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전두환 씨가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중앙·동아·한겨레·경향 등 주요 신문사들이 일제히 전 씨를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전 씨는 국민과 유족에게 사과하고 5·18 진실을 털어놔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관련 사설은 없어 조선일보의 입장, 주장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12면 <법원 “5·18 헬기사격 있었다”… 전두환에 유죄> 기사를 통해 재판 결과를 알렸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달 30일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전 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쟁점은 헬기사격 진위여부였다. 사자명예훼손은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를 보면 헬기 사격을 인정할 수 있다. 즉 1980년 5월 21일 500MD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법원도 5·18 헬기사격 인정…소모적 논쟁 이제 끝내야>, 동아일보 <“5·18 헬기 사격” 판결… 진실규명과 아픔 치유엔 마침표 없다> 사설

중앙일보는 1일 <법원도 5·18 헬기사격 인정…소모적 논쟁 이제 끝내야> 사설에서 “헬기 사격 여부는 ‘자위권 발동을 무색하게 하고 국민을 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헬기 사격 논란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전 씨가 5·18 북한군 개입설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전 전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자위권 발동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재판 과정에서도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이런 행동이 ‘1980년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려왔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의 유통을 촉발하는 진원지가 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죄와 과오를 깨끗이 인정하고 국민과 피해자, 그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가짜뉴스 제작과 유통도 더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1일 <“5·18 헬기 사격” 판결… 진실규명과 아픔 치유엔 마침표 없다> 사설에서 “살상 의도가 농후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사격 유무만 판단하는 선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법적 단죄와 별개로 과연 헬기 사격을 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이를 지시한 지휘·명령 계통은 어떠했는지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1심 선고가 나오기까지 2년 7개월 동안 숱한 증언과 증거가 나왔지만 전 전 대통령 측은 ‘헬기 사격설은 비이성적 사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일축해왔다”면서 “게다가 알츠하이머 등 지병을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하면서도 태연하게 골프를 즐기는 장면이 포착돼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진솔한 사과나 반성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2, 3심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전 전 대통령은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그것이 곧 구순을 앞둔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결자해지하는 올바른 자세다. 또한 역사적 비극의 진실을 밝히고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 <전두환 24년 만에 또 유죄, ‘진실의 법정’은 시효 없다> 사설

한겨레는 <전두환 24년 만에 또 유죄, ‘진실의 법정’은 시효 없다> 사설에서 “이번 판결은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5·18 당시 헬기사격을 사법부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신군부 쪽이 펴온 ‘자위권 차원의 발포’ 주장이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북한군 전차 공격이 주 임무인 공격헬기가 80년 광주 상공에서 기관총 사격을 한 것은 무차별적 민간인 살상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전씨는 이날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면서 “그는 지난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광주로 출발하기 전 자신의 서울 집 앞에선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전씨의 법정구속을 요구하던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집행유예 소식을 듣자 ‘원통하다’며 울부짖었다”며 “전씨는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생전에 사죄해야 한다. 24년 만에 전씨에게 다시 내려진 유죄 판결은 역사와 진실의 법정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가짜뉴스가 유포돼선 안 된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번 재판이 발포 명령자, 암매장 의혹 등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 왜곡을 막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여전히 일부 세력이 틈만 나면 5·18을 왜곡·폄훼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망동이다. 합리적인 보수라면 이런 세력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헬기사격 인정한 법원, 전두환은 참회 속 남은 진실 밝혀라> 사설에서 “법원이 헬기사격이 자기방어권 차원의 발포라는 신군부의 논리를 배척하고 시민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판단했다”며 “5·18 진상규명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재판장은 선고 전 ‘5·18민주화운동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고통받아온 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면서 “그러나 그는 재판 후에 묵묵부답하며 법정을 떠났다. 반성의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전씨와 그 추종자들은 더 이상 5·18의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날 재판에서 드러난 것처럼 진실은 밝혀지게 돼 있다. 전씨는 더 늦기 전에 진심으로 참회하고 5·18의 나머지 진실을 털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씨를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 표기한 동아일보·중앙일보와 달리 한겨레·경향은 ‘전두환 씨’라고 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은 예우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호칭에 대한 상제 규정은 없어 ‘전 대통령’과 ‘씨’가 혼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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