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6일 오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우) 박원순 변호사(왼쪽)와 단일화를 발표한 후 껴안은 채 활짝 웃고 있다. 안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결국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를 보면 선거용으로는 괜찮은 그림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TV토론의 배심원 평가와 여론조사는 박원순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은 박영선 후보가 이겼다. 그동안 경선 룰과 관련하여 불거져 나왔던 논란들을 고려하면 이것은 최소한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정도는 된 것이고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서로 큰 앙금을 남기지 않고 선거국면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상처입게 된 손학규 대표, 그러나...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는 일단 상처를 입은 셈이 됐다. 당 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천정배 최고위원의 출마를 만류하며 박원순 후보를 영입하려다 실패하자 부랴부랴 박영선 정책위의장을 내세워 패배한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남 좋은 일만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지금 당장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는 평가는 선거 이후에 하고 당장은 승리에만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던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주류 입장에서도 지금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내 갈등이 불거지고 박원순 후보가 본선에서 패한다면 이 책임을 다 뒤집어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가 본선에서 이기면 손학규 대표로서는 패배를 만회할 찬스를 다시 가질 수 있게 된다. 내년 총선을 거쳐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야권연대는 늘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중심을 강조하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의 지지는 강화될 수 있으나 야권연대에는 결과적으로 금이 갈 수 있다. 야권연대에서 민주당은 어쨌든 기득권이고 늘 양보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가 지금 이 국면을 통해 자기 재산으로 남겨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정이야 어쨌든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외의 세력과 기득권을 버리는 과감한 경선을 진행한 끝에 승리한 야권연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가 본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손학규 대표도 본전은 찾을 수 있는 입장인 것이다.

야권연대의 표준적 모델이 될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

그럼 이제 이러한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총선에서의 야권연대는 앞서 말한 대로 필수적이다. 이번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이것을 미리 실행해본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즉, 범야권 입장에서 이번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는 야권연대의 표준적 모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민주당이 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겼다면 민주당 외의 다른 정치세력은 총선 기간 동안의 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이 더 낮은 경선 룰을 요구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당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이다. 총선 국면에서 각 지역구에 이번 서울시장 경선과 동일한 룰을 적용해서 야권연대를 실현한다고 치자. 진보진영의 유력한 몇 명의 정치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주당 후보의 승리일 것이다.

상황이 꼭 그렇게 돌아가지 않더라도 서울시장이라는 큰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과 관련한 계획을 자신들을 중심으로 짜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이후 범야권에 선거연합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약 이 논란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박원순 후보의 당선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핵심은 박원순의 승리가 사실상 안철수의 승리라는 데에 있다. 안철수로 대변되는 정치적 흐름이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좋은 그림'이 만들어진 지금 지금이야 기분 좋게 민주당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겠지만 논쟁이 격화되면 과연 그렇게 웃음만 짓고 앉아 있겠는가? 이쯤에서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가장 스펙타클한 상황을 가정해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박원순을 매개로 한 사실상의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는 경우다.

사싱상 안철수의 승리가 된 박원순의 승리

아직 언급하기에 시기상조인 주제이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최초에 박원순 후보에게 범야권 단일화를 제안한 사람은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이다. 이들은 친노그룹의 일원이다. 문재인 이사장은 민주당의 당적을 갖고 있지도 않다. 이 그림의 생김새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 외의 친노그룹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권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껄끄러운 상황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랬든 저랬든 여론조사 결과는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수치도 그렇지만 강남3구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호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도 그렇다.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나경원 후보가 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는 등판할까?

때문에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선거의 여왕'인 박근혜 전 대표의 등판이다. 다행히 한나라당 지도부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 승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할 태세이고 친이, 친박을 가리지 않는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최대한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의 상당수도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아무런 말이 없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선거대책위원회의 직책을 맡도록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종의 자율권을 준 셈이다. 이는 최대한 박근혜 전 대표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선거지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직책이 없는데 무슨 선거 지원을 한단 말인가? 더욱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대통령의 딸로 살았던 박근혜 전 대표는 그런 부분에 특히 민감한 사람이 아니던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복지당론을 정리하는 등의 노력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마치 자기 선거 치루 듯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선거 지원을 하더라도 '힘 조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에 이렇게 하고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이전 글에서 이야기 한 '보수신당론'이 작동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당장 수도권 친이계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들을 살려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지상욱 후보를 매개로 한 자유선진당과 이회창 전 총재의 선택이 이 국면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될 지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유선진당 인사들이 생각하고 있는 충청권을 매개로 한 보수대연합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와 겹쳐지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범보수진영 입장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경우에 따라서는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바꿀 핵폭탄급의 위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리 여러 가지 위기가 있어도 사실상 민주당, 한나라당의 양당 체제가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여야를 막론한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과감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상상은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것이고, 덕분에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도 많다. 상상이 상상에 그치고 마는지,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지를 판가름하게 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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