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2020년 국민이 꼽은 ‘올해의 사건’ 1위는 코로나19, 2위는 ‘박원순 시장 사망·성추행 논란’으로 집계됐다. 중앙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1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전직 비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에서 지난 7월 9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17일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은 토론회를 열고 우리사회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튜브 '열린공감TV'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피해자 관련 영상들. (사진=유튜브 '열린공감TV')

이날 토론회에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나오고 진실을 가리려는 움직임이 매우 컸기에 언론만이 아닌 미디어 전체를 통해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문제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입을 뗐다. 윤 이사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박원순 시장이 왜 사망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피해자가 잘못된 거야’, ‘음모론이야’라는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게 됐다”고 밝혔다.

7월 22일 피해자의 2차 기자회견 이후, 음모론을 주장하는 유튜버, 페이스북, 인터넷 언론이 대거 등장했다. 윤 이사는 “기성언론의 보도량은 현격히 줄었고 페이스북에 나오는 글을 기사화하는 정도였다”며 지난 5개월간 유사 언론을 포함한 언론 보도에 5가지 변곡점이 있었다고 짚었다.

우선 7월 9일부터 12일까지는 ‘사망 사건에 대한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7월 13일부터 21일까지는 서울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과 1차 기자회견이 진행된 시기로 피해자 호칭을 두고 정치권에 논쟁이 일었다.

윤 이사는 7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가장 큰 변곡점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 2차 기자회견과 성폭력 사건을 부정하는 ‘음모론’이 겹쳐졌다. 7월 23일 유튜브 '고발뉴스TV'는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피해자 변호인 김재련 변호사를 향해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했다. 8월 6일 서울신문 곽병찬 칼럼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가 게재됐으며 10일 자칭 진보 인터넷 언론매체 유튜브 ‘열린공감TV’는 ‘떴다! 박원순 짜여진 각본에 희생됐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윤 이사는 “런닝셔츠만 입은 남성들이 유튜브에 나와 피해자의 음모론을 얘기하고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9월 14일부터 한 달여 동안 피해 사실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김재련 변호사는 한겨레21,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고, 같은 날 열린공감TV는 피해자 사진을 공개했다. 9월 15일 고발뉴스는 김재련 변호사의 인터뷰를 반박했으며 17일 열린공감TV는 피해자 영상을 공개했다. 21일 한겨레, 경향신문, 세계일보 등에서 “도 넘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5일 한국일보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을 인터뷰했다. 27일 김민웅 교수 등은 페이스북에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올렸다. 11월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당규를 개정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후보자를 내기로 결정했다.

윤 이사는 “피해자 측의 두 번의 기자회견, 김재련 변호사의 반박 인터뷰와 달리 인터넷 매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기획미투, 음모론 등 광범위한 왜곡과 거짓정보로 여론을 주도하려 했다”며 “이들 대부분은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이었다”고 분석했다.

윤 이사는 “고발뉴스, 열린공감TV는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행위를 한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인에 대한 2차 가해쯤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내년 재보궐 선거의 승리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은 7월 22일 2차 기자회견을 전후로 정치투쟁으로 변모했고 박원순 시장과 함께했던 지지자들은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 선동을 했다. 이제 진실을 밝히는 일은 법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유튜브 '고발뉴스TV'에 올라온 김재련 변호사 및 피해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영상들 (사진=고발뉴스TV)

같은 시기 언론 보도에 대해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성폭력 보도에 있어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만, 스트레이트 기사 등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또한 가해자가 유명인인 경우, 가해자의 업적 등에 대해 보도하는 것 자체만으로 서사적인 면책을 받는다”고 밝혔다.

김 부교수는 “가해자의 모든 업적과 생애를 보도할 필요는 없다. 성폭력 보도에서 사망 사건 중심으로 보도가 옮겨가게 되면 결국 성폭력 문제는 사라져버린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문제를 진보 정치인의 몰락이나 정치갈등, 진보 정당의 문제로 축소해버리고, 정치계 남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재로 읽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보수언론의 보도에 대해 김 부교수는 “여성 정치인 중 누가 애도를 말했는지 말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으며, 이는 진보세력의 모순과 위선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굳이 보도하지 않아도 되는 유명인의 발언을 따옴표로 옮겨 피해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프레이밍했다. 따옴표는 객관성을 가장한 것일 뿐 사실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짚었다.

애도 기간 정치면에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따옴표처리한 보도가, 사회면에서는 피해자 입장을 다룬 보도가 나오며 언론사 내에 관점이 출동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김 부교수는 “젠더문제를 여기자의 몫으로 몰아넣은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년 남성 세대의 감수성이 청년 여성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 때문에 젠더 문제를 여성 기자에게만 의뢰하고 주요 뉴스와 젠더 뉴스를 분리하게 된다. 문제는 최종적으로 제목을 달고 이를 결정하는 이들이 중년 남성으로, 조직 전체의 젠더감수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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