를 수십 차례 해줬다는 의혹 등은 대주주인 태영그룹이 공공재인 지상파 방송을 동원한 사례로 꼽힌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SBS에 3년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하며 ‘최다액출자자 등에 유리한 보도,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방송이 사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할 것’을 조건으로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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