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김진숙을 공장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는데 감히 ‘노동존중사회’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1986년 7월 해고된 뒤 35년째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그다. 민주노조 하다가 쫓겨나고도 35년째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해 앞장서서 싸워온 그다. 그의 정년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는 공장에서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가 다른 노동자를 위해 싸워온 이야기를 여기에 적자면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니, 여기에는 오로지 그의 이야기만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그의 이야기만 적어도 지면은 부족하다. 35년이란 시간이 그렇다.

1981년 10월 1일. 부산에서 시내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던 김진숙은 조선소 일이 그렇게 좋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대한조선공사에 용접공으로 취직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선소 용접공. 그의 빛나는 타이틀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떨어져 죽고 끼어 죽는 위험한 공장에서 질기게 살아남고, 쥐똥 섞인 도시락을 받아 먹어가며 질기게 살아남았다.

1986년 2월 18일. 6년차 용접공 김진숙은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다. ‘민주노조’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도전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그는 당선 직후 노동조합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을 뿌렸다. 뭐 대단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조합원들의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게 뭐라고, 그는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세 차례나.

1986년 7월 14일. 김진숙은 징계 해고된다. 해고되자마자 그는 바로 복직투쟁에 나섰다고 한다. 이른바 ‘출근투쟁’이다. 그는 번번이 공장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어용노조 간부들에게 얻어맞았다. 그가 공장 밖으로 쫓겨난 1년 새 공장 안 노동자들은 ‘도시락 거부 투쟁’을 벌이며 단결의 힘을 알아가고, 1987년 7월에는 천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파업 투쟁까지 성사시킨다. 노조는 ‘해고자 복직’을 회사에 요구했지만, 회사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진숙은 그래도 곧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10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복직촉구 사회 각계각층 원로선언에서 김진숙씨 뒤로 전태일 동상이 보이고 있다.(사진 출처 한겨레)

1990년 7월. 해고 4년째 되던 해에 김진숙의 입사 동기 박창수가 노조 위원장에 선출된다. 찬성률 90.85%. 마침내 민주노조가 탄생한 순간이다. 김진숙은 이제야 정말로 공장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박창수는 이듬해 5월 의문사한다. 이후 김진숙의 복직은 멀어졌다.

2002년.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65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노동조합은 싸웠고, 회사는 버텼다. 투쟁이 거듭되다가 해를 넘겨 2003년 6월, 당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었던 김주익이 타워크레인에 오른다. 회사는 교섭을 회피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남용했다. 조합원들이 하나둘 이탈하는 걸 지켜보던 김주익은 10월 17일 크레인 위에서 투쟁의 지속을 요구하며 자결했다. 그의 죽음에 아파하던 곽재규도 도크 위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노동자 두 사람이 죽고나서야 회사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동조합의 결속력도 강해졌다.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리해고를 철회했고 1986년부터 해고된 9명을 전원 복직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김진숙도 포함이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막았단다. ‘김진숙만 빼고’ 복직시키라고 했단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이번에도 김진숙은 복직에 실패한다.

2011년 1월 6일. 김진숙은 김주익이 생을 마친 그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또 다시 단행된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다. 그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그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뺐다. 투쟁의 순수성이 훼손당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절박하게 투쟁했다. 309일의 농성 끝에 투쟁은 승리했고, 동지들은 복직했으며, 김진숙은 여전히 공장 밖에 남았다.

이후로 그는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 왔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갔고, KTX 해고노동자들도 공장으로 돌아갔고, 김진숙이 암 투병하는 몸으로 110km를 걸어가며 알린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도 승리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선소 용접공’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노동자’가 되어 마지막 복직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제 복직은 시대의 복직이에요.” 작가 은유와의 인터뷰(한겨레신문, “잊힌 노동자들 잊지 않으려 '나의 복직은 시대의 복직'”)에서 김진숙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다. 민주노조 했다고 해고되어 번번이 복직에 실패했으며 기어이는 ‘김진숙만 빼고’ 복직시키라는 불합리한 요구에도 좌절해야 했던 김진숙의 복직은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조합을 악마화해 온 시대와의 완전한 작별이고, 상식이 통하는 시대의 복직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지난 2009년에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보상심의위원회’는 김진숙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김진숙과 함께 지도위원을 지낸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이제는 대통령이다. 지난 10월 열렸던 국정감사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입을 모아 그의 복직을 지지했다. 기업과 노동과 정부의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 있다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도 그의 복직을 위해 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진숙이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해 더이상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김진숙은 반드시 복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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