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대로 착실한 노동조합원이다. 회사에서 부장이라는 직함을 단지 3년이 넘었지만 계속 조합원 자격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조합비도 꼬박꼬박 내고, 행사에도 빠지지 않으려 애쓴다. 작년 노동교실에도 열심히 참여해 수료증을 받았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깃발.

잠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기간도 있었지만, 93년부터 조합원이었으니 상당히 고참이라 할만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언론노조 조합원이고 싶다.

이만하면 노조에 대한 애정만큼은 인정할만하지 않은가. 그런 애정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쓴다. 좀 껄끄럽거나 내가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 있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기 바란다.

1.

언론노조는 산별 단일조직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신문의 일개 조합원인 나로선 전혀 실감할 수가 없다. 93년 언노련이었던 시절보다 오히려 역동성이나 투쟁력도 떨어진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집행위가 비상대책위로 전환해 ‘총력투쟁’을 벌인다지만 내 일처럼 와 닿지 않는다. 걸핏하면 이름만 바꿔다는 비대위가 별로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실제 정권과 맞붙어 이길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엊그제 400여 명이 모여 ‘언론장악 저지 공동 결의대회’를 열었다는데, 4만 명이 모여도 눈 하나 껌벅 않는 요즘,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언론 관련 난다 긴다 하는 54개 단체가 공동으로 연 집회에 고작 400명이라니…,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KBS나 MBC 한 군데서만 제대로 조직해도 그것보다는 많이 모으겠다 싶었다.

2.

나는 2004년 경남도민일보 지부위원장으로서 부산·울산·경남언론노조협의회(부울경언노협) 의장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사람을 모은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반대가 많았지만 고집을 피워 두 번의 집회와 한 번의 부울경 조합원 체육대회를 치렀다. 행사마다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 명 정도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무리하게 집회와 체육대회를 했던 이유가 있었다. 부울경언노협에도 조합비로 낸 분담금 예산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조합원 전체에게 그 돈을 쓸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조합원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집회와 행사를 열지 않으면, 그 돈은 결국 간부들(정확하게는 부울경언노협 가맹사의 지부위원장들)만 쓰게 된다.

한 지부에서 대 여섯 명밖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그럴 기회가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픈 사람의 의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려선 안되기 때문이다.

또 그런 행사가 있어야 각자 회사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이 ‘언론노조 조합원’이라는 동질감을 갖고 어울릴 수 있다. 그래야 ‘단일노조’의 소속감도 생긴다.

하지만, 2004년 이후로 부울경언노협은 평조합원은 물론 각 지부의 상집 간부조차 참여할 수 있는 모임도 열지 않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부장들의 사교모임’에 불과하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언론노조 중앙집행위나 대의원대회를 항상 서울에서 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간혹 지역에서 하더라도 꼭 부산 해운대나 제주도 같은 관광지에서 하는 것도 고쳤으면 한다.

3.

조합원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집회나 행사를 자주 하자는 게 아니다. 솔직히 나는 ‘집회’라는 요구관철 수단의 효과에 대해 좀 회의적이다.

문제는 언론노조 내부의 ‘공유’와 ‘소통’이다.

그동안 언론노조 집행부는 각 지·본부장들만 상대해왔을 뿐 일선 조합원들과 직접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신문은 신문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신문 중에서도 서울지와 지역지, 일간지와 주간지가 따로 놀았다. 지역언노협에서도 지부장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조합원끼리 동질감 같은 건 싹틀 기회가 없었다.

언론노조가 산별단일노조가 되려면 공유와 소통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 내부의 조합원들은 방치해두고, 정권을 상대로 한 협상과 로비에만 주력했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들은 자신이 노동자란 사실도 잊고 자본과 권력의 노예로 전락해가고 있다. 매달 꼬박꼬박 조합비가 월급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기자들도 기사를 쓸 땐 자본과 권력의 편을 든다. 그래도 언론노조는 그 기자조합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4.

그러면 어쩌자는 말인가. 당장 ‘저지’해야 할 권력과 자본의 공세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한가롭게 ‘소통’이나 ‘공유’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400명밖에 모이지 않더라도 정권의 공세에 대응은 해야 하지 않는가.

맞다. 그건 그대로 하더라도,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국의 1만7000 조합원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당장 눈앞의 공세에 맞서되, 장기투쟁에 대비한 진지도 구축해야 한다.

▲ 언론노조 홈페이지.
그 많은 조합원을 어떻게 일일이 만나느냐고?
그걸 누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라고 하나. 온라인에서 만나면 된다. 오프라인에서 일회성 순회간담회 갖는다고 해서 ‘공유’와 ‘소통’이 될 수도 없다. 온라인에서 ‘상시적으로,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해야 한다.

5.

당장 지금의 언론노조 홈페이지( http://media.nodong.org )부터 갈아엎어 버리자. 웹2.0 시대에 0.5도 안 되는 지금의 홈페이지는 안일과 나태와 수구와 폐쇄의 상징이다. 조선닷컴도 이렇게 폐쇄적으로는 안 한다. 뉴미디어시대 언론노조가 조합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인터넷이다. 그러나 언론노조 홈페이지는 전혀 소통할 자세가 안 돼 있다.

언론노조 홈페이지는 ‘전국 언론노동자의 메타블로그’로 바뀌어야 한다. 최상재 위원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인사말을 올리고, 정책실에서 내놓은 성명서도 정책실 팀블로그에 올려져야 한다. 본조의 각 부서별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전국의 지역언노협과 지·본부의 블로그는 물론 개인블로그를 가진 수많은 조합원들이 자기 블로그를 통해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메타블로그는 이런 수많은 블로그를 묶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돈이 많이 들고 어렵지 않냐고? 간단하다. 메타블로그 페이지만 만들어 관리해주면 된다.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 개인블로그를 가진 조합원들의 가입을 독려하는 일은 지·본부의 몫이다. 그런 다음 ‘포스트 수동으로 보내기’ 기능을 사용하면 누구나 언론에 대한 발언(포스트)을 ‘언론노조 메타블로그’에 메인페이지에 걸 수 있다.

▲ 메타블로그의 하나인 올블로그.
최상재 위원장이 올린 ‘조합원에게 드리는 글’에 트랙백을 걸어 내 블로그에서 의견을 달 수도 있고, 청와대 기자실의 엠바고에 대해서도 전국의 언론노동자들이 게릴라식으로 비판글을 날릴 수 있다. 최시중 선임에 반대하는 언론노조의 성명서를 다음블로거뉴스에 송고할 수도 있고, 올블로그와 블로그코리아, 오픈블로그, 이올린 등에 며칠동안 떠다니게 할 수도 있다.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면, 나는 ‘1만 언론노동자 블로거 양병설’을 제창하고 싶다. 블로그는 언론노동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1만이 아니라 1000명, 아니 잘 조직된 100명만 있어도 광화문 거리에 10만 명이 모이는 집회보다 훨씬 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언론노조여! 전국 언론노동자들의 메타블로거로 거듭나라!
전국의 언론노동자들이여! 블로거게릴라로 거듭나라! 팍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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