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의철 칼럼] 언론학자로서 연구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개념이 ‘갈등유발 저널리즘’이다. 십수 년 전쯤 기자 출신 교수가 쓴 논문에서 처음 접하고 공부했다. 한국의 언론은 물론이고, 상업성과 정파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특종·속보 경쟁에 여념이 없는 주류언론들의 성향을 잘 설명해 주는 개념으로 와닿았다.

최근 한국사회의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파들이 자신들만 선이라는 식으로 극한 대결을 벌이는 상황은 강한 정파성을 개인적으로 표출해 온 입장에서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언론의 ‘편향성’이다. 언론이 사실과 분석에 근거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대안을 탐색하기보다는 진영 편들기에 나서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언론의 사명인 정론직필을 소홀히 하는 모습이다.

거기다 부정확한 정보와 가짜뉴스의 확산은 물론, 가십에 연연하면서도 부끄러움도 개선의 의지도 보이지 않으니 더욱 안타깝다. 이러한 보도행태는 지지하는 진영에 속한 독자·시청자들로부터는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안을 단순화하고 흥미 지향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상업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안타까운 연구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11월 25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충북본부가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당사 앞에서 '전태일 3법' 도입을 촉구하는 총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 쓰라린 점은 기득권 진영 간 갈등의 확대재생산에 가려 ‘전태일 3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개정)’, ‘차별금지법’ 같은 노동자들과 서민,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생활과 직결된 정의롭고 시급한 의제들이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본질적 문제는 정파성이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친자본·친엘리트적 관점을 고수하는 ‘반서민적 편향성’에 있다.

언론은 거대 정파와 엘리트 세력 간 갈등의 틀에서 탈피해 코로나 19 이전에도 이미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항상적’인 재난 상황에 처해 있었고, 현재 그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서민의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엘리트 간 갈등에 편향된 정파성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서민의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정의로운 정파성을 바탕으로 ‘축적된 부정의’를 해소하는 노력에 주력해야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 언론이 ‘정론직필’을 한다면 ‘정파성’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정파성이냐’에 있다. 구태의연하고, 기득권 세력 중심의 선택을 강요하는 정파성이 아닌 서민의 삶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파고들고 주장하는 정파성을 제안한다. 이러한 정파성을 편향성과 혼돈되지 않는 ‘정의로운 정파성’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거대 정파들의 이전투구에서 한 발 벗어나 서민의 일상 속에 축적된 부정의를 파헤치고 대안을 찾는 작업은 외롭고 힘들 수 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시청률·구독률·광고 등에 대한 염려도 수반될 수 있고, 현장은 다르다는 익숙한 푸념을 낳게 할 수도 있다. 신문 1면을 장식해 오던 거대 담론들과 익숙한 인물들을 대신해 ‘전태일 3법’, ‘차별금지법’ 등 덜 익숙한 노동과 차별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축적된 부정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까지 다루자니 더 많은 준비와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정론직필’은 결국 승리해 오지 않았나? ‘정의로운 정파성’ 실천을 통해 노동자와 서민의 숙원인 ‘전태일 3법’도,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소수자·약자의 염원인 ‘차별금지법’도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실천될 것이라고 믿는다. ‘갈등’과 ‘선정성’이라는 달콤한 유혹과 익숙한 프레임이 아니라 정의로운 ‘정파성’을 지향하면서 덜 익숙한 ‘친서민’, ‘친노동’의 담론을 내세우고, 사회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언론으로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 통해 ‘갈등유발’ 저널리즘의 오명을 벗고 ‘정의지향’ 저널리즘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 서민과 소수자·약자를 위한 ‘정의지향’ 저널리즘의 도래가 언론 스스로의 의지로 추진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간 언론의 행태를 감안하면 요원하다. 언론 자체의 성찰과 노력만으로는 어림없다.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감시와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이유이다. 아울러,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언론으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언론인권센터’ 같은 주체적인 시민단체의 역할도 막중하며, 그 역할을 성찰하고, 더욱 강화하길 소망한다.

* 정의철 상지대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87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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